[김수종 칼럼] 세계 전기차 메이커들 '제1회 국제전기차엑스포'에 주목하는 이유

오는 15일부터 한 주일 동안 제주도에서 ‘제1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가 열립니다.
제주도에서 모터쇼?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을 듯합니다.
제주도는 섬 한 바퀴를 자동차로 돌아도 200킬로미터 이내 거리밖에 안 됩니다. 총 자동차 보유 대수는 30만 대 정도입니다. 자동차 메이커에게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곳입니다.   

모터쇼라면 디트로이트, 프랑크푸르트, 로스앤젤레스, 뉴욕, 도쿄 등 자동차를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거대 도시에서 열려야 제격이고 비즈니스 효과도 큰 법입니다. 한국만 하더라도 서울이나 부산에서 모터쇼를 해야 그럴듯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모터쇼를 열다니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제주도에서 열리는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는 아주 흥미로운 실험적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 흥미로운 측면은 이번 모터쇼에는 전기 자동차만을 모아 전시한다는 점입니다. 휘발유, 디젤, 가스를 연료로 쓰는 내연기관 자동차는 참가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배기통이 없는 자동차만 전시됩니다. 탄소 배출 제로 자동차들입니다. 배기통에서 매연이 배출되는 자동차는 아무리 멋지고 기능이 좋아도 쇼 무대에 설 수 없습니다.

모터쇼라고 하면 새로운 모델의 자동차를 선보이는 현란한 쇼이고, 전기자동차 같은 친환경 자동차는 미래의 컨셉트카로서 전시장 한 쪽이나 차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기자동차엑스포는 비록 소규모이지만 전기자동차가 안방과 건넌방을 다 차지합니다.

르노삼성의 SM3Z.E.를 비롯하여, 기아자동차의 ‘소울EV’, 한국GM의 ‘스파크EV' 등 국내에서 생산한 전기자동차가 총출동합니다. 독일 BMW의 'i3', 일본 니싼의 'Leaf', 프랑스 미아전기의 ‘Mia’ 등 해외 자동차 메이커의 유명 전기차 제품들도 한국시장에 데뷔합니다. 특히 국내 외제차 판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BMW가 소재와 디자인부터 전기자동차로 야심차게 설계한 'i3'를 선보이게 되어 국내 자동차 매니아들과 전기자동차업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입니다. 프랑스 미아 전기자동차는 한국계 입양아 출신 CEO 미셸 부스가 엑스포에서 기조 연설을 하게 됩니다.  국내외 전기자동차 중소기업 제품도 전시될 예정입니다. 전기오토바이와 전기자전거도 모습을 드러냅니다.

두 번째 흥미로운 점은 세계의 전기자동차 메이커들이 제주도 상륙에 무척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동차 보유 대수가 30만 대 정도인 섬에서 무슨 비즈니스의 기회를 찾으려는 것일까요.

제주도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자연환경분야 3관왕에 올라 있습니다.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2007년 세계자연유산 등재, 2010년 지질공원 인증을 받았습니다. 제주도는 장기적으로 탄소 제로의 녹색 섬을 지향합니다. 제주도는 이를 기초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인증하는 세계환경수도(World Environment Hub)가 되고 싶어 합니다.

따라서 제주도에게 자연보전과 친환경은 필수적입니다. 전기자동차는 교통 분야에서 친환경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한 번 충전으로 약 15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전기자동차의 테스트베드(실험장)로서 제주도는 더없이 좋다고 합니다. 해발 1,100미터의 도로가 있고 폭우, 폭설, 강풍 그리고 지독한 안개 등 자동차 실험 운행의 다양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약 37만 대의 자동차를 전부 전기자동차로 교체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1차로 2017년까지 약 3만 대 이상의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꾼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아직은 꿈같은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전기자동차 메이커들은 이런 제주도의 비전을 매우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정부는 제주도를 전기자동차 보급 시범지역으로 지정하여 작년에 전기자동차 구입자에게 1,50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했고, 여기에 제주도 지방 정부가 800만 원을 추가 보조했습니다. 작년 160 대의 전기차를 공모한 결과 경쟁률이 3대1이 넘었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높은 경쟁률이었습니다.

올해도 같은 조건으로 500대를 보급하게 되는데 엑스포 기간 중에 226 대를 시민을 상대로 공모합니다. 과연 전기자동차를 사겠다는 응모자가 얼마나 몰릴지 관심거리입니다. 3대1 이상의 경쟁률만 보여도 그 파장은 굉장히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자동차 시장 규모로만 봤을 때 제주도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계 자동차 메이커의 시선은 날카롭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전기자동차 구매에 이렇게 많은 정부 보조금이 주어지는 곳은 없습니다. 전기자동차 제조 단가가 계속 낮아지면서 제주도에 전기자동차 구매 바람이라도 불면 이 바람은 바다를 건너 2,000만 대의 자동차가 달리는 한반도로 넘어 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국내 자동차뿐만 아니라 독일 일본 프랑스 메이커들이 제주도 전기자동차 보급 정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특히 전기자동차 보급은 충전인프라가 선결조건인데, 제주도의 충전인프라 시설은 국내 최고 수준입니다. 전기자동차 메이커는 이런 점에서 전기자동차의 상업성을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기자동차를 구매하는 사람은 소득도 탄탄하고 실험 정신이 강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전기자동차 보급 여론이 높아지고 정책적 변화도 일어날 것입니다.

이번 엑스포의 씨앗은 엔지니어 출신의 한 전기 사업자의 집념입니다. 제주스마트그리드협회의 김대환 회장은 제주도에서 전기 엔지니어링 회사를 운영하는 소기업인입니다. 그는 보통 사람의 눈에 무모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전기자동차엑스포 개최를 구상했고, 지금 조직위원장으로 정신없이 뜁니다. 산자부와 제주도를 설득하여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기자동차에 쏟는 그의 정열을 보면 마치 돈키호테를 보는 듯합니다. 그는 “제주도가 전기자동차 상업화가 성공하는 세계 최초의 도시가 될 것”이라고 주문처럼 외우고 다닙니다.

자동차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세계 자동차 제조업계는 태풍전야처럼 긴장이 흐르고 있다고 합니다.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조짐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는 전통적인 자동차 메이커의 전유물로만 남을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한국만 해도 삼성전자와 LG가 자동차 사업 부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이 ‘전기차 특명’을 발령한 것도 이런 변화에 위기를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전기 자동차 벤처 기업 테슬라 돌풍은 자동차 산업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게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테슬라의 연간 판매 대수는 3만 대도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운행 자동차 10억 대를 만든 기존 자동차 제조 업계를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이유는 전기자동차가 몰고 올 파괴력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지난 100년 간 석유를 연료로 하는 내연기관에 기반을 두었던 자동차 산업의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 김수종 한국일보 전 주필. 현 탐라영재관장. 국제녹색섬포럼 이사장

세계적인 에너지 전문가 다니엘 여진이 그의 책 ‘더 퀘스트’(The Quest)에서 말한 구절이 인상 깊습니다.
 "전기자동차 산업은 국가 간 게임입니다. 배터리는 과거 석유와 같습니다. 배터리 기술의 승자가 세계 경제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한국이나 중국 같은 국가에게는 전기자동차가 결정적인 성장분야로 지배적 위치를 확보할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다니엘 여진의 지적에 국내 자동차메이커의 CEO들은 웃고 있을까요, 떨고 있을까요? 창조경제를 주창하는 정부의 산업정책 담당자들은 이 변화에서 어떤 맥락을 찾아내고 있을까요? 제주도에서 열리는 미니 모터쇼가 갖는 의미가 규모만큼 작지 않아 보입니다. / 김수종 한국일보 전 주필
 
  # 김수종 한국일보 전 주필은? =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출신으로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현 탐라영재관장. 국제녹색섬포럼 이사장.
* 이 칼럼은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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