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칼럼> 원희룡 후보의 도지사출마선언을 보면서

새누리당 원희룡 전 의원의 제주도지사 출마 선언을 지켜보면서 전성태의 단편 「이미테이션」이 떠올랐다.

소설 속 주인공 ‘게리’는 엄연한 한국인이지만 ‘혼혈아’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한다. 학창 시절 ‘게리’는 ‘우리 민족은 유구한 세월 동안 단일민족으로 살아왔다’는 교과서의 내용을 차마 읽을 수 없었다. 자신의 외모를 가리키며 “쟤는 아닌데요!”라며 놀리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책읽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국사 선생님으로부터 심한 체벌을 받기도 한다.

체벌은 “민족의식을 심어주겠다.”는 명목에서였다. ‘혼혈아’가 아니었지만 ‘혼혈아’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던 ‘게리’는 미국으로 건너간다. 어차피 ‘혼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라면 미국으로 가는 게 나았기 때문이다. 14년의 미국생활 끝에 ‘게리’는 한국으로 추방당한다. 불법 약물을 거래했다는 혐의 때문이다. 미국 생활은 ‘게리’에게 ‘버터 발린’ 발음을 훈장처럼 남겨 주었다.

재미교포 2세 ‘게리’리 돌아온 한국은 더 이상 차별의 땅이 아니었다. 영어 학원에서 원어민 강사 생활을 하면서 ‘게리’는 철저히 타인의 삶을 살아간다. 「이미테이션」은 사회적 차별 때문에 철저히 타인의 삶으로 ‘위장’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차별적 시선과 ‘미국’ 이라는 콤플렉스를 다룬 작품이다.

왜였을까. 학력고사 전국 수석과 한국 사회 최고 학벌, 그리고 대권 도전을 선언할 정도로 성공한 정치인 원희룡 전 의원의 제주도지사 출마 선언을 보고 하필이면 「이미테이션」이 떠올랐을까. 하필이면 촉망받던 수재가 30년이 지나 성공한 정치인으로 ‘금의환향’을 한 날 말이다.

그것은 서울대학교와 집권당의 유력 정치인이라는 강력한 ‘상징자본’을 가진 원 전 의원의 도지사 출마에 제주도내 언론이 보인 ‘야단법석’을 지켜보며 일종의 열패감과 분노와 허망함이 교차했기 때문일 것이다.

‘버터 발린 미국식 영어’로 무장한 ‘게리’에 학부모들이 환호를 보내는 것과 ‘곤밥 먹는’ 서울말을 몸에 익히며, 성공한 1% 서울 시민으로 30년을 살았던 정치인에게 보내는 환호가 과연 다른 것인가. 서울 사람으로, 대한민국 1%로 ‘이미테이션’에 성공한 사람이 이제 고향 사랑 ‘코스프레’를 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지 않는 언론은 이미 제주를 서울의 식민지로 내면화한 것은 아닌가.

▲ 김동현 박사(국문학).

과연 제주는 출향 인사들의 성공 스토리에만 환호할 정도로 ‘배알이 없는 지역’인가. 관덕정에서 행한 제주도지사 출마선언이 흡사 조선 시대 관리들의 ‘부임’ 코스프레처럼 느껴져진 것은 지나친 ‘열등감’ 때문이었을까. / 김동현 박사(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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