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사랑하는 어머니 제주가 저를 불러주셨다”고?

출사표를 던지다

드디어 원 전 국회의원이 지난 16일 도지사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전에 그가 공언했던 단 일 퍼센트의 출마 가능성이 99퍼센트의 불출마 가능성을 뒤엎었으니 ‘일 퍼센트’ 가(街)의 또 다른 기적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예상과 달리 그의 교묘한 말 바꾸기에 대한 비판여론도 아주 미미했으니 더욱 경사스러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은 이날 모처럼 화창했던 이른 봄날의 따사한 햇살만큼이나 환한 회심의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출마의 변에서 “사랑하는 어머니 제주가 저를 불러주셨다”고 말했지만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요청에도 꿈쩍도 않던 그가 아니었던가. 말이야 바른말이지 그를 불러준 쪽이 실제로는 권력핵심인 것을 감안하면, “사랑하는 어머니“와 ”제주“ 사이에 먼저 권력 핵심의 존명이 들어가야 그분들이 덜 섭섭해 하지 않았을까.

이유 있는 전략공천

평소 그에게 결코 고운 눈길만은 아닌 것처럼 보였던 정권 핵심이 이례적으로 경선방식을 그에게 가장 유리하도록 바꿔가며 지원한 것은 정치판의 생리를 모르는 우리들에게는 대박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디 그분들이 ‘흙 파다가 장사하는 분들인가‘. 중고교 무상급식에도 ’부자급식‘이니 ’재정파탄‘이니 하며 야박함을 보이던 그분들이 삭막한 정치판에서 이유 없이 자선을 베풀지는 않을 터. 정치적 이해타산에 밝은 그분들에게 그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이다. 그가 슬쩍 일 퍼센트의 출마가능성을 던졌던 게 단지 여론 간보기를 위한 의도로만 읽었던 것은 섣부르고 우둔한 필자만의 한계가 아니었다. 뱁새들이 황새의 뜻을 어찌 알리요? 권력 핵심의 아쉬운 마음 구석구석까지 읽고 승부수를 던진 게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 후보경선방식까지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꿨으니 이것이야말로 양수겸장의 칼이요, 일거양득의 떡이다. 요즘처럼 재미없고 칙칙한 정치판에 그는 분명 불후의 작품을 만듦으로써 정치 9단을 넘어선 이른바 ‘아트’급 정치인에 등극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출마 선언에 대해서 민주당에서는 용이 결국 이무기가 되고 말았다고 거세게 비판했지만, 이는 현실을 읽지 못한 가당치 않은 말이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이무기가 용이 된 것이 아닌가. 현 정권에서 그가 현재 처한 입지를 헤아려보라. 그와 소속정당 간 정치적, 이념적 정체성의 확실한 간극을 보더라도, 그리고 전 정권 때 만사형통의 썩은 줄을 잘못 잡았다는 항간의 소문을 듣더라도, ‘찬밥신세’가 분명했던 그의 처지로선 제주지사의 자리가 ‘마지 먹지 못해 먹는 떡’이 아니라, 오히려 군침을 흘리면서도 자존심은 있어 먹고 싶다는 말을 못하고 애타는 마음만 동동 굴려야 했던 ‘너무나 맛있는 떡’이 아니었던가.

아직도 성장 타령인가

현재 도민 여론조사 결과 압도적 지지율을 보면, 그는 확실히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온 제주지사 선거의 종결자, 이른바 ‘터미네이터’라고 할 수 있겠다. 큰 물에서 놀던 둔중한 고래가 갑자기 방향을 돌려 좁은 우물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니 터줏대감 개구리들이 등골 터져 죽을 판이 된 것이다.

지금으로선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니 그의 공약에 자연히 큰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 정권의 급조된 ‘아바타’니만큼 아직까지 특별히 이렇다 할 공약을 내놓은 바는 없다. 그의 출마선언문에서 단지 그의 머릿속에 구상 중인 공약의 대강만을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단, 출마와 불출마의 경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익을 극대화시켰던 ‘일 퍼센트의 기적’과 그의 ‘아트’급 정치기술을 감안하면 출마선언에 언급된 공약의 대강 때문에 앞서서 너무 설레발치지 말아야 한다.

원 전의원의 출마 선언에서 공약과 관련해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제주인과 문화, 환경을 자본으로 한 창조적 성장을 통해 제주의 경제규모를 5년 안에 2배 이상 확대 하겠다‘는 텍스트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후보는 ”현실성이 없는 공약“이라고 깎아 내렸지만,  ’이솝우화’의 여우가 나무 높이 매달려 따먹지 못하는 포도를 보고 그 포도의 신 맛을 먼저 탓하는 격에 불과하다. 필자는 오히려 이 공약이 현실로 이어질까봐 더 걱정이다. 아직은 섣부른 추측에 불과하고 단지 조언으로써 지적하는 것이지만, 그에게도 역시 ’일 퍼센트‘ 정당의 시대착오적인 성장 지상주의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언제까지 성장 타령만 해야 할 것인가. 과연 도민들의 불만이 단지 제주도가 성장이 모자라기 때문 만일까.

이 텍스트에서 어느 단어에 강세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겠지만, 그것이 문화와 환경의 상품화를 통해 단기간 고속 성장을 뜻하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무뇌아’적인 해외자본유치와 무분별한 개발정책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던 전, 현직 도지사들과 다른 특별한 기대를 거는 일은 접어야 할 것이다.

기대난망의 제주 르네상스

제주의 문화와 환경은 지금까지 줄기차게 이어진 개발중심주의로 인해 위기에 처한 상태다. 그렇잖아도 빈약한 제주 문화가 그렇게 짧은 시간에 상품화할 수 있을 만큼 한꺼번에 갑자기 발전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 순간 십 여 년 전 도민들의 피 같은 귀중한 예산을 펑펑 써가며 요란스럽게 개최했던 국적불명의 세계섬문화 축제가 결국 단지 도민들의 ‘먹거리’ 놀자판 잔치로 끝났던 일이 뇌리에 떠오른다. 또 환경의 상품화와 고속성장을 연결시키면 또 다른 무모한 ‘삽질’ 개발로 이어질까 두렵다. 원 후보도 제주문화의 르네상스를 언급했지만, 제주는 전, 현직 지사들이 민심을 읽지 못하고 열심히 ‘개’ 발짓을 한 덕분으로 머지않아 군사문화와 도박문화의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그의 텍스트에서 주객이 전도됐다는 것이다. 문화와 환경은 주민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다. 정치와 행정의 모든 것이 결국 주민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닌가. 그것이 성장을 위한 하위개념 즉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은 ‘일 퍼센트’ 정당만이 갖게 되는 한계요, 함정이다.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문화와 환경을 위한 투자가 성장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 우리의 경제수준으로 볼 때도 성장이 일자리 창출로 직결되고 내수를 활성화시켜서 주민의 소득증대로 이어지는 시대는 지났다. 성장이 다소 더디더라도 문화를 위한 토대 구축과 환경 보호를 통해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다.

물론 그의 공약도 현 정부의 화려한 구호처럼 ‘스티브 잡스’의 창조경제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제주의 현재 실정에서는 그것이 가능한 일도, 시급한 일도 아니다. 설사 그것을 못한다고 비판할 도민들도 없다. 먼 미래에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반을 조금이라도 마련하기위해 노력하면 충분하다.

원 후보에게 바란다

필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재개발로 인해 동네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빈민가 주민들을 다룬 영화 ‘24번가(街)의 기적’처럼, 그의 정치적 예술로 일궈낸 ‘일 퍼센트의 기적’이 강정 주민들과 같이 공권력의 폭압으로 인해 소외되고 억울한 도민들을 위한 기적으로 승화되는 일이다. 은혜를 베풀었다고 중앙권력의 눈치만 보지 말고 중량감 있는 정치인답게 당당히 맞서서라도 그동안 폭압적인 정책들로 인해 얽히고설킨 도민 갈등과 억울한 민원들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원 후보는 자신에 대해 도민들이 가졌던 이전의 기대감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같다. 출마선언 날에도 “일 퍼센트의 한계를 넘어 제주도지사가 대한민국 대통령도 될 수 있다”고 도민들에게 호언했다. 그러나 그의 텍스트의 심층에는 대권에 대한 욕심 보다는 큰 꿈을 슬며시 접고 제주로 낙향해야 했던 부끄러움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이제 그가 대권에 도전하는지의 여부는 더 이상 도민들의 큰 관심사가 아니다.

기왕 출마하는 것이니 건투하기를 바라며, ‘일 퍼센트’ 가(’街)의 한계를 극복하고 치열하지만 선의적인 경쟁을 통해 진일보한 제주 정치의 새 역사를 써가는 데 힘을 보탠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이번 지방선거에 임했으면 좋겠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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