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와 어등포, 팔할이 바람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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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꽃을 피우다] (1) 광해군의 유배를 맞았던 구좌읍 행원리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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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원리 해안에 서면 쪽빛 바다와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져 이국적 풍광을 발한다. ⓒ장태욱

제 딸 진주가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개교기념일을 맞았다. 겨울의 터널을 통과한 시기라 봄바람도 맞을 겸 광해군의 흔적을 찾아 나들이나 가자고 했다. '광해'라는 말에 진주는 배우 이병헌을 떠올리며 반긴다. 먼저 향한 곳은 1637년 6월에 광해군이 유배선을 타고 제주로 들어온 구좌읍 행원리다.

제주시 구좌읍 해안에는 언제나 어김없이 바람이 불어온다. 때문에 화창이 맑은 날인데도 날씨는 사뭇 쌀쌀했다. 이 일대 해안은 온통 모래로 뒤덮였는데, 이 모래 언덕을 만든 것은 8할이 바람이다. 과거 제주도 바다가 지금보다 따뜻했던 시기에 이 바다 속에는 조개들이 득실거렸다. 그리고 그 껍질들이 부서져 작은 알갱이들로 변했는데, 그것들이 이 바람을 타고 들녘으로 퍼져나가 쌓이니 모래언덕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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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해군을 태운 이송선이 표착했던 곳임을 알리는 표석.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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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손들이 있어서 해안도로는 생기가 돈다. ⓒ장태욱

과거 대규모 모래언덕을 만든 바람이 최근에는 풍력발전기를 끌어들였다. 현무암 바위와 하얀 모래밭 위를 푸른 바닷물로 덧칠을 하니, 검은 듯 희고, 흰 듯 푸른 청량한 빛깔을 빚어낸다. 그리고 최근 그 주변에 자리 잡은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은 이국적 볼거리를 제공한다.

김녕에서 종달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한 결 같이 에스 자(S) 형이다. 바다와 환해장성 사이에 놓인 해안 길은 바다로 떨어질듯 하다가 휘감으며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마침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길손들 있어서 길에는 한결 생기가 돈다.

광해군은 1575년 선조와 후궁이던 공빈 김씨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광해군이 태어난 시대, 동아시아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중원에는 여진족이 들고 일어나 만주를 접수하고는 명을 위협하였고, 일본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를 통일하면서 전국시대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대륙에서는 회오리가, 바다에서는 태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광해군은 애초에 왕비의 아들이 아닌데다 맏아들도 아니었으니, 왕과는 거리가 먼 운명이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조정이 피난보따리를 싸야하는 상황이라 얼떨결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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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근 월정리 해안이다. 일대가 온통 모래로 덮였는데, 이 모래세상을 만든 것은 모두 바람이다.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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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딸이 곁에 있으니 바다가 한결 더 아름답다. ⓒ장태욱

세자로 책봉된 후에는 제 몸 하나 보전하려고 백성을 버리고 피난을 떠난 아버지 선조의 공백을 매우기 위해 전장을 누비고 다녀야 했다. 다행히도 그 과정에서 리더십을 인정받고 보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임금이 되어서는 대동법을 실시하고 명의 허준으로 하여금 <동의보감>을 완성하게 하는 등,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살피고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오점도 적지 않았다. 풍전등화에 놓인 사직을 보존하기 위해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펼쳐야했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의 뜻을 대신들에게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살해했고, 영창의 생모인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우를 범했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궁궐을 다시 짓는 공사에 지친 민심은 더 이상 그의 편이 아니었다. 보위 막바지엔 불안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후궁의 치맛자락 속에서 술에 쩔어 지냈다. 그의 정적이었던 서인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1623년 3월 14일 새벽, 쿠데타군에게 기습당해, 무기력하게 왕위에서 제거되었다. 광해군이 제주에 도착할 당시는 이미 강화도와 교동도에서 15년 이상의 세월을 유배로 보낸 후였다. 강화도에 머물 적에는 그의 복위를 염두에 둔 역모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환갑을 넘긴 나이라 복위에 대한 미련도 떨쳐버린 지 오래다.

광해군의 호송책임을 맡은 이원로는 교동에서 출발하면서 행선지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뱃머리에 부딪치는 파도의 충격과, 귓가를 휘감는 음산한 바람소리를 통해 아주 먼 절해고도로 가는 것임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를 태운 이송선의 휘장이 걷히는 순간, 그가 본 것은 여태 본 적이 없는 별천지 바다였다. 검은 바위와 흰 모래가 투명한 바다와 만나 현란한 색을 통해내는 어등포 해안, 그곳엔 싱그러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실록에는 호송을 맡은 이원로가 제주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전하자, 광해군은 “내가 어찌 여기에 왔느냐”며 슬피 울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그 눈물이 어디 슬픔에서만 비롯되는가? 필경 보위를 지키려다 가족을 모두 잃어버린 회한 많은 노인이 어등포 해안의 절경을 만나 흘리는 힐링의 눈물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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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원 들녘은 당근 수확으로 분주하다.  ⓒ장태욱

◆ Tip = 행원리를 포함해서 구좌읍은 전국에서도 당근의 주산지로 통한다. 돌아오는 길에 마침 당근을 수확하는 밭이 있어 작황이나 물어볼 목적으로 들어갔는데, 농부들은 당근농사에 풍년이 들어 가격이 예년에 없이 내려앉았다고 했다. 당근 20kg 상품 한 상자에 만원이면 족하다고 해서 한 상자를 들고 왔다. 기행이 주는 참맛이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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