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경찰, 관련자 줄소환 조사 시작...검찰 “입증 어려운 수사” 결과 관심

공무원이 농민을 상대로 10억원대 사기를 벌인 희대의 사건과 관련해 수사당국이 해당 기관 공무원들을 직무유기 혐의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직무유기는 복잡한 행정업무 규정상 입증 자체가 쉽지 않아 검찰과 경찰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다.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향후 민사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제주동부경찰서는 최근 발생한 제주농업기술원 직원 허모(44)씨의 사기 사건과 별도로 동료 공무원들의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관련자를 불러 조사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허씨는 2012년 2월부터 2013년 2월말까지 1년간 농민 44명을 상대로 거짓 시설지원 보조사업 정보를 건네 자부담금 명목으로 16억5000만원을 가로챈 혐의(상습사기)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사건을 검찰로 넘겼지만 피해 농민들은 허씨 개인비리가 아니라며 관련자 조사를 촉구했다. 일부 농민들은 농업기술원 관리 책임을 묻기위한 증거확보에 직접 나섰다.

농민들이 경찰에 넘긴 녹취록에 따르면 서귀포시 동부지역 모 농협 관계자는 허씨가 입건되기 3개월 전인 지난해말 농업기술원을 직접 찾아 허위 보조금 사건에 대해 제보했다.

녹취록에서 농협 간부는 허씨의 상사를 만나 문제를 제기했다고 진술했다. 경찰도 사실 확인을 위해 최근 녹취록 속 농협 관계자를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관련 조사를 마쳤다.

농민들은 농업기술원이 허씨의 비위 사실을 3개월 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대책을 세우지 않아 피해가 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허씨는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3월5일 전까지 범행을 계속했다. 1~2월 사이 허씨가 저지른 범행만 20여건으로 이 기간 농민들의 피해액만 1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동료 직원들이 허씨의 비위 사실을 알면서 묵인했다면 당연히 도덕적 책임이 뒤따르지만 형사처벌은 따져볼게 많다.

직무유기는 형법(제122조)상 대표적 부작위 처벌 조항에 해당한다. 부작위란 규범적으로 기대된 일정한 행위를 하지 않을 경우 하는 처벌 조항이다.

공문원이 정당한 이유없이 그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직무를 유기할 때 처벌하지만 요건이 모두 입증되지 않으면 사실상 처벌이 어렵다.

판례상 일반적으로 직무를 객관적으로 벗어난 행위가 있어야 하고 주관적으로 정당한 직무수행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반대로 공무원이 태만과 착각 등으로 인해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거나 성실한 직무수행을 못한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직무유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경찰은 피해농민들을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마무리하고 조간만 농업기술원 관계자를 차례로 불러 사실관계를 파악키로 했다. 공무원 소환 범위를 어디까지 할지도 관심사다.

검찰 역시 이미 송치된 사기 사건과 연계해 농업기술원 관계자들이 허씨의 비위행위를 이미 알면서도 방치했는지 여부를 확인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무원의 직무유기는 통상적으로 입증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사실관계와 법리검토를 통해 기소여부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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