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 (6) 천지왕본풀이 2

▲ 태초에 신에게 바친 인간의 음식 ‘곤밥’. ⓒ문무병

천지왕(天地王)은 하늘의 옥황(玉皇)상제이며, 땅의 지부왕(地府王)은 총명부인이다. 하늘의 천지왕은 세상의 질서를 잡으려고 땅에 내려와 총명부인을 만났다. 지부왕 총명부인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지왕을 맞아 정성을 다해 밥 한 상 지어 올리려 했으나 밥 지을 쌀이 없었다.

고을에는 고약한 부자 수명장자(長者)가 살고 있었다. 총명부인은 수명장자 집에 가 장리쌀이라도 꿔 달라 하였다. 수명장자는 악질이었다. 수명장자는 대미(大米) 쌀엔 큰모래(大沙)를 섞어 꿔 주고, 좁쌀[小米]엔 작은 모래(小沙)를 섞어서 작은 말[升]로 꿔주었다 큰 말[斗]로 받아가고, 궂은 곡식 주었다가 좋은 곡식으로 받아갔다. 이런 장자에게 쌀 한 되를 꾸어와 얕은 남 바가지에 놓고 삼 세 번을 깨끗이 씻어 밥을 짓고 천지왕에게 밥 한 상을 정성으로 차려 드렸는데, 천지왕이 뜨는 첫 숟가락에 돌이 씹혔다.

지부왕 총명부인님아. 어째서 첫 숟가락에 돌이 씹혐수가(씹히고 있습니까)? 이 고을의 수명장자 집에서는 궂은 곡식 꿔주고 좋은 곡식 받아가고, 작은 말로 꿔 주고 큰 말로 받아갔으며, 대미 쌀엔 큰 모래를 섞어 주고, 좁쌀에는 작은 모래를 섞어 파는 쌀 한 되[升] 꾸어다가 한 번 두 번 삼세 번 씻어 밥 한상을 지어 올렸는데, 돌이 씹혔군요. 이 사정을 듣자, 천지왕은 크게 노하여 벼락과 우뢰를 내려 삽시에 악덕한 부자 수명장자 집을 불태워 버렸다.(이하 생략)

앞의 이야기처럼 <천지왕본풀이>는 땅의 여신이 하늘의 신에게 ‘곤밥’을 해서 바친 이야기, “밥이 인간세상을 열었다.”는 창세신화(創世神話)다. ‘곤밥’은 흰밥이다. 너무나도 흰, 고운 쌀밥이다. 그러므로 <천지왕본풀이>는 ‘곤밥’을 먹는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만든 창세신화인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밥을 지어 먹는 문화를 가졌다는 것이다. 밥은 인간의 음식이며, 신은 인간의 음식을 먹었을 때, 인간을 닮은 신이 된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신,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신, 영생불멸(永生不滅)의 신, 세상을 만든 창세주(創世主), 신들 중의 제일 큰 신, 하늘 옥황(玉皇) 삼천천제석궁 어궁(御宮)의 임금 옥황상제(玉皇上帝), 제주어의 신의 존칭 ‘또’를 붙여 말하면, ‘어궁또’ 천지왕도 할 수 없는 것, 이룰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천지왕이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우리는 <천지왕 콤플렉스>라 부르고자 한다. 전지전능한 신이며, 모든 것을 다 가진 천지왕도 혼자서는 할 수 없어, 땅[地府]의 여신(女神), 지혜의 여신(女神) 총명부인의 도움을 받고서야 이룰 수 있었던 두 가지 일이 있었다.

하늘과 땅이 갈리고 천지가 밝아왔을 때, 천지왕은 세상의 질서를 잡아나가기 전에 우선 총명부인을 만나기 위해 박줄 타고 지상에 하강했던 것은 중요한 두 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땅에 내려와 여신을 만나지 않으면 이룰 수 없었던 것, 천지왕의 콤플렉스를 해소할 두 가지는 인간세계의 음식 ‘밥’을 먹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지모신 총명부인의 ‘사랑’을 얻는 것이다.

천지왕 콤플렉스는 극복하는 것은 전지전능한 하늘의 신이 혼자서 이룰 수 없었던 것, 지상의 인간만이 ‘먹는 밥’과 ‘하는 사랑’을 땅의 여신을 통해서 배움으로써 인간의 신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 신에게 나눠 주는 음식. ⓒ문무병

첫째, ‘먹은 밥’은 땅의 여신, 지혜의 신 총명부인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지왕에게 대접한 고운 밥, ‘곤밥’이었다. 은옥미[銀玉米]를 세 번 씻어 지은 곤밥은 ‘천지왕[神]이 맨 처음 먹은 인간의 음식’이며, 땅의 생산물이다. <천지왕본풀이>에 의하면, 하늘의 신 천지왕은 ‘노각성자부연줄’이란 박 줄을 타고 땅에 내려와 땅의 여신 총명부인을 만나자, 이 여신이 손수 밥을 지어서 대접하였다.

인간의 음식 ‘밥’은 하늘의 신에게 대접한 땅의 인간이 먹는 음식이다. 인간사회, 현실 세계인 이승의 음식을 신에게 대접하는 의식은 신화의 시작이며, 굿 축제의 시작이다. 그것은 “밥의 문화”이며, 우리 문화의 계통을 지시한다. 천지왕본풀이는 “천지왕은 밥을 먹는 신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우리는 보통 신의 음식으로 양, 돼지, 소 등의 희생[犧牲]을 바치기도 하며, 소주[燒酒]나 감주[甘酒] 또는 고소리술, 오메기술 등의 술[神酒]을 빚어 신에게 바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제주 사람이 신에게 바치는 제1의 음식으로, 맨 처음 은옥미(銀玉米)로 찐 고운 밥, ‘곤밥’을 지어 올렸다는 것은 하늘의 신을 인간의 신, 인간처럼 밥도 먹고 섹스도 하는 신, 바로 우리의 신을 만드는 공양인 동시에 우리의 문화계통을 이야기 하는 신화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문화는 우리의 신, 우리의 신화 속의 신, 인간 세계와 소통하는 인간적인 우리의 신은 밥을 먹는 신이며, 신에게의 최고의 대접은 가장 깨끗한 쌀로 밥을 지어 바치는 문화에 속한다. 천지왕은 인간의 밥 짓는 냄새를 사랑하는 인간적인 신이 될 때, 우리의 창세주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둘째, ‘하는 사랑’을 배운 것은 모든 것들에서 초연한 신도 인간처럼 느끼는 것이었다. 신도 느낌이 있으며, 인간처럼 사랑을 해야 인간적인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들이 사랑하여 태어난 아이가 저승과 이승을 나누어 가졌다는 신화도 <천지왕본풀이>이다.

은유적으로 이야기하면, “하늘[神]은 세상[땅]에 내려와 인간의 지혜를 얻어 한 쌍의 옥동자를 얻었다. 그들이 해와 달이며, 낮과 밤이며, 이들이 이승과 저승을 다스리는 쌍둥이 신, 하늘의 천지왕과 땅의 총명부인 사이에 태어난 소별왕과 대별왕이다.”라는 이야기는 천부지모(天父地母) 신의 사랑으로 인간세상을 열었다는 것이다.

초경(初更) 때도 지나고, 이경(二更) 때도 지나 사서삼경(三更) 깊은 밤을 다 새우고 천지왕이 하늘 옥황으로 오를 때가 다가왔다. 못 다한 사랑 아쉬워하며 이별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지부왕 총명부인이 말을 꺼냈다. 천지왕님아. 지난밤에 만든 아기 이름 성명이나 지어 주고 가시라 하니, 천지왕은 다음과 같이 당부하였다.

“아들을 낳거든, 먼저 난 건 대별왕, 뒤에 난 건 소별왕이라 짓고, 딸을 낳거든, 먼저 난 건 대별댁이, 뒤에 난 건 소별댁이라 이름 성명 지으시오.”하였다. 그리고 아방[父親]의 본메[徵標]나 놔두고 가시라고 하니, 박 씨 세 방울 내어주며 하는 말이, “정월이라 첫 톧날[初亥日]이 되면, 씨앗[苗]을 심어 두 박씨의 줄기가 한 줄기는 옥황으로 뻗어서, 한 줄기는 지붕으로 뻗어가게 하라.” 부탁하고, 천지왕은 옥황으로 올라갔다.

그 때 낸 법으로 우리 국에서 정월 정해일(丁亥日)에는 하늘굿[天祭]와 나라굿[國祭], 그리고 마을 포제(酺祭)를 하는 법이 생겨났다 한다.그렇게 하여 천지왕은 하늘 옥황으로 올라갔고, 지부왕 총명부인의 한 탯줄에서 아들 형제가 솟아났다. 어머니 총명부인은 약속한 대로 먼저 난 건 대별왕, 뒤에 난 건 소별왕이라 이름 성명을 지었다.(이하 생략)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민속학자.

결국 <천지왕본풀이>는 창세신화에 등장하는 하늘의 천지왕과 땅의 총명부인의 전지전능한 신성 보다는 ‘밥을 먹는 인간’ ‘사랑을 하는 인간’과 같은 인간적 신이기 때문에 인간처럼 이야기되는 창조주가 지닌 <천지왕 콤플렉스>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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