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주의’는 노예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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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후 칼럼] 중앙의 극장정치는 거침이 없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는 매일 넘쳐나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에 포위를 당하고 있다. 대중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정보의 폭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선거캠페인에서는 유권자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비언어적 기호와 함께 이미지와 인간의 감성을 교묘히 조작하여 태도를 바꿔나가려는 선전 전략이 적절히 구사된다.

여론전의 양상은 메시지와 담론 경쟁, 여론조사, 후보들의 대민접촉 등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언론을 통해 유권자에게 전달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공론장에 제기되는 담론은 이전 선거와 거의 비슷하다. 종북 낙인찍기, 민생, 복지확대, 경제민주화, 일자리 창출은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단골 메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규제개혁·통일대박론과 일부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내세우는 토건 개발·무상버스가 유권자들의 기대를 부추기고 있다. 각 지역의 후보들은 저마다 한 방을 노리고 이슈를 개발하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또한 재난관리에 무능을 드러낸 ‘세월호 침몰 참사’도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보화시대의 정보홍수 속에서 유권자들은 정치적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좀 더 숙고하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정치에서 이성과 합리성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여론을 조작하는 정치홍보 전문가인 스핀닥터의 폭력적인 전략에 놀아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인간의 심리를 통제하고 조정하는 커뮤니케이션 기법이 발전하면서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유권자의 감정을 자극하고 생존 경쟁의 불안감을 이용하거나 말장난으로 왜곡하는 선전술을 감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이유다.

이러한 정치 환경에서 새로운 구세주를 찾는 ‘메시아주의’가 대중의 사회심리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신적인 안정을 찾는 중요한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원래 ‘메시아주의’는 인간이 겪는 극심한 고통으로부터 나왔다. 인간은 현실의 불안과 고통, 죽음의 공포를 치유하기 위해 ‘메시아주의’에 의탁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정치에서 ‘메시아주의’는 미디어가 지배하는 대중사회에서 ‘대중’이 새로운 리더십을 찾는 흐름에서 비롯된다. 대중사회의 함정이 ‘메시아주의’를 탄생시키는 토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중’은 자유로운 토론과 의사표현, 여론의 형성, 견제와 균형을 통해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권력의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공중’은 사회적 문제에 직면하여 이를 인지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조직화된 집단을 말한다.

그러나 ‘공중’은 대중문화의 발전과 함께 수동적으로 대중매체에 노출된 개인의 집합체인 ‘대중’으로 변화했다. 대중문화에 중독된 ‘대중’은 대중미디어가 제시하는 메시지와 이미지를 바탕으로 신념체계를 형성하여 태도와 의견을 형성해나간다. 대중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고정관념은 자유로운 담론의 생산을 통제하고 제한한다. 대중사회에선 분산적인 권력이 중앙 집중적인 권력으로 이동하고, ‘대중’은 미디어를 조작하는 스핀닥터들의 선전 대상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대중매체에 의해 인간의 사회적 성격이 형성되고 규범화되면서, 자유롭게 행동할 능력과 진정한 주체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잃어버릴 수 있다. ‘메시아주의’가 포퓰리즘과 결합하는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진다. 개인의 자율권이 제한된 권위주의, 권력에 의존하는 복종주의가 대중의 마음속에 긍정적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과거의 강력한 독재자를 그리워하거나, 미래에 이와 유사한 독재자가 나타나기를 대망하게 된다. 독일 정치학자 칼 슈미트는 “‘대중’은 선전과 조작의 대상이지 정치적 주체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중’은 눈앞에 보이는 이익과 감정에 사로 잡혀 사유할 줄 모르기 때문에 미디어를 통해 조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에서 지역의 중앙 예속화는 더욱 심화되고, 중앙의 극장정치는 거침이 없다. 중앙언론의 여론 독과점구조는 강화되고, 풀뿌리 지역 언론은 고사 직전에 놓여 있다. 지방선거에서 주민의 대표가 되겠다고 나서는 광역의회와 기초단체의 후보자들은 지역에서 뿌리를 내린 토박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광역단체장에 나서는 사람들은 오래전에 지역을 떠나 중앙에서 전국적인 인물로 성장하여 다시 내려온 경우가 많다. 이들은 중앙의 후광효과를 주무기로 한 상징조작에 능하다. 지역의 고통을 해결하기 보다는 ‘메시아주의’를 적극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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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지역정치를 끌어당기는 중앙권력의 구심력은 중앙 무대에서 지명도가 높은 인물에 대한 과도한 이미지와 환상을 지역주민에게 심어준다. 대중적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심리적 요인은 주민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할 수 있다. 허상을 믿고 주체성을 망각한 선택은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노예의 길’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위기에 봉착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여 미래 세대에 넘겨줄 수 있는 인물을 뽑는 일이 중요해졌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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