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일본 정부는 3월로 끝난 2013회계연도의 무역 적자가 13조7000억엔(1340억달러)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3년 연속 적자이며 역대 최대다. 일본중앙은행 쿠로다 총재는 '아베노믹스'의 최선봉에 서 있다. 부임 직후인 작년 4월 그는 물가상승률 2%를 2년 내에 달성하여 20년을 이어온 디플레이션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서 매달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매입하여 일년 후 중앙은행 자산을 50조엔 늘리겠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자산을 늘리는 유일한 방법은 돈을 찍어내는 것이다. 돈을 찍어내어 통화량이 늘면 물가가 상승하고 아울러서 엔화 가치도 평가절하(환율인상)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일년이 지난 오늘, 실제로 일본 중앙은행의 자산은 242조엔으로 일년 전에 비해 80조엔이나 늘었다. 월 평균 6조6000억엔(650억달러)씩 증가한 것인데 이것은 현재 미국 연준이 매월 매입하는 금액 550억달러보다도 큰 것이다. 일본 국채만 매입한 것이 아니고 주식도 매입했다. 주식의 경우는 불공정성의 문제를 피하기 위해 인덱스 펀드를 택했다.

그 결과 물가상승률은 1.3%로 목표의 절반 이상을 달성했고 니케이 주가지수도 57%나 상승했다. 환율도 최근 달러당 102엔으로 일년 전에 비해 9% 인상되었다. 아베 수상이 취임한 2012년 12월(달러당 85엔)과 비교하면 엔화의 인상폭은 20%가 넘는다. 그러나 '굴뚝에서 인플레이션이라는 연기가 피어 오르기를 희망한 나머지 엉뚱한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있다'는 비유가 지금의 일본만큼 어울리는 경우도 없을 것 같다.

첫째, 물가상승을 원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공장이 돌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즉 지금 물건을 만들어 팔면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공장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바람이다.

엉뚱한 아궁이에 군불 때기

그러나 국내업체의 생산품 가격이 인상된 것이 아니고 수입 에너지 가격이 상승한 것이므로 국내 경기 부양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환율이 인상되면 수출이 늘고 수입이 줄어 무역수지가 개선되는데 일본의 경우는 오히려 악화되었다. 에너지 공급원의 30% 비중을 차지해 왔던 원자력발전이 전면 중단된 상태에서 외국으로부터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데 더 비싼 값을 지불하며 이것을 들여와야 했다. 또한 일본의 제조업 기반도 이미 오래 전에 해외로 이전된 상태여서 환율인상이 공산품 수출에 기여하는 바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분석이다.

셋째, 물가 상승을 원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소비자의 소비 촉진을 바랐기 때문이다. 즉 어차피 살 물건이라면 더 오르기 전에 사야겠다는 심리 때문에 소비가 늘지 않겠나 하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려울수록 허리띠를 더 졸라매는 것이 일본인들이다. 더구나 이달부터는 소비세도 더 물어야 한다.

일본 가계의 저축률이 높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저축총액이 1645조엔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는 약 16조달러로 미국의 연간 GDP 규모다. 그 구성비를 보면 현금 및 은행예금 비중이 53%로 OECD 국가 중 월등하게 높다. 물가가 오르지 않았으므로 돈의 가치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이제 일본에서 물가가 오른다고 일본인들이 이 저축을 허물 것으로 아베노믹스는 기대하였을까?

인플레이션이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기대는 허상에 불과하다. 아베노믹스 이후 이 커다란 덩치의 저축이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다. 가치가 떨어지는 현금이나 은행 예금으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가 상승한다고 소비 늘지 않아

엔 케리 트레이드 등 재(財)테크에 열중하는 일본의 가정주부들을 이르는 애칭 '와타나베 부인'들이 다시 나서고 있다. 엔화를 빌려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예금을 달러로 환전하여 외화채권 등을 사두자는 것이다. 엔화가 평가절하되더라도 이렇게 하면 저축의 가치를 보전할 수 있다. 외환거래 계좌 신규개설이 지난 한해 28%나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가 이들 가정주부들의 고뇌를 짐작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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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연초 한때 105엔까지 갔던 환율이 계속 인상되어 120엔까지 간다는 불안감이 와타나베 부인들 사이에서 나돌기도 한다.

블룸버그가 실시하는 경제전문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 GDP는 2분기에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는 후퇴하는데 인플레이션이라는 신기루를 쫓아 올인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반드시 일본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이 글은 <내일신문> 4월 23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실린 내용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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