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위기관리 문제 점검해 근본적 대책 세워야

상식과 합리적 사고로 생각할 수 없는 대형 참사가 우리 눈앞에 벌어졌다. 어느 시인이 노래한 ‘마른 뿌리로 가냘픈 생명을 키워내는 4월’에 존귀한 생명이 허망하게 사라져 가고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조선 산업을 보유하고 있고,  IT강국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6천달러가 넘었다며 선진국 운운하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우리 공동체의 안전과 위기관리시스템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참담하고 비통할 뿐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 에 대처하는 모습은 구포역 열차, 격포 훼리호, 성수대교, 서울 삼풍백화점 등 대형 사고가 속출하던 1990년대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되풀이되는 참사에 무기력한 나라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사고 발생부터 선박 승무원의 초동대응과 정부의 대처, 구조 과정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믿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부는 재난관리 지휘 체계, 구조인력과 장비 동원,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 탑승인원과 피해자 파악에서 잇따른 혼란과 실수를 되풀이 했다.

사건 초기부터 기본적인 재난대응체계를 갖추고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맞춰 신속히 대처했다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사건 초기에 구조작업을 시작했다고 언론 홍보하는 데만 급급하고 현장의 신속한 구조 활동에는 실패했다. 외국 언론들은 한국의 재난대응 체계와 위기관리의 후진성을 집중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유언비어ㆍ악성댓글ㆍ사기문자, 정치인의 종북 색출 주장, 공직자와 정치인의 부적절한 처신, 분별없는 SNS 사용 등 재난을 희롱하는 저급한 행태도 나타났다.

정부는 재난 및 안전관리를 총괄ㆍ조정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통합시스템을 구축했지만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셈이다. 선박의 위기관리 매뉴얼도 안전 불감증, 부실한 교육 훈련, 형식적인 관리로 유명무실했다.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 규제는 쳐부술 원수라고 외치지만, 이번 참사에서 규제 철폐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의 권위와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새 정부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 정치권, 전문가, 언론이 원인을 진단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각종 대책을 제시하지만 근원적인 문제 해결은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참사의 원인으로 선박운항 승무원의 무책임과 부도덕성, 선박의 구조변경, 불법적 화물적재 등 선박 측의 책임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부실한 안전점검과 재난관리 시스템, 사회 전반에 만연된 안전 불감증, 성장 중시와 생명경시 풍조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더 심각하다.

언론은 오보와 자극적인 보도를 자제하지 못했다. 속보 경쟁 때문에 미확인 정보들이 쏟아졌다. 일부 방송에서 ‘학생 전원 구조’ 오보로 학부모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인터넷 클릭 수를 유도하는 ‘어뷰징 기사’, 피해자들의 보험금, 가짜 잠수사 인터뷰, 구조된 어린 학생에게 던진 황당한 질문, 엉켜있는 시신 등 흥미위주의 보도행태가 줄을 이었다. 비통해하는 피해자 가족들의 모습에 카메라를 맞추고 슬픔과 분노에 잠겨 있는 이들의 비극을 상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사고원인과 책임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인민재판식 보도도 문제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안전과 위기관리 문제를 전반적으로 점검하여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철저한 책임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범정부 차원에서 안전정책과 재난관리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재해 발생시 현장 재난관리 활동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속적으로 안전에 대한 의식, 태도, 제도, 관행, 규범 등 안전문화의 정립과 교육 훈련이 필수적이다. 생명 존중의 가치관 확립, 안전의식의 일상화, 안전에 대한 자기중심적 사고의 탈피와 공동체 정신의 함양, 적당주의와 편법주의의 추방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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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해 품격을 잃어버렸다는 비판의 수위가 높다. 언론의 자유와 재난 보도 자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한국기자협회는 ‘신속함보다는 정확성의 우선’ 등을 명시한 보도준칙을 제시했다. 재난시 언론은 보도기관이면서 방재기관이라는 인식을 정립해야 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의 최소화와 심리적 안정을 최대한 고려하고, 상업적 선정적 과장보도를 자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국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을 고취시키는 일에도 힘써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재난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예방과 대비책을 심층적으로 추적 보도한다면 지속가능한 안전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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