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릴레이 詩(1)] 허영선 시인

'죽은 아기를 위한 어머니의 노래'

- 남원 '고사리' 김 할머니

 

                               허영선 시인

 

아가야

거친오름 능선이 발딱 일어나 나를 일으켰고

나는 맨발로 너를 품고 사생결단 내질렀다

내 곧 터져 나올 숨소리 막아내며 달렸다

 

거친오름 낮은 계곡으로 치달을 때
기어이 너는 세상을 열었구나
와랑와랑 핏물 흥건한 바닥에 너를 내려놓고
불속 뛰듯 달려야 했다 아가야
갈적삼 통몸뼈에 궂은 피 계곡으로
콸콸 쏟아져 내렸으나
너를 어쩌지 못했다 아가야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 몸은 검붉다 못해 뜨거운 용암덩이
나의 몸은 나의 몸이 아니었다 아가야
용서해라 사정없는 칼바람은 죄업으로 몰아친 내 심장을 가격했다

너를 버티게 해 줄 숲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가야


벼랑 위 심장을 억누른 내 생은 내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냐 내 청춘의 기슭 깊숙이
찔레낭 멩게낭 가시덤불에 긁히며 내려친 것은
2002년 사월 오늘도 고사리 삶으며
내 청춘의 피 흐르던 그날을 생각하면
잊힐 것 어찌 잊히겠느냐 아가야
이렇게도 출렁이는 심장은 다 무엇이냐 아가야
이름도 없었던 네 숨결인 양
한밤중 흐느끼는 거친오름 연노랑 양지꽃
바람 따라 어딘가서 숨 다한 너를 생각한다
등 굽은 고사리에 등 한번 굽힐 때마다
     

                        - 허영선 시집 '뿌리의 노래' 중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