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5) 오늘은 / 최성원(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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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의 푸른 밤 / 최성원 (1988)
장정일 소설가는 삼중당 문고를 모두 읽고 소설가가 된 모양이다. 나는 ‘동아기획’에서 나온 음반을 모두 듣고 시인이 되었다. 늘어지도록 들었던 테이프들은 거의 동아기획에서 만들었다. 들국화, 한영애, 빛과소금, 봄여름가을겨울, 어떤날, 장필순, 김현철, 푸른하늘 등. 컴필레이션 음반 ‘우리 노래 전시회’ 시리즈는 보물상자 같았다. 동아기획의 음반들을 우표 수집가처럼 모으며 사춘기를 보냈다. 그들의 음악에서 사랑과 이별과 그리움을 동경했다. 동아기획은 폐간된 ‘동서문학’ 같다. 잃어버린 자전거 같다. 빨간 지붕 2층집 소녀 같다. 춘천 가는 기차 같다. <들국화>는 노래 ‘내가 찾는 아이’의 아이들을 이제 모두 찾았을까. 아직도 찾지 못하고 부르고 있는 것만 같다. ‘인권이 형, 성원이 형, 찬권이 형, 구희 형, 진태…….’ 머리에 꽃을 꽂았던 허성욱과 북 치는 소년 주찬권은 숨을 거두었다. 최성원은 ‘푸르메’도 어른이 된 ‘제주도의 푸른 밤’을 다시 찾아 서귀포 바닷가 마을에서 살고 있다. 제주지역방송에서 디제이를 하는 모습이 동화 같다. 안정효 소설가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썼고, 나는 동아기획 키드의 생애를 써야 할 판이다. <푸른하늘>의 ‘겨울바다’를 듣고 친구들과 겨울바다를 찾아갔다. 바닷가에 앉아 목청껏 노래 부르며 우리는 파도소리에 귀를 적셨다. 김현철의 노래 때문에 무작정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춘천에 가서 막국수를 먹었다. 재작년이었나? ‘강정 생명 평화 걷기’를 할 때 탑동에서 최성원을 보았다. 용기 내어 사진을 함께 찍었지만 찍는 사람도 너무 긴장한 나머지 사진이 흔들렸다. 처음엔 잘못 찍은 사진 때문에 실망했지만 차차 그 흔들림으로 살아온 것만 같아 마음이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최성원도 이제 환갑이다. ‘바다의 속삭임’이 들리는 제주 방송국에서 오래오래 디제이를 하면 좋겠다. 나는 또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 최성원의 노래 ‘오늘은’을 신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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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택훈 시인.
[편집자 주] 현 시인은 1974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2007년 <시와정신>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지구레코드>와 <남방큰돌고래>를 펴냈습니다. 2005년 '대작'으로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2013년 '곤을동'으로 제1회 4.3평화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연재 제목이 '눈사람 레코드'인 이유는 눈사람과 음악의 화학적 연관성도 있지만 현 시인의 체형이 눈사람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가장 밀접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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