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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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후 칼럼] 선거 참여, 세월호 참사를 잊지않겠다는 맹세

세계 역사에 기록될 만한 대형 ‘인재’인 세월호 참사가 6.4 지방선거와 맞물려 공론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서는 언뜻 차분하게 보이지만 내면은 이글거리는 용광로와 다름없다. 거의 예방이 가능했던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변혁적인 추동력을 앞세워 미래로 이동하려는 흐름과 지배적인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저항하는 세력이 맞서 있는 형국이다.

‘위험에 대한 성찰’과 ‘생명․안전’ 프레임에 모두 동의하면서 각론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국민의 안전의식 강화부터 국가개조까지 백가쟁명(百家爭鳴)식의 말의 변주(變奏)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선거 과정에서 지지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와 같이 책임을 회피하고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빨리 지워버리자는 물타기 술수다. ‘미개한 국민’, ‘가난한 집 아이들’, ‘국민에게 기회를 주는 것’, ‘정부 비판은 종북’, ‘마녀 사냥’ 등 기득권을 지키고 국면전환에 급급한 행태도 함께한다.

권위적이고 복종만 강요한 산업화 시대에 발생한 와우아파트 붕괴부터 세월호 참사까지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일상생활에서 늘 위험이 함께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셈이다. 각종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수를 놓고 보면 우리 공동체는 전쟁터와 다름없다. 대형사고가 일어나면 잊지 말자는 말만 무성하고 고치는 시늉만하다 곧장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존귀한 생명을 안타깝게 잃어버린 영령에게 면목 없는 짓만 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지금까지 한 시대를 지배해 왔던 인식의 체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전환점이라는 의미에서 가장 교훈적이다. 망각과의 끈질긴 싸움이 불가피한 이유다. 지방선거에서 ‘안전’ 이슈가 사라지지 않겠지만 일부 세력은 출구전략을 집요하게 시도하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또 하나의 사건으로 묻혀버릴 공산이 크다.

이번 참사에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오래전에 시작되었고, 국민의 윤리 의식을 마비시킬 정도로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확인 할 수 있었다. 산업화 시대의 성장 패러다임이 만들어낸 수많은 위험요소와 돈에 눈이 멀어 생명․안전을 경시하는 풍조, 민주화 시대의 정치적 해결능력 부재와 관료사회 무능이 원인의 맨 꼭대기에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성과를 자만하고 그 한계를 도외시한 결과다.

헌법 34조 2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정부의 의무다. 위기는 최첨단기술 발전과 함께 앞서 나가는데 대응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는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무능력과 관료사회의 부패 실상만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담화에서 정부는 이번 참사에서 드러난 관료제의 병폐를 철저히 수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부 조직개편과 관료제 개혁, 징벌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지만, 생명 존중이나 소통과 공감․배려의 감수성은 미약하고 관료의 관료를 위한 관료에 의한 관료주의적 해법이 두드러진 것으로 평가된다. 국가 법령이나 제도를 정비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결정, 행동과 연대를 북돋아 주는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 개개인의 스트레스와 재난 위험도를 줄여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직업 관료제는 근대 사회가 발전하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독일 정치학자 막스 베버는 정당성과 효율성을 기준으로 합법적․합리적 권위가 반영된 조직을 관료제로 정의하고, 근대 민주사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으로 관료제를 제시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기존 관료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정권 교체 시 행정의 지속성을 확보하거나 우수한 관료의 열정 등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규칙과 절차의 지나친 강조, 서면주의, 무사안일주의, 비밀주의, 전문화로 인한 무능력, 환경 부적응력, 기득권 보호와 관료 카르텔, 부패 등 관료제의 병리 현상이 이번 참사에서 낱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된 이후 정부 관료제는 시장의 경쟁 시스템을 공직사회로 확산시키기 위해 고위공무원단, 개방형임용제, 전문가 특채 제도 등을 도입했다. 이번 대책은 공직 사회에 경쟁과 개방을 이전보다 확대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시장 원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료제를 개혁한다면 규제철폐와 민영화, 공공성의 붕괴는 가속화될 수 밖에 없다. 기업의 주장이 득세하고 관료제가 산업자본의 시녀로 전락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세월호 처리과정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관료제의 인간성 상실과 생명무시 현상이다. 사고 피해자와의 교감과 공감을 배제하고 신속한 사고처리에만 집중하는 관료들은 그야말로 ‘영혼 없는 공무원’이었다. 소통 감수성이 미약한데다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무능한 모습까지 더해져 국민들의 비난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생명정치’를 제시하면서 인간의 삶과 생명은 정치가 관여해야 할 일차적 대상이며 권력이 생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가 현대사회의 숙제라고 지적했다. 근대 정치는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정치’로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되면 생명은 버림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세월호 참사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 행복이 무참히 파괴된 대형 ‘인재’다. 이런 재난을 당하고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 공동체는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는 국가가 배은망덕(背恩忘德)하지 않도록 악순환의 고리를 과감히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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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성역과 제한 없이 진상을 규명하여 책임을 묻고 문제의 뿌리를 발본색원하는 일이 그 첫걸음이다. 관료제 개혁과 관피아, 부패구조를 척결하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위험상황에서 국민 한사람이라도 예외 없이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정부의 책무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주인의식과 행동이 급선무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월호를 잊지 않는 것,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 지방선거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우리의 맹세가 될 수 있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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