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사회적 약자 위해 ‘머리보다 가슴’의 도정 펴길

아름다운 승자와 패자

지방선거의 대장정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이전의 여론조사와 같이 낙승을 거둔 원희룡 후보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제주 최초의 비관료출신 민선지사로서 드디어 진정한 민주지사의 시대가 열리는 것에 대해 기대가 크다.

또 신구범 후보에게도 오랜 절치부심의 세월을 거쳐 재선에 도전해 현저히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우직한 뚝심을 보이며 끝까지 선전했던 것에 대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번 선거에서 신 후보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후보 토론회 때 보여준 그의 치밀한 분석력과 논리, 그리고 실용적이면서 합리적인 정책공약은 이번 제주지역 선거의 최대 화두였던 ‘세대교체’라는 단어를 무색케 했다. 그를 단순히 노익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욕된 말이었다.

그동안 시대의 변화와 도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실정을 거듭했던 전임 도지사들과 함께 ‘제주 3김’이라는 억울한 굴레에 씌어져 그의 남다른 능력과 포부가 결국 꽃을 피우지 못하게 된 것이 안타깝다. 그리고 “이 자리까지 서게 된 것만 해도 영광”이라던 신 후보 내조자의 유세장 발언은 수십 년의 재야생활을 통해 진심으로 자신의 몸을 낮출 줄 아는 지극한 ‘겸손함’이 묻어 나왔다. 그렇다. 이 민주시대에서도 국민과 주민을 섬겨야 하는 본분을 잊고 사는 공직자가 얼마나 많던가.

지방이 없었던 지방선거

이번 지방 선거는 전체적으로 “지방선거에 지방이 없다”라는 볼멘소리가 많았다. 여당은 세월호 참사에 의한 여론 악화를 무마하기 위해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 주세요”라는 마케팅 전략으로 유권자들의 이성보다 감정에 호소하는데 급급했다. 예상외로 이런 어이없는 전략이 먹혀들었지만, 그 와중에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공약은 지방선거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지방 선거가 주민들이 아니라 대통령을 위로하기 위한 것인가. 사고는 국민들이 당하고 위로는 대통령이 받는 격이었다.

이에 비해 우리 지역의 선거는 비교적 선거의 본질에 충실했던 편이었다고 평가한다. 원 후보는 대통령의 눈물에 의지하지 않았고, 신 후보도 세월호 참사의 반사이익에 기대려 하지 않았다. 상대편을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식 선거운동도 비교적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두 후보 간 상대적으로 큰 쟁점이 없었던 것은 전임 지사들의 실정에 공감하고 전면적인 개혁이 시급하다는데 이견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원 후보는 갑작스러운 출마 때문이었는지 공약의 세밀함과 참신성에서 조금은 부족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마을 탐방의 대장정을 통해 밑바닥 인심을 후보자가 직접 청취하는 새로운 방식의 선거운동은 제주 도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반면에 신 후보도 풍부한 공직 경험의 연륜 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착상의 참신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공약들을 제시했다.

도정 패러다임의 전환

원 후보에게 먼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성장 중심의 도정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원 후보는 보수정권의 기조정책이 성장에 편중돼 기업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국민들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의 권리가 소외되고 있다는 비판을 새겨들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결국 그동안 ‘성장만을 위한 성장’을 지향해온 우리의 왜곡된 욕망이 빚어낸 비극이 아닌가.

이런 관점에서 가장 우려되는 공약 중 하나가 ‘현장형 복지’ 공약이다. 현장형 복지, 맞춤형 복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새누리당은 중고교 무상급식마저도 부자급식이라고 비판하면서 반대를 한 바 있다. 중앙당의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원 후보의 현장형 복지도 단지 오늘날 민주국가의 대세인 보편적 복지를 적당히 희석하고 무력화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나 않을지 의심스럽다.

물론 복지를 위해서는 재원이 있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중앙정부와 도정의 의지다. MB정부는 멀쩡한 강바닥을 파서 시멘트를 바르는 공사에만도 거의 30조를 쏟아 부었다. 그러나 일자리는 늘지 않았고 도도히 흐르던 강물은 보에 막혀 썩은 구정물이 되고 있다. 그 정부가 삽질 공사에 내세운 “일자리 창출이 곧 복지”라는 주장은 ‘생산적 복지’라는 미명하에 아직도 새누리당의 복지정책의 지향점으로 머물러 있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관건이다. 성장은 눈에 쉽게 보이는 업적이지만, 복지는 눈에 좀처럼 띄지 않는 업적이다. 그러나 복지는 주민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다. 복지는 ‘진정으로 도민을 위한 도정’을 가늠 하는 시금석이다. 

복지와 관광의 연계

복지에 있어 예산이 가장 중요한 관건임을 감안하면, 관광과 문화를 접목시켜 산업경제와 주민복지를 연계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인다. 전임 도정들은 시대 흐름의 변화를 읽지 못한 채 발상의 전환을 하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성장 일변도의 관광정책을 고수하다가 주민복지를 소외시키는 우를 범했다. 기존의 관광정책이라고는 경관이 좋은 곳에 개발규제를 풀어주고 소나무밭, 촐밭 등 아까운 자연유산을 밀어버리고 거기에다 호텔과 골프장을 만들고 주변에 아스팔트 도로를 깔아주는 이른바 ‘삽질‘ 공사가 전부였다. 관광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보는 관광’에서 ‘즐기는 관광’으로 바꿔야 한다고 외쳐 댄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 우리 땅에 있는 것이라고는 국적 모를 허접한 박물관들과 관광업체들만이 ‘제주‘ 브랜드라는 껍데기를 쓰고 행세하고 있을 뿐이다.

외국 관광객이라고는 중국인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이 제주를 찾아올 때면 제주의 관광정책은 마치 옛날 앞바당에 들어온 멜 떼를 처치하듯 ‘뜨내기손님 벗겨 먹기 식’ 장사판을 연상케 한다. 제주의 진정한 문화를 보여주는 품격 있는 관광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모든 선진 관광국에서 볼 수 있듯이, 광장과 공원은 공동체문화를 고무시키고 발전시키는 공간으로서 주민들의 삶의 행복지수를 높이면서 궁극적인 관광 진흥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구시가지 유적지를 광장으로 만드는 신 후보의 공약은 주민복지와 관광을 연계시키는 시발점이 될 수 있는 긍정적인 방안이다. 예산상의 여건상 도심의 유적지에서 시작해서 도민들의 생활공간으로 광장과 공원을 점차 확대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원 당선자의 신공항 민자유치와 카지노 정책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신공항 건설이 제주의 궁극적인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무리하게 민자유치를 추진할 경우 자칫하면 대기업이나 외국 투기자본의 배만 불려주는 일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인천 공항철도나 인천대교 그리고 광주의 순환도로 등 민자 및 외자 유치로 건설된 전국의 숱한 기간시설들이 국내 및 외국 자본과의 불리한 계약조건으로 인해 투자업체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느라 매년 엄청난 지방 재정이 낭비되고 있는 실정은 제주 신공항 건설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카지노 육성공약에 있어서도 단순한 경제적 이익에 대비되는 정신적, 문화적, 도덕적 무형의 가치 손실을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카지노 산업이 제주의 대표적 미래 산업이 된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우스꽝스런 일이 아닐까. 

‘머리보다 가슴’의 도정

무엇보다도 가장 시급한 일은 강정주민들과 4.3 유족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진정한 대화의 자세를 잃어버린 중앙정부와 여당의 고압적인 자세다. 중앙 정부가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그들을 보듬고 눈물을 닦아줄 수 있도록 여당의 중진을 역임한 신임 도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그동안 고압적인 정치에서 철저히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머리보다 가슴’으로 도정을 펴는 지사가 됐으면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원 당선자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월등한 여론지지도만 보고 원 후보의 캠프로 철새 떼처럼 몰려 들어와 원 후보의 개혁적 정체성을 무색케 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도 있듯이 전임도정들의 실정은 사실 논공행상과 정실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원 후보 캠프의 ‘깨끗한 선거운동 서약서’는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는 파격적이면서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원 당선자의 의연함과 자신감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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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끝으로, 제주가 낳은 최고의 인재로서 도민 모두의 찬사와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상경의 길에 올랐던 그 날,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정들었던 고향의 산야를 보면서 까까머리 학생이 다짐했을 그 순수했던 열정과 초심을 부디 잊지 말길 바란다. 다시 한 번 원 후보의 당선을 축하한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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