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715_167616_4013.jpg
▲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강문규 칼럼] 당선인 행보, 저잣거리 그들과는 달라야

오늘 아침 조간신문에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당선인과 새정치민주연합 제주지사 신구범 전 후보가 포옹하는 사진이 실렸다. ‘제37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새도정준비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된 뒤 찍은 기념사진이다. 관련기사에는 원 당선인이 “도민대통합과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제주도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신 전지사가 최적의 대안이라고 판단, 준비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고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어 “편가르기 정치를 극복하고 진영의 논리를 뛰어넘어 협치와 통합정치의 초석을 마련해 준 신 전 지사께 감사 드린다”고 말하고 있다.

신 위원장도 화답의 멘트를 날리고 있다. “원 당선인의 인수위 이름이 ‘새도정 준비위원회로’로 결정되었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다”며 “도민 우선, 통합, 변화라는 새 도정의 3가지 키워드를 아우를 수 있는 일들을 기꺼이 맡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어 신 위원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제주도당과 당원, 당직자들에게 특별하게 감사드린다. 일련의 일들이 생겨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아름답게 해줘서 정말 감사드리고 당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면서 “새정치민주연합 당원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해 ‘탈당 의사가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앞의 기사에서 드러나듯이 원 당선인이 신 전 지사를 새도정 준비위원장으로 선임한 것은 ‘편가르기 정치를 극복하고 진영의 논리를 뛰어 넘어 협치와 통합정치를 펴기 위함’이라고 읽혀진다. 이미 여러 매체에 보도된 “행정시장, 부지사 등 기관장 임명에도 야당인사를 배제하지 않겠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까지 어느 도정에서도 볼 수 없었던 협치와 통합정치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원 당선자의 행보가 그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단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보여 진다. 원 도정이 협치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되어야 할 새정치민주연합 제주도당 측에서 보내는 반응 때문이다.

그 시그널은 몇 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나는 원 당선자에게 보내는 것으로 6월10일자 성명서 등에는 “(원 당선자가) 진심으로 초당적 협치를 이루고자 했다면, 상대당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에 따른 절차를 존중해야 했다. 그런데도 제주도당 위원장 등 상대당 지도부에 단 한 통의 전화, 말 한마디조차 간단히 생략해 버린 채 ‘사람 빼가기’에 나섰다”며 “이는 협치를 가장한 협잡”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또 하나는 신구범 전 후보에 대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제주도당은 지난 9일 밤 긴급 집행위원회를 개최, 신 전 후보에게 원희룡 당선자의 인수위원장직 제안 거절을 요청했다. 하지만 신 전 후보는 “제주도와 제주도민이라는 큰 목표아래서 선배 도지사로서의 역할을 판단해서(원희룡 단선자에)협력하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이에 새정치연합은 “제주도당 집행위원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신 전 후보가 인수위원장직을 수락한다면 신 전 후보가 스스로 당을 떠나는 게 도리”라고 일갈하고 있다.

신 전 후보에 대한 원희룡 당선자의 제안이 협치와 통합을 위한 진정성에서 비롯됐다면 지금의 불협화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일부에서는 원 당선자의 절차상의 사려 깊지 못함을, 또 한 자기가 속한 당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부득불 당적을 놓지 않겠다는 신 전 후보의 독선적 행태에, 한편으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협량에 대해서 아쉬움을 드러낸다. 

이에 대해 원희룡 당선자측은 새정치민주연합 측에 ‘자기 진영에만 매몰된 행태’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원 후보측에서 지향하고 있는 협치와 통합의 행보를 내딛으려는데 사소한 문제로 어깃장을 놓고 있다는 의미다. 일견 일리도 있다.

# 신구범 영입은 극적 효과 겨냥? 그러나 혼자만 의기투합할 일 아니
 
그러나 원희룡 당선자측이 상대당 후보인 신 전 후보에게 도정준비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긴다는 일이 사소한 일이 아님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 사안은 당사자인 신 전 후보만의 의기투합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원 당선자측의 제안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신 전 후보를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협치와 통합정치라는 극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다.

반대로 새정치연합측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원 후보측의 제안이 그렇지 않아도 도지사 선거 패배의 아픔 위에 또한번 소금을 뿌리는 잔인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 원 당선자측은 이러한 상대당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는가. 신 전 후보 역시 자기 진영의 아픔과 고뇌가 공감으로 다가서지 않는가.

대부분의 일에는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실사구시’도 그런 가르침을 일깨우는 말이다.  그러나 때로는 형식과 절차가 내용을 결정하고 지배하기도 한다. 지금은 많이 퇴색했지만 결혼식에 앞서 신랑측은 먼저 신부 집안에 예장을 보낸다. 그 전에 신랑 신부 양가는 미리 혼담을 나누기 때문에 결혼 절차는 마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예장을 보내고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그 또한 중요한 의례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세인들은 양가가 원만한 결혼에 이르렀음을 인정한다.

# 원 당선인 절차무시 ‘무례’ 사과, 야당도 피해의식 벗어나야

도지사 당선인의 행보는 저잣거리의 그들과는 달라야 한다. 취지와 목적이 아름답다고 형식과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그들 나름의 사고와 행태일 수는 있어도 다중의 공감과 지지를 얻기 힘들다. 더구나 당연히 있어야 할 형식과 절차를 무시하면서 상대방에게는 ‘진영의 논리’ 운운하면서 이를 매도하는 것은 듣기 거북하다. 마치 점령군의 포고령과 같은 억압의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강문규 얼굴.jpg
▲ 강문규 언론인, 전 한라일보 논설실장.

원희룡 당선자가 진정으로 협치와 통합의 정치를 펴고 싶다면 그 간의 무례를 사과하고 생략했던 절차를 밟았으면 한다. 야권에 대한 배려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신 전 후보에게 새도정준비위원장을 맡김으로써 제주사회의 협치와 통합을 이루어냈다고 하는, 일정한 홍보 효과는 거둘 수 있다. 하지만 ‘꿈의 시선’이 제주에 머무르지 않고 비상을 도모하려는 원 당선자의 입지로 본다면 그 시너지 효과는 지극히 제한적 범위에 그치게 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실험에 흔쾌히 나설 필요가 있다. 제주도민들이 바라는 것은 어느 진영의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제주호의 쾌속 순항이기 때문이다. / 강문규 언론인, 전 한라일보 논설실장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