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10) 사막의 왕 / 아무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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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판을사 / 아무밴드(1999)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음악이 끝날 때까지 이 글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이 사막의 법칙이다. 오랜 비행 끝에 우주선이 행성에 착륙했다. 행성은 사막뿐이었다. 가도가도 모래뿐이었다. 모래언덕을 오르면 또 다른 모래언덕이 산맥처럼 펼쳐져 있었다. 전갈이 지나간 자리엔 별빛가루가 흩어졌다. 그렇다고 전갈에게 행성의 내력을 물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은 없고 바랑을 하나 실은 채 낙타가 터벅터벅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오아시스가 신기루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도시가 있었을 법한 사구엔 선인장 하나 말라죽어 있었다. 음악이 떠돌다 주파수에 잡혔지만 몇 분 뒤에 그 음악마저 사라져버렸다. 재빠르게 그 음악을 저장해둔 사람은 새로운 문명을 말했지만 그의 입에서 서걱거리는 모래가 쏟아져 나왔다. 어디선가 모래폭풍이 불어와 우주선마저 덮어버렸다. 사람이 그리워 목이 탈 즈음 집시 행색의 <아무밴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장혁은 수족관 같은 표정으로 ‘사막의 왕’을 불렀다. ‘나는 텅 빈 나라의 왕 / …… / 넌 결코 올 수 없는 여긴 나만의 땅’이라고 부르짖었다. 잭팟을 터트린 나라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사막이 되었다. 노래가 끝나자 <아무밴드>는 해체를 했다. 이합집산이 잦았던 사람들은 끝내 다시 모이지 못했다. 이별의 왕, 돈의 왕, 절망의 왕, 구름의 왕이 모여 열린 회의는 근사하게 결렬되었다는 말이 바람 속에 섞여 들려왔다. 사막으로 이루어진 행성에서 사막에서 사막으로 걸었다. 그 행성을 사람들은 지구라고 한다.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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