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규 칼럼]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어제 약식기자회견을 했다. 예고뉴스를 접하며 스스로 후보자를 접겠다는 발표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후보자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이 반대 보다 거의 3배가 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다. 문 후보자는 자신의 발언이 와전됐거나 왜곡 됐다며 위안부에 관해서는 머리를 조아렸을 뿐이다. 그리고는 질문도 받지 않고 황망히 자리를 떠났다.

문 후보자는 우리나라의 일제지배, 6·25와 남북 분단을 ‘하나님의 뜻’으로 봤다. 교회를 다녀 본 경험이 있어서 모든 일을 절대자의 섭리로 보는 종교인의 관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단순 신앙인이 아니라 그는 총리 후보자다. 그래서 엄격한 검증을 피하기 어렵다.

문 후보자의 많은 발언과 칼럼에 관한 비판 중에서도 특히 경악스러운 것은 우리나라의 일제지배가 절대자의 섭리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을사늑약을 통해 나라를 팔아넘긴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노들은 신의 섭리를 이 땅에 구현 시키고자 했던 구원의 메신저들이라는 말인가. 또한 풍찬노숙하며 오로지 조국광복을 위해 일제의 총칼에 스러져간 애국독립지사들과 하루속히 그 날이 오기를 기다렸던 국민들은 신의 섭리에 저항하고 이를 훼방하려 했던 ‘사탄의 무리’라는 말인가. 일본의 죄과도 신의 섭리라는 해석 속에 오히려 찬양으로 뒤바뀌게 된다. 일본에서 문 후보자의 총리 내정 소식에 환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무지몽매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출중한 학력은 물론 중앙일간지의 주필을 지냈고, 서울대교수를 역임한 경력을 본다면 오히려 한 시대 지성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반역사, 반민족적인 역사인식을 가졌다고 비판될 수 있는 반지성적 인식과 발언들을 서슴지 않아 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문제의 발언은 민족상잔의 비극인 6․ 25와 남북분단, ‘위안부의 배상문제’, ‘공산당이 일으킨 4․ 3 폭동’, 게으른 DNA를 가진 민족성 등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어느 하나 민감하지 않은 사안이 없다. 하지만 온전한 사고를 가진 국민들의 인식과는 동떨어진 일제의 식민사관과 극단적 우익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다. 이런 사람이 총리가 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국가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하고, 국민적 인식과 다른 사관을 가진 이를 국민들은 총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설사 된다고 해도 국가유공자를 비롯한 국민들은 ‘문창극 총리’가  3․ 1절, 광복절, 현충일과 같은 국가기념일 식장에서 대독하는 기념사를 아무런 느낌 없이 그대로 들을 수 있을까. 

일국의 총리감이 그렇게 없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수첩을 버리고 눈을 주위로 살펴본다면 고매한 인격과 경륜을 갖춘 재상감은 이외로 많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럼에도 인사가 매양 졸속에 그치고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이유는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들을 정파적 시각의 범위에서만 찾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도 이미 시행해 왔던 탕평인사의 지혜를 배우지 못하고 국가의 지도자들을 지극히 저열한 ‘끼리끼리’ 범주에서만  찾으려는 협량이 자초한 결과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총리임명을 둘러싼 비판을 야당의 정파적 발목잡기로 탓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새누리당은 지난 지방선거 때 국가혁신과 국민통합을 약속하며 다시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읍소했다. 그리고 ‘세월호의 격랑’을 넘고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지지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렇다면 정말 거듭나려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런데 국정이라는 이름의 마차를 다시 깊은 수렁으로 이끈 이들은 누구인가. 국민과 야당인가, 아니면 국민들에 대한 선거 때의 약속을 불과 일주일도 가기 전에 잊어버린 ‘까마귀 뇌’를 가진 권력집단인가.

147825_167699_5828.jpg
▲ 강문규 언론인, 전 한라일보 논설실장.
많은 국민들은 ‘총리 후보자의 발언’을 접하고 환호하는 일본의 소식과 총리 청문을 강행하려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관한 뉴스를 보며 고전속의 한 구절처럼 ‘짓나니 한숨이요, 느나니 눈물’을 떠올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일제식민지와 6․ 25의 비극을 신의 섭리라는 지극히 개인적 신앙논리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인물이 5천만 국민의 리더가 되어서는 안된다.  ‘만일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는 성경의 경구를 청와대와 문 총리후보자는 두렵게 여길 일이다. / 강문규, 언론인, 전 한라일보 논설실장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