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12) 손잡고 허밍 / 재주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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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에게 / 재주소년(2010).

동쪽 일주도로를 지나면 생각나는 소녀가 있어. 삼양, 함덕, 동복 지나 김녕.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함께 창(窓) 문학부였던 그 아이. 고등학생이었지만 키가 참 작았던 아이. 한 손가락씩 손가락을 펼 때마다 어떤 무엇이 생각난다는 시를 썼던 아이. 시화전과 시낭송의 밤이 전설처럼 흘러. 저녁 무렵, 버스 정류장에 앉아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모두 어디로 흘러갔을까. 난 아마도 음악 얘기를 했을 거야. 그 당시 샀던 테이프들이 그것을 증명하지. <동물원>의 ‘혜화동’처럼, <재주소년>의 ‘명륜동’처럼 아련한 동네가 있어. ‘나의 모든 잘못을 다 감싸준’ ‘동네’는 ‘한 소녀’를 ‘처음 만나’ ‘지치는 줄도 모르고 온종일 돌아다니던 그곳’이라고 노래한 김현철처럼.(‘동네’) 언덕에 도서관이 있는 동네에서 살았을 때 도서관 등나무 아래 벤치에서 그녀와 마시던 커피는 설탕이 참 많이 들어가 있었지. 그 커피가 그리워 다시 찾은 그곳에서 혼자 마시던 커피는 너무 써서 다 마시지도 않은 채 등나무에 커피를 흩뿌리고 종이컵을 움켜쥐었지. 고등학교 문학부 시절, 강정천으로 소풍 가서 몸을 담갔던 여름에 은어들이 발가락을 간지럽혔지. 그 은어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강정이 다시 온전한 동네로 돌아가려면 또 얼마나 많은 노래를 불러야 할까.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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