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 (14) 삼승할망본풀이 3-삼승할망과 탯줄

1) 탯줄을 끊는 산파(産婆) 삼승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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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산육신 신화(産育神 神話) <삼승할망본풀이>에는 꼭 알아 두어야 할 낱말들이 있다. 예로부터 자주 써 왔지만, 지금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해진 단어다. 예를 들면, 아이를 ‘생불’이라 한다. 아이를 잉태시켜주고, 낳아서 15세까지 길러주는 산육신, ‘삼승할망’을 ‘불도할망’ ‘생불할망’이라 한다.

또 아기가 죽으면, 아기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신(神)을 ‘저승할망’ ‘구삼승할망’이라 한다. 그리고 삼승할망이 어깨삼승, 걸레삼승 같은 아기를 키우는 데 필요한 보좌 신들을 거느리고 아기를 15세까지 키워주는 땅을 ‘불도땅’이라 한다. 그리고 아이를 위한 굿, 아이를 낳고, 기르고, 아기가 병들었을 때, 넋 났을 때 하는 굿을 ‘불도맞이’라 한다. 그러므로 ‘불도’ 또는 ‘생불’ 같은 생소한 말들로 된 문장, “‘생불’을 위해 ‘불도땅’의 ‘불도할망’을 청하여 ‘불도맞이’ 굿을 했다.”면, “아기를 위해 ‘아기를 15세까지 키워주는 땅(불도땅)’의 삼승할망을 청하여 ‘아기를 위한 굿(불도맞이)’ 굿을 했다.”고 풀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삼승할망은 아이를 포태, 출산, 생장, 치료해 주는 신(神)이며, 의사(醫師)이며, 심방[巫]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삼승할망을 탯줄을 끊어주는 ‘태(胎)할망’, 넋 나간 아이의 넋을 들이는 ‘넋할망’이라 한다. 왜냐면, 어머니의 자궁[胎] 속에서 아이가 자라면, 어머니와 아이를 이어주는 생명선 ‘삼[生命]줄’이면서 ‘탯줄’인 ‘새끼[兒孩]줄’을 끊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생명의 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승할망은 ‘탯줄’을 끊는 외과의사이며 심방[巫覡]인 ‘태(胎) 할망’이다. 삼승할망은 예로부터 의사가 없는 마을마다 동네마다 있어 아이의 넋을 들이고, 아이를 가진 임산부의 해산을 도와주며, 탯줄을 끊어 주는 산파(産婆)였으며, 마을 본향당(本鄕堂)을 매고 있는 ‘당을 관리하는[堂漢] 당하니’였으며, ‘당 맨 심방[世襲巫]’이었다. 삼승할망은 ‘아이를 받는 할망[産婆]’으로 오늘날의 조산원, 산부인과 의사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병원에 가듯 당에 가서 정성을 다해 빈다. “일뤠당(이렛당)에 강 할마님안티 빌민, 아기 아픈 거 다 났나.(이렛당에 가서 할머니께 빌면, 아기 아픈 거 다 났는다.)”하며, 심방(삼승할망)을 데리고 당에 가서 신에게 정성을 다해 빈다. 이는 현대 과학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주사 맞고 약을 타다 먹으면 병은 치료된다.”고 믿는 것과 같다.

마을의 성소(聖所) 본향당(本鄕堂)은 속화된 현실계에 존재하는 불교의 사찰이나, 기독교의 교회나, 천주교의 성당처럼 하늘과 통하는 영적이고 성스러운 공간, 우주의 나무[宇宙木]인 당나무[神木]가 서있는 곳이며, 동시에 병원처럼 가서 신께 빌면, 영적인 치료도 이루어지는 우주의 중심이며, 마을의 심장이며 배꼽, ‘옴파로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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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탯줄의 의미 확산

나는 제주의 산육신 신화 <삼승할망(불도할망)본풀이>에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이쯤에서 삼승할망의 ‘탯줄’을 끊는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이 자료, 저 자료를 찾고 있던 때였다. 내가 찾는 자료는 바로 이거였다. 의사가 쓴 탯줄 이야기이며, 탯줄의 인류학적 의미, 신화적 의미까지 확대해 나간 옥 같은 연구서였다. 인간 출생의 신비한 과정이 어떻게 신화로 창안되었는지를 탯줄이라는 코드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설명해주는 책, 인류학, 신화학에 해박한 의사가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중국, 일본, 그리스 등 전 세계를 답사하고 자료를 모으며 발품으로 쓴 열정의 인류학 보고서, 김영균·김태은 공저 『탯줄코드-새끼줄, 뱀, 탯줄의 문화사』는 정말 읽으면 읽을수록 그 깊고 넓은 열정과 사랑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다각도로 열려있는 시선을 접하고 정말 고마웠다. 그의 글을 필요한 만큼 퍼 나르면서, ‘탯줄’의 의미를 정리할 수 있었다. ‘탯줄’의 확대된 의미 때문에, 나의 원고도 분량이 두 배로 늘었다.

배꼽이야기부터 해 보자. 옴파로스는 라틴어로 ‘배꼽’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델포이를 세계의 중심이며, 델포이 중앙에 있는 아폴로 신전 안은 중심의 중심, 배꼽에 해당하는 곳이고 ‘가장 신성한 장소’이다. 그리스인들은 이곳을 ‘우주의 중심’ 옴파로스라 생각했다 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한류의 중심이며, 세계의 중심은 탐라국의 광양당, 그곳은 삼신인(三神人)의 땅, 하늘과 땅을 잇는 우주의 중심인 삼성혈이며, 이곳은 한류의 배꼽, 옴파로스다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아이의 탯줄을 자른 자국, 배꼽은 성스러운 돌이며, 이곳으로부터 우주 나무가 자라고, 이는 천상의 세계와 연결되는 땅의 뿌리가 아닌가 하였다.

태아는 탯줄이 절단되면서 빛의 세계에 사는 여느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된다. 탯줄은 태아와 함께 어둠에서 빛을 보았으며, 두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아이는 모태 자궁에서 인간 세계로 이행되어 가는 중간자이며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자로, 생명을 얻었을 때는 ‘빛의 세계’로 나왔다가 죽어서는 ‘모태 자궁-땅’으로 돌아가는 ‘인간’이다. 탯줄은 천지를 잇는 끈이며, 우주나무로서 세계의 축이다. 탯줄이 절단되고 남은 부위는 배꼽이 되고 이 배꼽은 우주의 중심에 있는 ‘세 개의 구멍’, 탐라의 배꼽 옴파로스다.

탐라국의 1번지, 광양당은 본향당이며 천제를 지내던 제단 삼성혈이었다. ‘세 개의 구멍’ 그곳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유일한 하늘길이며 신이 오르내리는 사다리 역할을 하게 되었다. 거꾸로 매달린 태아, 우리들은 모두 거꾸로 선 나무가 된 적이 있었다. 임신 자궁 내에 수정란이 착상한 이후, 임신 2주째부터 태반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4개월 무렵이면 배아(胚兒)의 탯줄 형태가 보이고 태반에 매달리는 형상이 시작된다. 마치 땅속에 심었던 콩에서 뿌리줄기가 돋아나기 시작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임신 2개월이 되면 배아는 사람의 기본적인 모습을 갖추므로 이때부터는 배아가 아니라 태아로 불리며, 이제는 거꾸로 선 나무의 완연한 형상을 보인다. 푸른 하늘빛 속에서 나무 가지와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태아도 양수(羊水)속에서 움직이며 성장해 간다. 심리학자 로이드 데모스(Lloyd De Mause)는 뱀이 인간의 탯줄을 반영한다고 하였다. 고대인들은 탯줄이 뱀의 형상과 닮았으므로, 뱀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고, 뱀의 생물학적 특성과 생태를 탯줄에 투영시켰다. 고대인들이 뱀을 통해 본능적으로 느꼈던 공포는 결국 죽음에 대한 공포였으며, 이는 재생과 영생의 소망을 불러일으켰다.

뱀은 탈피(脫皮)를 통해 다시 재생되는 것으로 믿어졌으므로 뱀은 생명이요 부활의 상징을 가질 수 있었다. 모태와 태아를 연결하는 생명줄인 뱀이 유전자를 가진 아기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신성한 매개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기가 탄생할 때, 이 뱀을 절단하지 않으면 아기는 이 뱀에 의해 죽음에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뱀과 탯줄이 갖는 생명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징은 서로 동시에 투영되어 동일시 될 수 있었다. 새끼줄처럼 꼬인 뱀과 탯줄,  ‘탯줄-뱀-새끼줄’의 상징체계는 메소포타미아문명의 하나인 믹스테카 문명의 고문서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말에는 꼬아진 끈으로서의 ‘새끼줄’과 탯줄로서의 ‘새끼줄’이 같은 단어로 쓰이고 있다. 우리말의 ‘새끼줄’은 위의 두 가지 의미를 한꺼번에 통틀어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은 모두 ‘새끼줄’을 받고 태어나지만, 아득히 먼 옛날, 인간의 시조는 풀 지푸라기로 만든 새끼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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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찰흙으로 만든 왼새끼꼬임의 삼본승 모델.

‘갓 태어난 아기’를 이르는 ‘새끼’와, ‘탯줄’을 이르는 ‘새끼줄’이 어디에서 유래하였는지 그 어원을 찾아낸다면, 이는 고대로부터 인류 문화 속에 유전되어온 ‘새끼줄처럼 꼬인 뱀’의 메타포와 그 연결고리를 오늘날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는 열쇠가 될 것이다. 우리말의 ‘새끼’라는 단어의 사전 풀이를 보면, 새끼의 뜻 하나는 “짚으로 꼬아서 만든 줄, 초색(草索)”이고, 새끼의 뜻 다른 하나는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짐승”, “자식(子息), 아이(兒子), 2세(二歲)”,  “‘자식(子息)’을 낮잡아 이르는 말, 어린 것”, “(속되게) 어떤 사람을 욕하여 이르는 말, 놈”이다.

이를 종합하면, ‘새끼’는 초삭(草索) 혹은 고삭(藁索)이라는 한자어처럼 풀이나 볏짚을 꼬아 만들어낸 새끼줄이면서 또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어린 아이를 말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어린 짐승이나 사람을 천하게 이를 때에도 ‘새끼’란 말이 쓰인다는 것이다. 더구나 속된 욕지거리로 흔히 사용되기도 한다. 

이 책의 제2부는 새끼줄, 삼줄, 탯줄을 같은 뜻과 다른 뜻을 같이 이야기하며 의미를 넓혀나간다. 우리말에서 탯줄을 이르는 새끼줄은 ‘삼줄’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삼줄’의 ‘삼’은 어디에서 온 말일까? ‘탯줄’이란 말은 한자어인 ‘태胎’와 우리말 ‘줄’이 합하여 만들어진 조어다. ‘삼줄’의 사전풀이를 보면, ‘삼[麻]’이라는 뽕나무과 식물의 껍질에서 추출한 긴 섬유로 꼰 ‘삼노끈’을 말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탯줄’, ‘새끼줄’을 말하기도 한다.

『대국어사전』에서는 ‘탯줄-새끼줄’로서의 ‘삼’을 ‘뱃속의 아이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 태보(胎褓), 태胎’로 풀이한다. ‘태’는 한자어의 ‘胎’를 읽은 것으로, 사물의 기원으로서 ‘시작’과 ‘아이를 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주로 ‘태아’를 뜻한다. ‘태胎’는 태반, 탯줄, 태아를 통틀어서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삼’과 ‘태’는 거의 동일한 의미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하였다. 백문식은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에서, “탯줄은 ‘삼줄’이라고도 하는데 ‘삼’은 삶[生] 또는 퉁구스어의 saman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샤만’은 만주어로 무당을 가리키며 아울러 ‘태아를 싼 막과 태반’으로서 중요한 부분이나 핵심 같은 뜻도 포함하고 있다.”하였고, 서정범은 『어원별곡』에서, “삼터[出生地], 삼줄[胎줄], 삼바가지, 삼신할머니 등의 ‘삼’은 한자의 ‘三’의 뜻을 지니지 않고 있다. 출생, 태(胎), 해산, 생명의 뜻을 지니고 있는 말이다. 삼신은 생명 탄생을 주관하고 있는 여신이 된다고 하겠다.”하였고, 일본의 원주민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아이누인의 무당은 지금도 조산원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용준은 “제주신화의 삼신할머니인 ‘삼승할망’의 ‘삼’은 숫자 ‘3’이 아니라, ‘생기다’의 고어인 ‘삼기다’의 어간 ‘삼’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제주도 방언에서 ‘성교하여 아기를 잉태하다’라는 말을 ‘생기다’ ‘아이 생기다’의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상의 견해를 종합해 보면, ‘삼’이 ‘생기다’, ‘태어나다’, ‘지어내다’, ‘만들다’라는 동사의 고어 ‘삼기다’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보편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상언은 ‘삼’의 어원을 동사 ‘삼기다’ 뿐만 아니라 ‘삼다’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였고, 최길성도 『한국의 무속지』에 삼신은 ‘아기를 삼는 신’이라는 표현에서 ‘삼’은 동사 ‘삼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았다.

‘삼다’는 사전적 의미 가운데 ‘(짚신이나 미투리를) 만든다’가 있어 ‘삼기다’가 갖는 ‘만들다’와 같은 의미로 쓰임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사위를 삼다’, ‘머슴을 삼다’ 등에서 쓰이는 것처럼 ‘인간관계를 형성하다’라는 의미가 있어, 아이가 생김으로써 혈연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의미로 쓰일 수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삼다’는 ‘(삼, 모시섬유를) 비비어 꼬아 잇다’ ‘묶다’라는 의미도 있는데, 이는 실 끈을 만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새끼줄을 꼬아 만드는 행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새끼줄은 짚으로 만드는 줄이면서 사람의 탯줄을 이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삼’의 어원은 ‘삼기다’, ‘삼다’라는 동사의 어간 이외에도 ‘태-탯줄’을 이르는 명사로서의 ‘삼’일 수도 있겠다.

‘삼’이 ‘태(胎)’임을 주장하는 설들을 살펴보자. 이능화는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서 ‘삼’을 ‘태’로 읽고 ‘삼’이 신격화된 ‘삼신’을  ‘태신(胎神)’으로 정의 하였다. “속칭 삼신(三神)<풀이>(sam sin puri)라 하는데, 대개 풍속에 태(胎)를 보호하는 신(神)을 삼신(三神)이라고 한다. 우리말에서 태를 ‘三’(sam)이라 하는 것은 삼신(三神)을 이르는 바, 태신(胎神)을 말한다. 삼신(三神)의 ‘三’을 하나의 숫자로 봐서는 안 된다.”하였다.

육당(六堂) 최남선은 『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그 역시 ‘삼’을 ‘태’로 보고 있다. ‘삼’은 ‘새끼줄-탯줄-생명줄’이다. ‘삼 가르다(또는 삼 갈르다)’와 ‘삼불’이라는 표현이 ‘삼’을 ‘탯줄’로 결정짓고 있다. ‘삼 가르다’는 분명 탯줄을 절단하는 행위를, ‘삼불’은 ‘태를 태우는 행위’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삼’이 ‘생기다’의 고어 ‘삼기다’의 어간 ‘삼’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설이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삼’은 ‘삼기다’라는 동사의 형상화라고 할 수 있는 특정한 사물, 즉 명사로서의 ‘태’나 ‘탯줄’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으로 본다.

탯줄 속에 숨겨진 숫자 3의 미스터리를 살펴보자. ‘三神’에 나타난 숫자 ‘3’은 중국의 산속의 ‘세삼(洗三)’ 풍속은 우리에게 놀라운 수수께기를 건네주고 있다. 송조린(宋兆麟)은 『생육신(生育神)과 성무술(性巫術)』에서 ‘세삼’ 풍속을 소개하였는데, 이는 중국에 유래가 오래 된 영아 탄생의 의식으로 “아이가 태어난 지 3일이 되면 친척과 손님을 초대하여 아기를 물로 씻고 탯줄 끊은 것을 보여주며 잔치를 벌이는 풍속이다.”하였다. ‘세삼’은 ‘세아(洗兒)’ ‘아이를 씻는다’는 말이다.

숫자 ‘3’과 삼승할망의 미스터리를 살펴보자. 우리 민속의 ‘삼신’은 수태, 임신, 자궁을 관장하는 포태신(胞胎神)이고, 탯줄 절단을 포함하여 출산의 전 과정을 담당하는 산신(産神)이며, 나아가서는 아기를 점지하고 아이의 생육을 담당하기까지 하는 수사(授嗣) 산육신이다. 삼신은 집집마다 들어 앉아 있는 ‘가족적인 신’으로 술과 고기는 받지 않고 물 한 사발에도 만족하는 ‘어질고 인자한’ 신이며, 인간에게 삶을 나누어주고 다시 거두어 가는, ‘생명원리’를 구현하는 신이기도 하다.

삼신할머니를 제주지역에서는 ‘삼승할망’이라 부른다. 현용준은 『제주도신화의 수수께끼』에서 ‘삼승’에 관하여 새롭게 해석했는데, ‘승’을 ‘세상’으로 풀이하고, ‘삼승할망’을 ‘아기를 잉태시키는 세상의 여신’으로 보았다. 즉 ‘삼승’은 ‘이승’은 이 세상, ‘저승’이 저 세상인 것처럼, 또 다른 제3의 세상, 아이를 15세까지 키워주는 삼승할망의 나라, 불도국 또는 불도땅을 말한다. 그리고 ‘승’은 또 ‘삼기다’의 어근 ‘삼’에 붙은 조어로서, ‘아기를 잉태시키는 세상’ 정도의 뜻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김영균은 ‘삼승’의 ‘승’은 글자 그대로 ‘새끼줄 승(繩)’으로 보았다. ‘삼승할망’이 탯줄을 받아내고, 탯줄을 가르는 삼신할머니이므로, 그녀 역시 ‘탯줄’인 ‘새끼줄’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탯줄’이고, 다른 하나는 숫자 ‘3’이다. 그 동안 우리가 살펴본 대로 ‘삼’은 ‘태’를 이르므로, ‘삼승’은 ‘태의 줄’, 즉 ‘새끼줄-인人줄-삼줄’로서의 ‘탯줄’과 동일하고, ‘삼승할망’은 ‘탯줄(태를 주고, 탯줄을 자르는 등, 탯줄을 다루는)할머니’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또한 ‘삼’을 숫자 ‘3’으로 본다면 ‘삼승’은 ‘새끼줄-탯줄’로서 ‘세 가닥의 새끼줄로 이루어진 삼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때 ‘세 가닥의 새끼줄’은 인간의 탯줄이 갖는 특징적인 숫자 ‘3’을 그대로 드러내는 셈이 된다. 독자들은 ‘생명 원리’의 원형인 탯줄의 실체를 만나게 될 때, ‘삼승할망’의 ‘삼승’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될 것이고, 탯줄과 관련하여 우리의 문화와 세계의 문화를 어떻게 읽어야할지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탯줄 속에 숨겨진 숫자 3의 미스터리는 무엇일까. ‘삼신’이 ‘태신(胎神)’으로서 ‘세’ 가닥의 혈관이 하나의 탯줄을 이루는 해부학적 소견을 반영하고 있는 신(神)일 가능성이 있다면 그 동안 살펴본 ‘삼신’, ‘세삼’, ‘삼신속’, ‘삼신승’, ‘삼본승’, 특히 ‘삼승할망’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3’ 수는 모두 ‘탯줄’의 해부학적 특징의 모티프로 연결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에서 삼본승을 이루는 각 가닥들이 나선형으로 꼬여 가는 형태를 잘 관찰하기 위하여, 고무찰흙으로 만든 왼새끼 꼬임의 삼본승 모델을 만든 다음, 이를 절단해 보면, 적색, 청색, 백색의 각 가닥들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며 각기 ‘쉼표’ 형상을 만들어내고, 이들은 상대의 꼬리를 물고 왼쪽으로(시계 반대방향) 돌아가는 구도를 보인다. 이를 그대로 문양으로 만들면, 왼새끼 절단면이 보여주는 구도는 삼태극(三太極) 도상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와 같이 삼태극은 북이나 장고, 태극선 부채 등 우리 문화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문양의 하나로 고정되어 있다.

제주시 이도 1동에 있는 삼성혈은 아주 오랜 옛날 신화시대에 고을나(高乙那)·양을나(良乙那)·부을나(夫乙那)라는 삼신인(三神人)이 태어난 곳이다. 삼성혈은 둥그렇게 패여 있는 땅에 세 개의 작은 굴이 배치된 형태를 가지고 있어, 마치 인간 탯줄의 해부 조직학적 절단면을 보는 듯하다.

이는 사람으로 따지면 탯줄을 절단한 후에 남는 배꼽이다. 삼성혈은 제주도 사람의 전설적인 발상지로, 신화시대로 따지자면 세상의 중심인 ‘옴파로스’라고 할 수 있겠다. 삼성혈은 인간의 원초적인 탯줄과 배꼽의 형상을 보여주고 있고, 세계 문명권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삼신(三神)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므로, 한반도의 옴파로스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배꼽(navel of the world)으로 불려야 할 것이다.

3) 탯줄을 태워 묻은 땅, ‘태손(사른) 땅’이 본향(本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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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향듦.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제주사람은 본향(本鄕)이라 한다. 강렬한 ‘뿌리 의식’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왜 본향이냐고 그 어원을 더듬어 찾아보면 ‘그랬구나!’하고 가슴에 찡하게 전해오는 감동이 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이 본향(本鄕)인 것은 자기의 탯줄을 태워 묻어 둔 땅이란 것이며, 태 사른 땅이란 의미이다.

예로부터 제주의 어머니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 어머니와 아이의 인연의 줄, 생명의 ‘삼줄’이며, 어머니의 태반에서 아이에게 영양을 공급해주던 ‘새끼줄’을 잘라 태운 아기의 탯줄[胎]을 태운 검정을 항아리에 담아서, 새벽녘에 탯줄처럼 세 줄로 감겨 있는 길, 세 길이 만나는 삼도전거리(3거리) 어머니만 아는 비밀한 곳에 묻어두었다가, 아이가 피부병에 걸리면, 태를 태웠던 검정을 아픈 부위에 발라주었다.

태(胎)의 원초적인 생명력과 생명의 뿌리를 저장하고 있는 땅이 지닌 생명의 복원력으로 병든 아이의 피부를 소생시킨다는 영적인 주술이며 치료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주 사람들은 이 땅에 근거를 두고 사는 아이들에게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뿌리를 내린 본향(本鄕)이라 가르쳤던 것이며, 자기가 태어난 땅, 고향은 탯줄을 태워 묻어 둔 땅, ‘태 사른 땅’ 뿌리를 내린 땅, 본향(本鄕)이라 가르쳤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향은 대지의 배꼽이다. 어머니가 아기의 태, 생명의 원천을 묻어둔 곳이니, 제주에 마을마다 있는 본향당은 태를 묻은 땅을 지켜주는 토주관[地緣祖上]이 머무는 곳이며, 어머니와 아이를 이어주는 새끼줄, 하늘과 땅과 어머니와 아이를 이어주는 대지의 탯줄이며, 속화된 인간의 땅에 마련된 하나님과 영적인 교류가 가능한 거룩한 장소[聖所]인 것이다.

본향당신은 어떤 신인가? 자기의 탯줄을 묻은 땅의 신이지만 고대의 하늘굿[天祭]를 제주도 굿의 초감제 ‘본향듦’에서 큰 화살을 들고 사냥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삼성신화의 ‘삼사석’이야기도 “활을 쏘아 땅을 나누어” 사시복지(射矢卜地)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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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민속학자.

크게 보면 두 장면 모두 큰 활을 가지고 화살을 쏘는 장군의 모습이며, 이는 고구려의 활 잘 쏘는 아이 주몽이야기도 비슷하다. 모두 우리 민족, ‘큰대 大+활궁 弓’하여 만들어진 ‘오랑캐 夷이’가 아닌 ‘큰활 쏘는 사람 夷이’를 쓰는 동이족(東夷族)의 장군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큰굿의 본향당신의 활 쏘는 모습에서 한류의 배꼽인 광양당이거나 삼성혈을 한류의 옴파로스이며, 한라산에서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동이족의 장수 삼신인 삼을나를 그려보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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