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자본주의 스펙타클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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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노형동에 들어설 예정인 초고층 쌍둥이 빌딩 '드림타워'. ⓒ제주의소리DB

과거 누에치는 방과 하천 지역이었던 서울 잠실에는 거대한 건물이 하늘로 치솟고 있다. 지하 6층, 지상 123층(높이 555m)의 롯데월드타워다. 건축허가 과정에서 서울공항의 항공장애 논란과 건설 중에 발생한 산업재해로부터 교통체증, 땅이 꺼지면서 큰 구멍이 생기는  싱크홀과 석촌호수 수위가 내려가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초고층 빌딩의 역사는 미국에서 시작하여 100년이 지났다. 서구에서는 9.11테러로 파괴된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재건축을 빼고는 초고층 빌딩을 짓지 않은지 오래다. 현재는 중국과 중동 등 아시아 지역에서 경쟁적으로 세우고 있고 우리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부동산 경기 침체 이전에 건설 붐이 불었지만, 롯데월드타워만 추진 중이다.

바벨탑, 피라미드, 마천루, 300m 이상의 건물인 초고층 빌딩은 거대건축의 역사적 계보이자 인간의 자만심, 탐욕과 물신주의를 상징한다. 대형건물은 성스러운 공간이나 사람들이 밀집된 도시지역에 배치되어 스펙타클한 광경을 연출해 왔다. 현대 도시가 커지면서 좁은 공간의 활용과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건축기술 발전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1000m가 넘는 건물이 세워지고 있고, 1500m 이상의 높이가 가능하다고 한다. 반면에 스마트 시대에 초고층 빌딩과 같은 공간의 수요는 사라질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초고층 건물은 신의 노여움을 산 바벨탑, ‘야곱의 사다리’를 표현한 대성당, 도시의 수직적 랜드마크, 권력과 자본의 결합체, 자본주의 경제의 꽃 등으로 서사가 만들어지고 의미가 부여되었다. 경기 과열의 정점에서 짓기 시작하여 완공에 이르면 버블이 꺼지면서 경제 불황이 발생한다는 ‘초고층 빌딩의 저주’라는 말도 따라 다닌다. 거대 건축물은 거대함과 역동성, 풍요와 안정성, 경건성과 신뢰성을 복합적으로 구현하여 효율적인 선전매체로 활용된다.

초고층 빌딩을 비롯하여 올림픽‧월드컵 등 대형 이벤트, 크루즈 여행, 대형 쇼핑몰, 고속도로와 고속 철도, 초고가 명품, 4대강 사업, 유명인사인 셀레브리티 등은 대표적인 자본주의 스펙타클이다. 크루즈 여행과 고가의 명품 자동차는 화려함, 안락함, 인정을 받기 위한 과시욕을 보여주지만 인명을 해치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스펙타클 사회의 특징은 소비 욕망에 몰입하는 물신주의와 성장 과잉이 야기하는 위험성이다. 자본주의 스펙타클은 자본이 생산한 이미지와 환상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 사람들이 삶의 주인이 아니라 구경꾼으로 전락한 사회를 만든다. 프랑스 철학자 기 드보르는 스펙타클은 “이미지들에 의해 사회적 관계를 맺게하여 인간적 주체성을 마비시키고, 환상을 불러 일으켜 우리의 삶을 소외시킨다”고 지적했다.

스펙타클 사회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프로메테우스적 영웅의 모습으로 인간을 유혹한다. 과학과 기술적 지혜를 동원하여 인간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종교적 맹신에 버금가는 물신주의자를 양산한다. 화려한 소비중심의 사회로 치장하고 다양한 오락거리를 제공하여 시선을 한 곳으로 집중시킨다. 노동의 고통을 완화시키고 구경꾼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여가, 쇼핑, 대중문화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본주의 스펙타클은 일상적으로 인간의 의식과 공존하며 길들이고 조종하여 대형 재난의 폭력성에 대해 둔감하게 만든다. 화려한 소비욕망을 부추기는 성장 지상주의의 분위기에서 자본주의 스펙타클에 수반되는 위험은 무시되기 십상이다. 위험의 생산을 성찰하고 비판하기보다는 불난 집의 구경꾼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서구는 스펙타클 사회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도시가 안고 있는 환경과 생태문제, 성장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힘써 왔다. 초고층 건물이 주는 긴장과 피로감, 불통을 해소하고 인간의 행복과 안전을 목표로 도시 공간을 재구조화하고 있는 중이다. 구도심을 살려 사람들이 삶의 주체성을 살릴 수 있는 장소, 찾아가는 장소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서울 역사의 집적지인 종로의 골목길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현상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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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자극시키는데 초점을 맞춘 스펙타클은 포르노에 가깝다. 포르노 건축물은 나르시시즘을 유도하여 통찰력과 역사의식을 마비시킨다. 초고층 빌딩은 과학기술의 엄밀성을 바탕으로 안전을 강조하지만 파멸적인 위험성을 안고 있다. 스펙타클 사회의 풍요에 도취될수록 위험성은 자신과 별개 문제로 간주된다. 풍요는 사물을 파괴하는 낭비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 소통, 공감의 덕성을 찾아 볼 수 없게 한다. 자본주의 스펙타클을 구경꾼의 위치에서 보지 말고 다양하게 관조하고 성찰하여 문제의식을 갖는다면 초고층 빌딩의 환각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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