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의 숨, 쉼] 스며듦의 삶

태풍이 달리 태풍이 아니다.
밤새 세상을 채운 빗소리 바람소리가 둔한 육신의 감각을 깨우니, 아주 오랜만에 주말 늦잠을 반납하고 새벽 세상을 본다.
눈 뜨고 바라본 그 곳에는 자연(自然)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또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올해 초 해거름 오후, 먹고 사는 일 때문에 고산에서 대정으로 급히 가던 중이었다. 시간이 정해진 일이라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늘 가던 길을 마다하고 지름길일 것 같은 소롯길로 들어섰다. 구불구불 밭담의 선이 아름다웠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겨울비까지 주룩주룩 오기 시작했다. 더 다급해진 마음을 토닥거리며 가는데 순간 눈에 들어오는 한 장면에 나도 모르게 차에서 내려섰다.
저무는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장대비가 좍좍 쏟아지는데 활활 타오르는 불길.
새빨간 불길.
주변은 조용했고, 빗소리만 들렸고, 그 무엇인가를 태우는 불길은 계속 저 멀리서 타오르고 있었다. 불길위로 반짝반짝 비가 내리고 있었다.

원래 물과 불은 상극 아닌가. 그런데 저렇게 물과 불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은 또 뭔가?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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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주 작가의 <제주 ‘그 곳’ 숲속을 가다> 전시회에서 본 작품.
그리고 한 달여 후 난 다시 그 느낌과 만났다.
제주 출신 안현주 작가의 개인전인 -제주 '그 곳' 숲 속을 가다-에서다.
일 년 여간 곶자왈의 사계절을 꼼꼼히 앵글에 담은 작가는 그 풍광들을 실제 의상에 펼쳐놓았다. 사실 전시장에 들어간 순간 난 잠깐 고민했다. 
내가 잘 못 들어왔나. 의상전인데.
그런데 저게 뭐야.
그림인가, 조형전인가.
인공적이거나 도회적인 느낌을 떠올리게 하는 의상전이 자연스럽게 곶자왈과 만나니 저렇게 작품이 되는구나. 숨 없는 옷에 생생한 생기를 불어넣어 함께 춤추는 옷을 만들었구나.

자, 이쯤에서 난 자연(自然)에 대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인 ‘위키백과’ 에 따르면 자연(自然)은 다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1.인간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그대로의 현상과 그에 따른 물질
2.산, 바다, 호수와 같은 자연 환경
3.사람을 제외한 자연물 모두
4.사람을 포함한 하늘과 땅, 우주 만물
5.인위적이지 않은 행동이나 현상

그리고 어원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자연이란 낱말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도덕경의 여러 곳에서 이미 쓰이고 있다. 도덕경에 나타난 자연의 의미는 인간 사회에 대해 대응하여 원래부터 그대로 있었던 것, 또는 우주의 순리를 뜻한다. 도덕경에 나오는 자연은 현대어의 자연과 달리 명사가 아닌데, 원래는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도덕경 주해에 '천지임자연'(天地任自然)이라는 말이 있는데, '천지'(하늘과 땅)는 현대어의 자연(Nature)이고,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뜻이므로, 이를 요즘말로 옮기면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에 있다'라는 뜻이다.

어릴 때부터  내 머리를 채웠던 자연은 1,2,3,5번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슬슬 4번의 희미한 느낌이 점점 확신으로 치닫게 됐다. 삶의 지혜가 주는 선물이다.

사람을 포함한 하늘과 땅, 우주만물이 자연이고 스스로 그러함이 자연이라면 이젠 쉽게 이해된다. 물과 불의 만남, 인공과 풍광의 만남이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다. 애써 자연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와 저 혼자 중얼거리지 말고 자연에 스며들어 모두와 어깨동무하면 모든 일이 ‘ 스스로 그러함’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자연이 되는 것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결국 행복한 삶이란 자연에 스며드는 삶이어야 한다.
스며듦의 삶은 나에게 길을 묻는 것이다.
나에게 길을 묻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나처럼 지혜가 모자라고 미욱한데다 팔랑 귀인 사람에겐 더욱 힘든 일이다.
삶이 객관식 문제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내가 애써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미 주어진 예문이 있고 난 그 가운데 정답만 찾는 훈련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자꾸 예외인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몇 가지 예문에 담을 수 없는 상황들이 계속 생기다 보니 난 할 수 없이 스스로 선택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쉬웠다. 누군가에게 묻고 또 물어보면 되니까.
그런데 이것도 곧 한계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나는 누군가가 아니라 나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삶이 갑자기 서술형 문제로 변해버린 순간이었다.


요 몇 달 간 끊임없이 생각했다.
스며듦의 삶을 위해 나에게 길을 묻는 것이 중요하다.
힘들고 복잡했다. 자신도 없었다. 내가 맞는 길을 가고 있나?
그래도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다.
자연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삶, 이제 이게 내 삶의 길이다.

나도 잘 못하면서 감히 얘기한다면,
지금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 혹은 지도자의 자리에서 어떤 선택으로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슬쩍 한마디 건네고 싶다.
자연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삶이 기준점이 되면 어떻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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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섬(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제주의소리
태풍도 지나가고 곧 무더위가 온다 한다.
태풍도 바라보고 무더위도 즐기면서 난 나에게 내 길을 물어야겠다.
끝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발걸음은 멈출 수 없다.
한 발, 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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