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85) 이공신화와 원강아미 이야기1
 
*** 제주도 무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서천꽃밭은 목숨을 살려내는 생명꽃, 자손을 번성케 하는 번성꽃,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환생꽃, 피오를꽃, 살오를꽃, 웃음웃을꽃, 울음울을꽃,싸움하게할꽃, 수레멜망악심꽃, 검뉴울꽃(시들시들 죽어가는 꽃) 등 신비한 여러 꽃들이 있는 곳이다.
이공신화는 이 서천꽃밭의 꽃들을 관리하는 주화신(呪花神)인 이공신(二公神)의 내력담이다(이공신은 원강아미가 낳은 아들 할랑궁이다). 이공신화 이야기에 이어지는 필자의 글은 이공신화 속의 여신, 원강아미에 주목하는 글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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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제주전통문화엑스포. 제주 큰굿의 도 다른 미 ‘기메’ 展에 전시된 수레멜망악심꽃(위)과 안내글(아래).

옛날 김진국과 임진국이 한 마을에 살았다. 김진국은 가난했고 임진국은 천하 거부였다. 둘 모두 자식이 없었다. 김진국, 임진국 부부는 동개남은중절에 들어가 같이 백일 불공이라도 들여 보기로 했다. 가난한 김진국 대감의 불공 비용은 임진국 대감이 대기로 했다.
절에 이르자 임진국이 김진국에게 말했다.
“김진국 대감, 우리 아들이나 딸이나, 누가 뭘 낳든 간에 ‘구덕혼사’를 하면 어떻소? 우리 인연이 이러하니 하늘이 맺어준 인연으로 알고 서로 사돈이 되기로 합시다.”
“어서 그건 그리 합시다.”

두 친구는 석 달 열흘, 백 일 동안 부처님 전에 수륙재를 들였다. 김진국은 아들을 낳고 임진국은 딸을 낳았다. 사라도령과 원강아미라 이름 지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이 아이들을 불러 앉히고 절로 수륙 드리러 갈 때부터 너희들은 구덕혼사를 했다고 알려주었다.
원강아미는 부모님이 정해준 혼사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두 아기가 자라 젊은이가 되니 둘은 혼인을 했고, 원강아미는 스무 살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하루는 원강아미가 물을 길러 가는데, 하늘옥황의 황세곤간이 내려와 원강아미의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이 마을에 사라도령이라고, 어디 사는지 아시오?”
“무슨 일로 사라도령을 찾습니까?”
“나는 옥황상제의 분부를 받고 사라도령을 찾아온 황세곤간이라 하오. 사라도령에게 서천꽃밭의 꽃감관 일을 맡으라는 전갈이오.”
원강아미는 황세곤간에게 ‘이 재 넘고 저 재 넘어 가시라’ 일러주고는 지름길로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와 남편 사라도령을 찾았다.
“설운 남인 님아, 당신이 서천꽃밭 꽃감관 일을 맡아 하라는 하늘옥황의 명을 황세곤간이 가지고 왔습니다.”
원강아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황세곤간이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지엄한 명에 사라도령은 떠날 채비를 하였다.

아무리 모진 길이라도 남편을 따라 가야 한다는 생각에 원강아미는 울며 매달렸다.
“설운 남인 님아, 제발 나도 같이 데려 갑서.”
울고 매달리는 원강아미가 애처로워 사라도령은 같이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원강아미도 임신한 몸으로 서천꽃밭을 향해 출발했다.
서천꽃밭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며칠 지나지 앉아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더니, 터지고 피가 흘렀다. 부푼 배를 안고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날이 어두워지자 부부는 억새에 의지해 잠을 청했다.
지친 몸이 무정눈에 잠이 들었다. 초경 닭도 울고 이경 닭도 울고 삼경 닭도 울고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설운 남인 님아, 닭 우는 소리 아닙니까? 이게 어디서 들리는 것입니까?”
“이 마을 소문난 부잣집 제인장자 집 닭 우는 소리 같소.”
“설운 남인 님, 서천꽃밭에 가려면 얼마나 남았습니까?”
“멀고도 먼 길이오. 이제 시작이나 마찬가지요.”
“그렇습니까? 그러면 이 일을 어찌합니까? 남인 님아, 내 발에서 피가 멈추질 않습니다. 더 이상은 이상 걸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가지 못할 것 같으니 저기 천하거부인 제인장자 집에 가서 저를 종으로 팔아두고 가십시오.”
원강아미가 사라도령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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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제주전톤문화엑스포. 서순실 심방. 이공질치기 장면(2013.3.24.).

부부는 마을로 내려가 제인장자 집으로 들어갔다.
“이 여자를 종으로 팔려고 합니다만….”
제인장자의 큰딸이 밖으로 나와 두 사람의 행색을 보며 말했다.
“아버지, 저 종을 사게 되면 우리 집안 망합니다. 사지 맙서.”
둘째 딸도 나오더니, 말했다.
“아버지, 저 여자는 우리 집안을 ‘수레멜망악심꽃’ 으로 멸망시킬 종입니다. 사지 맙서.”
이어 작은딸이 나오더니, 원강아미의 피가 배인 발과 항아리 같은 배를 보더니, 말했다. 
“이 여자를 얼마에 팔겠습니까?”
“보시다시피 이 여자는 임신을 하고 있습니다. 어미는 삼백 냥을 주고, 배 속에 든 아이는 백 냥을 주시오.”

막내딸이 제인장자에게 말했다.
“아버지, 저 종을 사두었다가 아기가 태어나거든 아버지의 심심소일거리나 하면 어떠시겠습니까?”
“어서 그건 그리하자.”
제인장자는 막내딸의 제안으로 어머니는 삼백 냥 뱃속 아이는 백 냥에, 종으로 사들였다.

사라도량이 청을 넣었다.
“우리 부부, 이제 헤어지면 언제 만날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밥이나 함께 나누고 헤어지려 합니다. 밥이나 한 상 차려 주십시오.” 
“그건 그럽시다.”
제인장자가 이별하는 부부에게 맞상을 차려주었다. 종으로 팔리는 신세가 된 원강아미는 사라도령을 떠나보낼 현실 앞에서 비새같이 울었다.
“설운 남인 님아,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은 무어라 짓습니까?"
“아들을 낳으면 ‘신산만산할락궁이’, 딸을 낳으면 ‘할락댁이’라 이름을 짓도록 하오. 이걸 두고 가리다.”
사라도령은 얼레빗을 반으로 꺾어 원강아미 손에 쥐어주고는 서천꽃밭으로 서둘러 떠났다.(계속/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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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제주전통문화엑스포. 제주전통문화 전시. 얼레기( 201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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