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춘 칼럼> “후세를 위해 비워두는 것도 道...욕망의 부피 줄여야”

우연히 책꽂이 속에서 20년 전 제주도 지도를 찾았다. 간결하고 비어 있다. 유명 관광지가 생겨 꽉 채워진 지금의 제주도 지도보다 정겹다. 적절한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우선 멈춰 서서 어디로 갈 것이지, 무엇을 만들 것인지 고민할 시간이다.

허나 우리의 식욕은 멈출 줄 모른다. 끊임없이 개발하여 경제의 부피를 키워야 개인의 살림살이도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자연을 마구 파괴하고 새 건물이 지어진다. 작금에는 중국 자본까지 가세하여 중산간까지 파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근대의 발전논리다.

지금 제주도는 개발로 몸살을 앓고 죽음 직전이다. 근대적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식은 인류 보편의 것이 아니다. 근대는 특정한 시대와 공간을 배경으로 형성된 것이며, 시간 공간의 특성에 따라 삶의 방식이 다를 수 있고 달라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근대를 탈피하여 다음 시기를 준비할 때다. 어디로 갈지 모르면 멈춰 서서 조망하자. 빈 곳을 빈 채로 놓아두는 것도 미덕이다. 빈 곳이 오히려 우리의 숨통을 트게 한지 않는가.

노자는 살아갈 방식을 도라 했고, 도는 빈 그릇이라고 했다. 알맞게 가져다 쓰면 채우지 않더라도 그곳에는 다시 생명이 담긴다.

그래서 “거기에서 얼마든지 퍼내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진흙을 이겨서 질그릇을 만든다. 그러나 그 내면에 아무 것도 없는 빈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릇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을 만들고 창문을 뚫어서 방을 만든다. 그러나 그 아무 것도 없는 빈 곳이 있기 때문에 방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노자의 <도덕경> 11장) 그릇이 비어 있어 쓸모가 있듯이, 제주도 자연이 개발되지 않고 남겨 있어 쓸모가 있다.

아이를 키우다 집이 비좁다고 느낀다. 이러저러한 살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집으로 이사하면 큰 집에 어울리는 세간살이를 채워 넣어 결국 비좁게 산다. 무엇을 더 먹어야 만족할까. 무엇을 더 채워 넣어야 만족할까. 우리의 욕망은 정말 끝이 없다. 우리는 이따금 옛날이야기를 하고 산다.

예전에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풍성한 가을, 먹을 것이 더욱 풍성했던 한가위를 그리움처럼 말하곤 했다.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그런데 지금은 한가위만은 못하겠지만 늘 풍성하게 배불리 먹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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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남춘 제주대 교수.
지구의 사정을 염두에 두고 보면 어떻게 지금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겠는가. 이제 욕망의 부피를 줄여야 한다. 개발의 논리도 접어야 한다.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긴 하지만, 지금 제주 모습을 잘 지켜나가면 좋겠다. 제주가 지금만 같아라.

저 한라산이 우뚝 저기 있듯이 올 한가위 우뚝 서서 풍성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덜 가질수록 저 자연은 풍성한 법입니다. 제주가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 허남춘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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