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인문학 기자단 '와랑'] 여중생에게 추석이란

음력 8월 15일은 추석이다. 중추절, 가배, 가위, 한가위라고도 부른다. 중추절이라 하는 것도 가을을 세 달로 나누어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었으므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새로 거둔 햅쌀로 풍작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이는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한 결과다. 하지만 내 삶은 추석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열다섯 살, 청소년이다. 대한민국 여중생에게 추석이란 어떤 의미일까. 와랑 기자단 팀장님께서는 나에게 “달맞이 구경을 하거나 가족끼리 즐겁게 휴식을 했던 추석의 추억을 일기처럼 편하게 쓰면 된단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른들은 정말 ‘우리들의 고달픔은 전혀 모르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돌아오면 고부갈등이나 시월드 같은 단어들과 함께, 며느리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방송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우리 엄마도 고생을 하신다. 며느리가 엄마밖에 없어 더 힘이 드실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가지만 아는 소리다. 엄마의 차례상 준비는 과연 엄마 혼자의 작품일까? 엄마의 심부름을 듣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바로, 바로, 바로 우리 집에서는 열여섯 살짜리 큰언니와 열다섯 살 나이다.

 추석 전날 우리 가족은 친가로 간다. 아빠, 엄마, 언니, 나, 남동생이 도착한다. 친가에는 어른들 빼고 남자는 8명이고 여자는 5명이다. 남자가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일을 하는 것은 여자아이들이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언니들과 수다를 떨기도 바쁜데 방에 모여 있으면 “어디, 여자들이 엄마 일하시는데 도와 드리지 않고 놀고 있느냐”고 하시며 부엌으로 호출한다. 일단 친가의 마당이나 방들을 깨끗이 청소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릇을 깨끗한 수건으로 닦아야 한다. 다음은 음식준비다. 초등학교 때는 그나마 음식 만드는 것은 시키지 않았는데 중학생이 되니 돼지고기 적갈(산적의 제주어)을 나무 꼬챙이에 꽂아야 한다. 소고기도 마찬가지다. 돼지고기 껍질이 있는 부분은 특히 잘 들어가지 않아 고생을 한다. 어떨 땐 피가 묻어 나중에 씻어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음식을 다 만들고 나서 추석 당일이 더 걱정이다. 북적거리는 친가에 점심시간이 되면 여자어른들은 물론 여학생들도 여자 어린이도 바쁘게 움직인다. 한 쪽에서는 반찬을 뜨고, 한 쪽에서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고, 국과 밥 여러 반찬들을 운반해야 한다. 또 한 쪽에서는 설거지를 한다. 이 광경을 보면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 같아 보인다.

누가 전쟁터에 남자만 나간다고 했나? 여자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모두 명절대첩에 참가한 것이다. 남자 어른들과 남학생들은 다른 방에서 시중을 받고 편안하게 먹는다. 할머니를 포함한 여자어른들 그리고 여학생들은 궁녀같이 남자들이 편안하게 먹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큰 언니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 싫어 몇 년 째 “아, 정말 싫다. 왜 남자는 일을 안 하고 여자들만 일을 해야 하는데”라고 말하며 짜증을 부린다. 사촌오빠에게도 일을 하라고 해 보지만 “허허, 남자가 하는 일이 아니야.” 라며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일을 하지 않고 도망친다.

또 불쌍한 건 현재 5학년인 남동생이다. 큰언니는 내 동생은 이렇게 자라게 할 수 없다고 적갈(산적의 제주어)도 함께 만들고 잔심부름도 시키고 음식을 나르게 한다. 엄마의 조수가 우리 두 딸이라면 남동생은 두 누나의 조수가 되는 것이다.

멀리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우리 막둥이는 남자인데도 심부름도 잘하고 효자구나”하시면서 용돈 오천 원을 준다. 언니와 나는 어이가 없다. 몇 년 째 일하는 언니와 나는 명절에 일을 했다고 돈을 받더라도 천 원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남자가 일을 여자처럼 해도 불평등이 계속되는 것이다. 

나는 추석을 추궁이라고 부르고 싶다. 추궁(追窮)은 잘못한 일에 대하여 엄하게 따져서 밝힌다는 의미이다. 왜 남자들은 명절에 일을 하지 않나? 유교문화 중에 남녀유별은 좋지 않은 사상이라고 학교에서도 배우고 있는데 말이다. 왜 외가보다 친가를 먼저 가야 하나? 학교에서도 양성평등 글쓰기를 하며 앞으로 양성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며 여학생들에게 비행기 조종사, 여군, 대통령, 권투선수 등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며 가르쳤는데.

하지만 비행기를 운행하는 여자 조종사도, 어딘가에서 군인들을 가르치는 여자부사관들도 모두 다 명절에는 남자의 도움 없이 일을 하고 있겠지. 그리고 그 일하는 여자 어른들 밑에는 나처럼 여학생들만 바글바글 조수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아 걱정이다.

서연주.png
▲ 청소년 인문학 기자단 '와랑' 1기 서연주 서귀중앙여자중학교 2학년. ⓒ제주의소리
나는 이번 추석부터 만나는 남자사촌들에게 추궁할 것이다.
 “넌 왜 일을 하지 않니? 우리랑 같이 명절 음식 만들자.”
이 글을 읽는 여학생들도 힘들게 혼자 일하지 말고 주변에 있는 오빠와 남동생을 추궁하자. 배짱이 된다면 아빠와 할아버지도 추궁하시기를.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