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⑮]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다. 사람들은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 ‘즐길 거리’를 찾는다.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데는 두 가지 함의가 있다. 21세기인들의 삶의 질이 엄청 높아졌다는 것과 문화가 경제를 떠받치는 토대요, 경제를 이끄는 동력이 됐다는 거다.

프랑스가 한 해 문화예술로 벌어들이는 돈은 570억 유로(76조원)로, 프랑스 자동차산업의 7배, 전자통신 산업의 2배가 넘는다. 말하자면 물화가 국부 창출의 원천이 됐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선진국이란 문화가 체질화되고 내면화된 나라, 문화를 지렛대로 활용할 줄 아는 나라이다.

해방 이후 역대 제주도지사 중 문화를 중시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문화를 잘 모른 탓도 있지만 그 시절엔 다리 놓고 도로 빼는 일이 더 시급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시민들의 문화욕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제주도가 변방이 된 까닭은 이 섬이 ‘문화소외지대’요, ‘문화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문화를 살려내면 제주도는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고, 그 일을 해낼 선도자는 지사라고 본다.

원희룡 지사는 큰 물에서 놀던 정치인이다. 그는 뭔가 전임자들과는 다른 정책으로 제주도의 미래를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도민들은 갖고 있다. 필자는 예술인의 입장에서 그가 ‘문화예술지사’가 되기를 바란다. 문화지사의 첫 번째 역할은 무엇일까?

세계 각국의 유명 관광지에서는 전통문화 예술 공연이 다반사로 펼쳐지고 있다. 공연 형태는 춤, 노래, 총체극, 버라이어티 쇼 등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공연물을 문화관광의 아이콘으로 활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공연 수입이 막대하다는 거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제주도의 정치인, 행정가, 예술인, 관광사업가 그 누구도 문화상품에 관심이 없다. 요즘의 관광 트렌드가 자연경관 보다는 테마 관광, 문화체험 관광으로 바뀌고 있는데도 말이다.

국제관광지라는 이곳에 세계인에게 내놓을 수 있는 문화상품 하나 없다는 건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결국 문화관광의 중요성을 인식한 도지사의 결단이 문제를 푸는 열쇠요, 지름길이다. 도지사의 용단이 없이는 누가 아무리 떠들어 봐야 백년하청이요, 공염불에 불과하다. (필자는 30년 전부터 떠들어 왔다) 분명히 이 문제는 원 지사의 문화적 식견과 혜안을 가늠해 보는 시금석이 되리라 믿는다.

문화라는 소프트 파워가 시대의 대세다. 이 흐름을 읽지 못하는 지도자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없다. 원 지사가 진정 큰 정치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온 국민이 고대하던 대망의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가 슬로건처럼 내세운 ‘협치’ 그 이상을, 그 너머를 봐야 한다.

151424_171267_3654.jpg
원 도정의 캐치프레이즈가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다. 자연과 사람의 가치는 추상적이므로 시비할 사람이 없을 터이나, 문화 가치는 변별이 가능하다. 원 지사가 임기를 끝내고 야인으로 돌아갈 때, “당신이 문화가치를 키우기 위해 한 일이 뭐야?”라고 물으면 뭐라 답할 것인가! ‘제주도의 힘’이 무엇인지 열방에 보여줄 역사적 사명이 그에게 있다. 역사상 모든 위대한 업적들은 예리한 현실 인식과 심원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태동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장일홍 극작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