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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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 ⓒ 고봉선

‘장미꽃’ 하면 저는 왠지 유럽의 화려한 파티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는 많은 종의 장미 원산지는 대다수가 아시아라고 합니다.

색깔도 다양하거니와 야생 장미도 있고 재배되는 장미도 있습니다. 한 송이씩 피는 장미가 있는가 하면 무리 지어 피는 장미도 있습니다. 홑꽃이 있는가 하면 겹꽃도 있습니다. 이렇게 각양각색의 모습을 지닌 장미는 가시를 지니고 있음에도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장미보다는 길가에 밟히고 밟히는 개불알풀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도 이 책을 덮으며 왜 장미꽃을 떠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내면 깊숙한 곳에 ‘장미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막 봉오리를 밀어 올린 흑장미나 백장미는 저 역시 무척이나 좋아하니까요.

지난 7월, 4학년 필독서로 “말로 때리면 안 돼(김대조, 노혜영, 이재희, 장지혜 글, 김은주 그림, 주니어 김영사 펴냄)가 선정되었습니다. 욕과 관련된 네 편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욕에 울고 욕에 웃는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로 언어폭력을 다룬 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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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 ⓒ 고봉선

은수와 강지는 욕 잘한다고 친구를 사귈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며 욕연습을 그만둡니다. 막돌이는 말할 때마다 ‘개’자를 붙여 욕을 하다가 동네 개들에게 혼줄납니다. 태국이는 온라인에서 대화를 하거나 게임을 할 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욕을 합니다. 민호는 욕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고치지 못합니다. 재미있어서 혹은 강해 보이려고 욕을 습관적으로 하는 등장인물들. 주인공들이 자신의 언어습관을 되돌아보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언어습관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됩니다.

물리적인 폭력을 당했을 경우는 외관상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언어폭력은 폭력을 당하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개 머신, 개 조아. 개 쩔어.’와 같은 정체불명의 언어가 욕인 줄도 모르고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극찬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이랄까, 우리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 중에는 욕을 쓰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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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 ⓒ 고봉선

아이들이 한참 글쓰기를 하는 중에 저도 모르게 한 마디 툭 던졌습니다.
“난 참 행복한 사람 같아.”
“왜요?”
사각사각 연필소리만이 들리는 정적을 깨고 뚱딴지 같은 말을 던지는 내게 아이들이 묻습니다.
“문득 생각이 났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 공부방에는 욕을 쓰는 아이들이 없다는 거야. 이거야말로 행복 중에 행복이 아닐까?”
말 같지도 않다는 듯 아이들은 피식 웃고 맙니다.
하진이는 명랑하고 쾌활한 데다가 무척이나 활동적인 아이입니다. 피부도 까무잡잡하며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그래서 더 역동적이며 매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어느 날 하진이가 그랬습니다. 우리 반 남자아이들이 마구 욕을 썼다고. 그래서 나도 욕을 썼노라고. 웃으며 달랬더니 한마디 변명도 없이 다음부터 욕을 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정말로 다음에는 목구멍까지 욕이 올라와도 삭혔답니다. 무척이나 대견하고 더 예쁘게 보였습니다.

책을 덮으며, 하진이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장미를 좋아하는 이유, 눈길을 끄는 이유,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 향기로운 이유. 이 모든 찬사를 듣는 이유는 가시가 있어도 욕을 쓰지 않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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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 ⓒ 고봉선

장미
-<말로 때리면 안 돼!>를 읽고

나 비록 가시 있어도 욕을 쓰지 않습니다
예쁘다 향기롭다 좋아한다 하는 이유
가시를 추슬러가며 꽃 피우기 때문이죠.

학교에서 아이들이 마구 욕을 썼답니다
멋있게 보인다나, 힘이 세 보인다나,
하진이 목구멍에도 가시 하나 돋더래요.

가시를 삼켰어요 꽃이 되고 싶어서
너도 웃고 나도 웃고 모두가 웃었어요
고운 말 쓰다가 보니 절로 장미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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