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개발 DNA, 제주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제주도가 중국인의 섬으로 변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백록담에서 바닷가 올레길까지 중국인이 넘쳐나는 광경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저녁 때 신제주의 바오젠(寶健) 거리를 거닐면 중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린다. 관광객뿐이 아니다. 이제 중국 돈이 제주의 땅과 건물을 겨냥하여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작년 제주를 방문한 중국인은 약 181만 명이었다. 올해는 9월 말에 200만 명을 돌파했고, 연말까지 230만 명이 제주를 방문할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 평균 하루 6천300명의 중국인이 비행기나 크루즈를 타고 제주로 상륙한다. 한국을 방문하는 요우커(遊客: 중국관광객) 3명 중 1명이 제주도를 방문하는 꼴이다.

한라산에 불로초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중국인들은 제주도를 이렇게 좋아할까. 
제(齊) (나라) 사람 서불(徐巿, 徐福이라고도 함)이 글을 올려 말하기를,
"저 멀리 바다 건너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의 삼신산(三神山)에 신선이 사는데, 동남동녀를 데리고 가서 모셔오고자 합니다."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부분이 바로 진시황이 춘추전국을 통일한 후 불로장생의 영약, 즉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서복(徐福)을 삼신산으로 파견했다는 역사적 근거이자, 오늘날 전해지는 불로초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의 출처다.

그 이야기 중 하나가 서복이 동남동녀 3천명을 데리고 불로초를 찾기 위해 영주(瀛洲), 즉 제주도까지 왔다갔다는 전설이다. 영주(瀛洲)는 고대의 제주 지명이다. 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서울대 강연에서 한중 관계의 역사적 단초를 바로 서복(徐福)의 불로초 여행에서 찾았다. 최초의 중국인 제주 관광단은 약 2천200여 년 전 서복이 이끄는 3천명의 동남동녀였던 셈이니 중국의 단체 여행단 규모는 예부터 컸던 셈이다.

이런 옛 인연 탓인지, 한중 수교 이후 중국 지도층의 제주에 대한 친근감 과시는 좀 특이하다. 1995년 짱쩌민 주석을 필두로 리펑, 주릉지, 후진타오, 원자바오, 시진핑 등 권력 핵심부 인사들이 거의 예외 없이 제주를 들러 글씨를 남기는 등 특별한 이벤트를 가졌다.

중국 관광객에게 제주의 매력은 보다 현실적이다. 중국은 대륙국가로 제주도처럼 청정한 바다와 높은 산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섬이 없다. 중국 최대의 도시 샹하이에서 비행기로 1시간 이내 거리이고, 베이징 텐진 등 중국 동부 심장부에서 2시간 거리다. 그리고 비자 면제 지역이다. 중국인들은 국내 여행 보다 더 가까운 해외여행을 자유롭고 편하게 할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중국인들은 이제 제주도를 구경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투자하고 살고 싶은 곳으로 본다. 이미 이러한 변화에 속도가 붙었다.

중국인들이 소유한 제주도 토지는 현재 약 180만 평에 이른다. 중국인이 소유한 콘도는 1348가구이며, 이를 매입하기 위해 중국인들이 쓴 돈은 9,600억 원이다. 게다가 중국의 거대 부동산 회사들이 대규모 개발프로젝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인의 ‘제주 사들이기’에 불을 붙인 촉매제는 지난 2010년부터 시행한 투자이민 제도이다. 외국인이 50만 달러 이상 투자하면 바로 거주 비자를 발급해주고 5년 후 영주권으로 전환해주는 특혜다. 이렇게 해서 사실상 영주권을 받은 중국인은 800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불과 4년 동안에 벌어진 일이다.

중국인의 '제주 사들이기' 열기로 제주도의 부동산 값은 삽시간에 폭등하면서 부동산 시장을 흔들어 놓았다. 또한 제주도의 미래 가치로 불리는 자연 환경은 중국 자본 앞에 풍전등화 신세다. 역대 도지사들이 투자 유치란 명목 아래 중산간 지대의 난개발을 가속화하더니, 이제 중국 자본까지 가세했다. 한라산의 계곡변에는 오늘도 불도저 소리가 요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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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종 전 한국일보 주필, 국제녹색섬포럼 이사장.

경제 성장으로 중국에는 부자들이 수없이 생겨난다. 중국의 구매력은 미국을 넘어섰다. 2020년에는 국내총생산(GDP)에서도 미국을 앞질러 세계 제일의 경제력이 될 것이다. 돈을 쥔 중국의 코앞에 놓인 제주도가 온전할 것 같지 않다. 10년 안에 제주도는 중국인에 의한 상상하기 힘든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변화는 피할 수 없지만 그 방향은 중국 부동산 세력이 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청정 자연과 아름다운 도시가 조화롭고 품격 있게 공존하는 섬으로 갈 것인지, 난개발로 볼품없어진 저급 관광지로 갈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다. 한국이 걸어온 개발 DNA를 생각하면 제주의 미래 모습이 걱정스럽다.

 

 

* 이 원고는 오늘자 내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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