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우선 개발, 문제는 나중에?

얼마 전에 들렸던 서해안 간척지는 갯벌의 풍광은 사라지고 황량했다. 너른 벌판은 갈대로 가득 찼고, 간혹 염생식물이 눈에 띄었다. 가을은 모든 식물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온 힘을 기울여 씨앗을 튼실하게 하는 시기다. 가을 바람은 갈대의 마른가지에 남아있는 열매를 사방으로 흩날렸다. 갈대는 내년을 기약하며 지난 여름에 흠뻑 머금은 물기를 버리고 뻣뻣한 줄기에 달린 열매에 정성을 쏟는 모습이다. 해안 절벽의 자취와 폐허로 변한 해변의 횟집 마을, 거창한 개발계획과 그럴듯한 슬로건을 보여주는 광고물이 간척지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간척 사업은 부족한 농경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려시대부터 소규모로 시작되었다. 대표적으로 오늘날 강화도 해변이 직선으로 변한 것은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간척 때문이다. 강화도의 복잡한 해안선 자취는 축조된 둑 안에서나 찾아 볼 수 있다. 바닷물이 들어 오고 나간 흔적은 서해안의 지명에 보이는 포(浦), 택(澤), 제(堤), 진(津), 탄(灘) 등에 남아있다.

서해안의 본격적인 간척사업은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하여 경제 개발시대까지 대규모로 시행되었다. 간척으로 국토면적과 농경지는 넓어졌고, 식량생산에 기여를 했지만 생태적 가치가 뛰어난 갯벌 습지가 많이 파괴되었다. 어패류의 감소는 물론 환경오염 뿐만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간척사업의 효용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커지고 있다.

농업용으로 추진된 간척사업이 토건적인 입장에서 대규모로 추진됨에 따라 남아도는 간척지의 개발문제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이미 간척된 지역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 지방자치단체 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일부 자연보존의 차원에서 관광 습지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대규모 첨단 산업시설, 관광 테마공원, 농축산화훼단지 등으로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경제 활황 국면에서는 자본유치가 꿈틀댔지만 경기 침체기인 요즘에는 거의 진전이 없는 상태다. 또한 토건업계에서는 갯벌이 대규모로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강화도와 가로림만의 조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미련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

간척사업과 유사한 사례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희귀 산림자원의 보고인 정선 가리왕산의 겨울올림픽 알파인 스키장 건설을 들 수 있다. 올림픽 알파인 스키장은 위험성 때문에 프로선수가 아닌 일반인은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2주 간의 겨울올림픽 행사에 활용하기 위해  건설되는 알파인 스키장은 일찍이 자연 파괴의 주범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만 사용하기 위하여 유전자원 보호구역인 가리왕산의 벌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자연훼손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여 원래의 개발계획을 축소 조정했지만 올림픽의 경제적 효과와 국가브랜드 가치 제고를 내세워 밀어부치고 있다. 올림픽 이후에 보호구역으로 환원하여 복원한다고 하지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월드컵축구를 제외하고 올림픽과 같은 대형 국제 이벤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점점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효과는 의문시 된다. 지역 브랜드 제고에 빠져 대규모 스포츠 행사를 유치한 인천, 대구, 영암은 성공하지 못하고 막대한 부채만 남겼다. 이제 국가주의, 상업주의를 걸고 추진되는 대규모 행사는 실패할 가능성이 커졌다. 스마트 시대는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자연보존과 복원, 재활용과 지속 가능성의 관점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준비해야 할 이유다. 

방조제를 짓고 갯벌을 메우거나 희귀한 산림을 개발하면 당장에 경제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경제효과는 그리 크지도 않고 시한부 효과가 되기 십상이다. 간척사업이나 올림픽을 수많은 생물의 삶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막대한 경제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동굴의 우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연과 환경, 갯벌, 바다 생물과 나무, 들풀은 경제효과라는 프레임에 갖혀 꼼작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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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자연은 한번 손대면 복원하기가 매우 어렵다. 간척지를 재자연화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막대한 비용만이 아니라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다. 보호종과 희귀식물의 서식처인 가리왕산을 벌목하고 복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발을 성장과 동일시하고 자연환경 보존을 정체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서해안 간척지 개발과 가리왕산의 자연 훼손 문제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경제성장을 위해 우선 개발하고, 발생되는 문제는 나중에 수습해도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지 못한다면 ‘동굴’ 밖으로 나오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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