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초대석] 고성규 전 JDC 투자사업본부장 “유토피아로서 요건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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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규 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투자사업본부장. ⓒ 제주의소리

“정체불명의 비전”

제주가 비전의 혼란을 겪고 있다고 진단한 한 전문가의 말이다.  

그가 지목한 비전은 ‘互通無界 好樂無限 濟州’(호통무계 호락무한 제주). ‘교류와 비즈니스의 경계가 없고, 무한한 만족과 즐거움을 얻는 곳, 제주’라는 뜻이다.

제주 미래 10년의 설계도이자 제주 개발과 관련한 최상위 법정계획인 제2차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제2차 종합계획, 2012~2021년)에는 제주의 비전이 이같이 한자로 명시됐다.

문제를 제기한 이는 고성규씨(66). 이른바 ‘잘 나가는’ 기업의 CEO를 지냈고,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투자사업본부장(2007년 2월~2009년 5월)으로도 일했던 그다.

JDC가 어떤 조직인가? 말그대로 ‘제주 개발’을 최대 목표로 삼는 기업이 아닌가. 

기가 찰(?) 노릇이다. 제주 개발을 위해, 투자 즉 해외자본 유치에 첨병 역할을 해야 할 위치에 섰던 당사자의 입에서 거친 혹평이 나왔으니, 엄청난 용역비를 들여 설정한 제주 비전이 단단히 체면을 구기게 됐다.  

무엇이 이토록 그를 흥분하게 만들었을까. 

제2차 종합계획을 수립한 것은 2011년 12월. 중국인이 무서운 기세로 밀려들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러자 당시 도정은 미래 제주의 생사(生死)가 마치 중국인(관광객)에게 달려있다는 듯 그들에게 올인하다시피 했다. 모든 관광, 개발 정책은 중국인, 중국자본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제주 비전이 중국어로? 리더 무책임-한계 씁쓸”

고 전 본부장은 이게 몹시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아니, 안타까웠을 것이다.

“10개년이라는 장기계획을 세우며, 중국이라는 시장 하나에 초점을 맞추어 기조전략을 대(對)중국 공략이라고 천명하고, 심지어는 비전까지 제주도민이 잘 알지도 못하는 중국어로 표기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하며, 리더들의 제주 가치에 대한 인식의 협소함과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중국을 전략 시장의 하나로 목표화(targeting)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중국만이 살길이라고 올인(all in)하는 정책은 시장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 특히 중국 경제가 경(硬)착륙할 경우에는 예기치 않은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고 전 본부장의 이러한 문제의식을 똑같이 드러낸 도의원이 등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위성곤 의원(서귀포시 동홍동)이다.

위 의원은 지난 11월20일 도정질문에서 “제2차 종합계획에 제시된 비전에는 불행하게도 한글로 된 게 없다”고 일갈했다. 그 원인을 “용역 과정에 도민들의 참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는 비전 수정을 주문해 원희룡 지사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럼, 고 전 본부장이 그리는 비전은 무엇일까.

먼저 그는 “비전의 서술은 간단 명료하되 미래의 야망을 내포하여 공동체 전 구성원이 쉽게 기억하고, 밝고 큰 미래를 곧바로 연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비전은 리더와 구성원이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어야 하므로, 구성원 전원의 공유와 공감이 생명이다. 허황되거나 과장되게 현란한 수식어로 설정된 비전은 비전의 운영 초기부터 구성원에게 피로감을 주거나 외면당하기 십상이며 리더의 신뢰를 파괴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비전은 간단 명료해야” ‘자긍의 섬, 제주’ 새 비전 어떨까

그런 점에서 고 전 본부장은 국제자유도시라는 비전이 더 이상 우리가 지향할 유토피아로서의 요건이 소멸됐다고 단언했다. 한마디로 ‘유통기한’이 지난, 낡은 프로젝트라는 얘기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세계화(국제자유도시)와 지방화(특별자치도)라는 전략적 과제는 제주만의 전유물이나 전공과목이 아니며, 우리나라 모든 지자체의 교양과목으로 간주된다. 

이같은 상황과 맞물려 제주 발전에 관한 이슈와 담론들이 10년 이상 제자리를 맴돈 현실을 고 전 본부장은 ‘잃어버린 10년’에 빗댔다.

그리고는 △새 비전으로 ‘자긍(自矜)의 섬, 제주’ △경제비전으로 ‘친기업 글로벌 시티’ △환경비전으로 ‘친환경 생태도시 제주’ △도시 브랜드(도시 마케팅 슬로건)로 ‘Your Pride Jeju'를 각각 제안했다.  

이 가운데 자긍(Pride, self-respect)의 섬은 △제주 주민이 살면서 자긍심(Pride)을 느끼는 섬 △제주 방문자가 제주 방문과 여행을 자랑(Pride)하고 싶은 섬 △제주의 투자자가 자부심(Pride)을 느끼는 섬이라고 정의했다.

2년 전 현역 은퇴 후 경기 용인에 거주하면서 ‘의미있는 귀향’을 준비중인 그는 두 달 전 쯤 ‘국제자유도시 제주’의 현주소와, 미래 비전, 실천 전략 등을 담은  저서 ‘제주의 프라이드(Pride)와 미래가치경영’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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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진 제주의소리 편집국장(오른쪽)과 인터뷰 중인 고성규 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투자사업본부장. ⓒ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가 지난 27일 고 전 본부장을 인터뷰에 초대했다. 

-집필 동기가 궁금하다.
“제주의 젊은이들은 제주의 최대 자산이며, 최대 주주임에도 제주의 미래가치에 대한 의구심으로 제주를 떠난다고 생각했다.
‘창조계급’(Creative Class)의 저자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의 다음과 같은 경구가 떠오른다.
‘젊은 층 인구를 한번 상실한 지역은 그들을 다시 찾아올 수 없으며, 젊은이들을 상실한 도시는 다른 도시들을 따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젊은이가 떠나는 섬은 미래 희망이 없는 섬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이 책을 통해 제주의 젊은이들과 제주 미래의 가치에 대해 소통하고자 했다. 또한 제주를 좋아하는 육지의 우호세력과 투자자들에게 제주의 미래가치를 홍보하는 IR(investor relation, 기업설명활동) 자료가 되기를 원한다” 

“젊은이 없는 섬 희망 없어” ‘제주의 미래가치’ 한 권의 책으로...

- 책 제목을 ‘프라이드...’로 달았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자긍심, 자부심을 뜻하는 프라이드는 일류 기업의 조건이다. 지자체의 경영 입장에서 봐도 제일 중요한게 자긍심이다. 그런 자부심을 일깨워주려면 제주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제주의 내재가치가 무엇이고, 비전 달성을 위한 핵심가치가 무엇인지...공동체가 그걸 공유하면 자부심이 생길 것이다. 저는 전부터 제주에 대해 ‘아일랜드 오브 프라이드’(Island of Pride)라는 말을 했다. 제주의 고객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제주 주민이다. 제주에서 나서 평생을 제주에 살아온 주민. 두 번째 고객은 제주를 여행하는 관광객 또는 방문객이다. 세 번째는 제주발전의 파트너인 투자자다. ‘세 부류의 고객이 전부 프라이드를 느끼게 하는 섬을 만들어야겠다’ ‘제주의 백년대계가 거기에 있는 것 아니냐’. 거기에서 제주의 프라이드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 ‘제주를 경영’한다고 했다. 남모를 뜻이라도 있나.    
“제주의 내재가치를 재조명하고, 제주 공동체 모두가 공유해야 할 핵심가치를 찾아내 선택의 오류에 따른 낭비와 숨겨진 미래비용을 최소화하는 제주의 경영방식을 모색하고 싶었다”

-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제주에 대한 짝사랑의 연가(戀歌)? 제주의 시민으로서 우물 안의 검푸름만 보는 것이 아닌, 우물 밖의 파란 하늘을 보고싶은 바람 정도? 세상은 자기를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이해해주는 한 분의 독자라도 있다면 출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 ‘제주의 가치’, 그리고 ‘미래가치’는 무엇인가.
“가치라는 개념은 금전적 가치(financial value)와 정신적, 철학적 가치 두 가지다. 제주의 가치란 이 두 개념을 모두 포함한다. 제주의 본원적 가치인 내재가치와 공동체 구성원이 공유해야할 핵심가치(가치관)가 그것이다. 제주의 미래가치는 결국 제주의 통합적 비전으로 이 책에서 제안하고 있는 ‘자긍의 섬’의 결과물인 셈이다”

-도시 마케팅 슬로건으로 ‘Your Pride Jeju’를 제안했다. 어떤 의미인가.
“앞서 언급한 제주의 고객 즉 주민, 방문객(관광객) 및 소비자, 그리고 국내외 투자자 모두가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제주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세계화(국제자유도시)는 이미 보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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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규 전 본부장의 저서 '제주의 프라이드와 미래가치 경영' 표지. ⓒ 제주의소리
- 책에서 ‘잃어버린 10년’이란 표현을 썼다. 지금의 여당이 과거 ‘야당집권 기간’을 이렇게 규정한게 자꾸 연상된다.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서 시작해서 2006년 특별법(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으로 바뀌는데, 그 법의 역사의 길이를 얘기한 것이지, 정권이나 제주도정 하고는 관계가 없다. 법을 만들어서 시작을 했는데, 지금 국제자유도시가 제대로 있는 것인지, 맞는 비전인지...그것을 일단 ‘잃어버린 10년’으로 표현한 것이다”

- 책에서 국제자유도시라는 비전이 유효한지 물음을 던졌다. 더 이상 우리가 지향할 유토피아로서의 요건이 소멸됐다고 했다. 제주의 비전으로서 국제자유도시가 폐기돼야 한다는 의미인가?
“저는 변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세계화라는 개념은 (이미)보편화됐다. 국제자유도시는 세계화를 얘기하는 것 같다. 법에도 분명히 나와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 국제적기준이란 말이 들어간다. 타 지자체도 전부 세계화를 지향한다. 정부 자체가 제주도라는 국제자유도시 거점을 통해서 한반도를 세계화시키는 동력으로 삼고자 한 정책이었다. 경제자유구역, 새만금...이런 것들을 보면 ‘원 스팟’(One spot) 정책에서 ‘멀티 스팟’ 정책으로 가는 것 같다. 그러면 제주국제자유도시라는 개념이 지금도 유효하냐? 도민들은 비관하고 있다. 그게 우리 행복을 위한 게 아니라는 관점이 많다. 그래서 저는 변화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자유도시는 유효기간이 지난 낡은 프로젝트라고 말하고 싶다”

- 마케팅 전략에 있어서 'Made in Jeju' 혹은 'Produced in Jeju'가 아니라 ‘Born in Jeju nature'를 강조했다. 구체적인 의미는?
“제주의 제1가치가 결국 자연자본의 가치 아니겠나. 제주는 우수한 자연자본에 기대서 마케팅을 해야 한다. 삼다수는 요새 상품 자체 선전 보다는 ‘세계자연유산이 빚어낸 물’이라는 TV광고를 하는데 아주 잘하고 있다. 그런데 1차 산업 생산물은 그런게 없다. 천혜의 자연을 생각하게 하는 건 없다. 'Produced in Jeju' 만으로는 안되고 천혜, ‘Born in Jeju’라야 한다. 제주산이면 무조건 명품이라는 느낌을 주도록 전략을 세워야 한다”

- 새로운 비전(자긍의 섬, 제주)과 경제비전(친기업 글로벌 시티), 환경비전(친환경 생태도시 제주), 도시 브랜드(Your Pride Jeju)를 각각 제안했다. 이유는?  
“자연자본의 가치 때문에 생태환경 쪽으로 가자는 것은 제주도가 추구해야 하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친기업 글로벌시티를 만들자는 것도 당연하다. (자본 등)유치를 해야 하고, 세계인들이 와서 편하게 기업을 할 수 있어야 하니까. ‘Your Pride Jeju’라는 것은 ‘당신이 프라이드를 느낄 수 있는 제주’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온리 제주’(Only Jeju)라고 있지 않나. 우스꽝스럽다. (제주도가)IBM(을 통해) 도시브랜드 용역을 해보니 ‘파인드 유어 제주’(Find your Jeju)가 나왔는데, 원희룡 도정은 아직 결정을 못한듯 하다”

고 전 본부장은 책에서 제주를 마케팅하는데 있어서 자연자본의 유한성(有限性)과 희귀성(稀貴性)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한정판’(Limited edition) 전략을 쓸 것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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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규 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투자사업본부장. ⓒ 제주의소리

“명품 마케팅의 최고금기는 염가세일...부동산투자이민제는 명품 포기”

그러면서 금과옥조(金科玉條)와도 같은 충고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제주는 더이상 50만불 투자에 영주권을 덤으로 하는 ‘1+1 세일’ 대상이 아니다. 외국인이 50만불 짜리 콘도를 사는 것은 제주에 정주하기 위한 것도, 일년에 몇 개월을 보내기 위한 제2의 고향(second home) 때문도 아니다. 제주의 한정판이라는 내재가치로 인한 부동산 가격의 상승에 따른 향후의 시세차익이 주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실을 주지하면서도 이러한 정책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명품의 영업전략에 자부심이라는 소비자의 귀한 인식을 망가뜨리는 세일이라는 단어가 좀처럼 없는 것은 명품 마케팅이 긍지 마케팅이라는 영역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제주라는 명품을 마케팅할 때 염가 세일은 최고의 금기사항이다. 저가의 관광상품이나 부동산투자이민제 같은 제도는 제주의 미래가치를 할인하는 대표적인 판매 방식이다. 이는 제주 스스로 명품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으며, 제주인의 긍지를 망가뜨리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자본을 이해하면 투차유치는 결코 어렵지 않다. 자본의 절대적인 속성은 이익(프로젝트의 사업성)이 있는 곳으로 흐른다. 구걸하는 식의 투자유치로는 자본을 유치할 수 없다”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이런 것들이 제주관광의 경쟁력이 절대 될 수 없다. 올레의 예처럼 ‘제주다움’을 이길 수 있는 제주도의 또 다른 경쟁력은 없다”
 
“투자자는 항상 ‘갑’(甲)이다? (아니다)지나치게 굽실거리거나 저자세일 필요가 없다. 구걸하고 애원한다고 이득에 없는 곳에 투자하는 이는 자선가이지 투자자가 아니다”
 
“인센티브가 부족해서 투자유치가 잘 안된다? (투자자들은)타 경쟁국이나 도시와 유사한 수준의 세금감면 인센티브 정도로 만족한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외국인 투자유치가 절대 선(善)이다?(결코 아니다)”

“‘사업투자이민제’라면 모를까...콘도.땅 못팔아서 발전 못하나?”

- 너무 네거티브하게 들린다.
“제주에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결국 채워야 하는데 문제는 정책이다.  제가 (JDC 투자사업본부장을)해보니까 가서 사정하고, 도지사가 가서 만나고, 그렇다고 그 분(투자자)이 돈을 내놓지 않는다. (투자자는)자선사업가가 아니라 투자자다. 제주의 가치가 무엇인지, 제주의 미래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고 납득시키면 자연히 오게 돼 있다. 그게 명품, 긍지 마케팅이다. ‘1+1’은 부동산 투자 이민제 때문에 쓴 거다. 땅과 함께 영주권을 주는 거 아니냐. 그런 식으로 한정판인 제주도 땅을 팔 필요가 없다. 부동산 투자 이민제는 폐지돼야 한다. 대신 ‘사업 투자 이민제’를 도입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많은 나라들이 하고 있고, 그건 정당하게 영주권도 줄 수 있고, 우리가 얻는 게 많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 이민제는 정말 의미없다. 제주가 무슨 콘도나 땅 못 팔아서 발전 못하는 게 아니다”

-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그런 걸 영주권 부여 기준으로 삼자는 얘긴가.
“그렇다. 스페인이나, 외환위기 때 일부 유럽 나라도 그렇게(부동산 투자 이민제) 했다.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되고 워낙 급했으니까. 우리도 그걸 뒤늦게 누군가 아이디어 내서 도입을 한 거 같다. 그런데 도입 당시에도 우리나라 외환 사정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이건 잘못된 정책 같다”

- 2007~2009년에 JDC 투자사업본부장으로 재직했다. 왜 당시엔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나.
“솔직히 당시에도 내면적으로는 그런 불만들이 있었다. 너무 오래 떠나있다 돌아온 제주에 와서 그 일을 맡아서 하면서 제주의 미래가치, 내재가치에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런데 당시 JDC는 외국인 투자를 단 한 건도 유치하지 못했고 당연히 제주 전체에 외국인 투자 성공사례도 없었다. 최소한 한 개의 프로젝트라도 외국 투자 유치해서 성공사례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다만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투자자와 엄청 싸우면서 (협의)했다. 그게 예래휴양형 주거단지를 만든(추진하는) 버자야(말레시이사)다. 선례를 하나 남기고 싶어서 온 팀원들이 엄청 열심히 했다.

지금은 정리가 됐는데 그 이후 회사(2009년 5월 JDC를 그만 둔 고 전 본부장은 이후 친정 기업의 CEO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로 돌아가 말레이시아 투자를 집행하면서, 말레이시아 투자 유치 공무원들과 경험해보니 제주와 또 달랐다. 거기서 많이 배웠고 그러면서 이번에 정리가 된 것이다. 그 당시에는 지금 책에 쓰여진 대로 논리가 정확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한다“

- ‘제주의 CEO Value가 제주를 디스카운트(Discount)의 원인 제공자가 되지 않고,  오히려 도민들에게 보너스를 줄 수 있는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은 뒤집어 보면 역대 도지사들의 Value가 디스카운트의 원인이었다는 말처럼 들린다. 원희룡  도정은 어떤가?
“아직 (원희룡 도정이 출범한지)얼마 안됐기 때문에 더 지켜봐야 한다. 제가 제주 CEO, 제주 리더 밸류의 중요성을 말한 것은 잘 아실 것이다. CEO 밸류가 기업 가치의 절반 정도 되는 것 같다. 주식시장에서 보면 CEO가 바뀌었다고 주가가 올랐다가 떨어졌다가 하지 않는가? 제주 공동체도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가치가 좌우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새로운 CEO는 좀 보너스를 줄 수 있는, 제주도 자체는 약하지만 훌륭한 리더로 인해 제주 가치 자체가 높아질 수 있었으면 한다”

“CEO Value가 제주가치 깎아먹지 말아야...카지노, 핵심가치와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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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규 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투자사업본부장. ⓒ 제주의소리
- 제주 랜드마크에 대해 언급하며 ‘설문대할망 바람개비’를 제시했다. 영국의 런던 아이(London eye)-높은 곳에서 도시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일종의 회전식 관람차-같은. 성산일출봉에 그걸 세운다면 또다른 흉물 아닌가?
“자연하고 안 어울린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사실 저는 복합단지(복합리조트)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복합단지는 사실 모텔, 콘도 지어서 팔아먹겠다는 얘기고 놀이동산 하나 만들어 놓는 거다. 또 영종도처럼 카지노가 들어가야 복합단지가 되는 것이다. 그게 제주도에 2~3개씩 필요한가는 의문이다. 그런 것 보다는 차라리 관광객에게 인상을 주고 싶으면 설문대할망 바람개비가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좋은 땅엔 그것을 할 필요 없고, 척박한 땅에 그거 하나 정도 해도 관광객들에게 상당히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성산일출봉에 어울리겠느냐는 비판의 여지도 있다.

- 자꾸 랜드마크, 복합리조트, 케이블카 라고들 하니까, 그럴 바에는 ‘이거는 어떠냐’는 식의 제안이라는 얘긴가.
“그렇다. 지금도 한라산 케이블카를 자꾸 얘기하지 않나. (설문대할망 바람개비가) 세워지면 한 300만명 갈 거다. 그 마을 주민에게도 상당한 이익이 될 것이다. 개발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 너도 나도 카지노를 들고 나온다. 신화역사공원, 드림타워, 헬스케어타운, 이호유원지...이걸 어떻게 봐야하나.
“저는 제주의 핵심가치 중 하나로 자존, 자기 존경, 자기 정체성을 얘기했다. 그것과 카지노라는 사업이 맞는 건지 의문이 든다. 그럼 다른 대안이 없느냐? 제가 책에서 얘기했지만 뉴질랜드 원주민의 ‘대박투자’라는 게 있다. 그 분들이 돈이 생겼을 때 족장회의를 통해 카지노를 택하는 대신 목장에 투자해 대박이 났다. 거기서 배워야 한다. 외국인을 위한 카지노는 그렇다쳐도, 내국인 카지노는 안된다. 외국인 카지노도 정말 절제있게 조절해야 한다. 제주에 복합단지를 짓는 외국인들은 카지노가 있어야 수익이 난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 법에 5억불 이상 투자하면 허가를 줄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못하게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 우후죽순은 안된다. 꼭 필요한 단지 내에 적절한 규모로...(허가, 운영돼야 한다). 왜냐면 큰 규모로 했다가 나중에 손님이 없으면 또 흉물이 되고, 그때 다시  ‘내국인에게도 허용해달라’는 둥, 별 요구가 있을 수 있다. 

- 귀향 후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특별한 역할은 없다. 제가 속한 마을, 리(里)가 되든 동(洞)이 되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찾아보고 싶고, 이장님을 도와드리고 싶다. 실버 엘리트(Silver elete), 즉 은퇴지식인들이 제주 곳곳에 상당히 많이 있다. 그 사람들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서, 제주 사람 모임을 하나 구성해서, 그 사람들이 제주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고 싶다. 대개 공부한 사람도 있고, 기업을 경영하다 은퇴한 사람도 있다. 이 사람들은 뭔가를 하고 싶어하는데 통로와 시스템이 없다. (그냥)놀고(?) 있다. 그 사람들 하루 1~2시간 강의할 수 있고, 그 사람들에게 일을 주면 좋아할 것이다. 그 분들은 혼자 오는게 아니라 네트워크를 갖고 온다. 탤런트 매칭(Talent matching)이란 게 있다. ‘나 이런 게 좀 필요해’ 하면 모임 중 한 사람이 가서 도와주면 되는 거다. 그런 데이터베이스 구성, 그런 모임을 만들고 싶다”

- 거주지는 정했나?
“아직 못 정했다. 하지만 그런 모임을 만들어서 마을에서 활동하면 주민들이 매우 좋아할 것이다.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이나 마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성규는?

1948년 제주시 관덕정 인근에서 태어났다. 제주북초등학교 재학 중 서울로 이주했다.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정운찬 전 총리와는 고교, 대학 동창이자 오랜 친구다. 정 전 총리는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장을 맡기도 해 이래저래 인연이 깊다. 이번에 추천글도 직접 써줬다.

서울대 졸업 후 대우그룹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종합상사 인도네시아 지사장, OCI그룹의 OCI상사 부사장 및 프랑스 합작회사 OCI-SNF 등의 대표이사직을 수행했다. 2007년 2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투자사업본부장으로 재직했다.

소박한 꿈 꾸는 ‘이상주의자’...실버엘리트 ‘제주사랑모임’ 만들고파

JDC를 나온 후에는 태양광산업 관련 소재  전문기업 OCI-Specialty(옛 엘피온) CEO 겸 대표이사로 사실상 친정에 복귀했다가 2012년 물러났다. 지금은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면서 제주에서 살고 싶어하는 육지의 친구들과 함께 귀촌을 준비중이다. 시기는 빠르면 내년 1월로 잡고 있다.

고씨는 스스로를 이상주의자(idealist)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내지 의미가 분명히 있을 텐데, 나이 60이 넘도록 아직도 그것을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죽을 때까지 그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 한다.

고향 제주의 어느 마을 촌로(村老)로서 그 마을의 발전을 위해 할 일이 있다면 주민들과 함께 노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또한 욕심을 부려 기회가 된다면, 제주로 이주한 은퇴지식인, 실버 엘리트들의 ‘제주사랑 모임’을 만들어 Talent matching & sharing 프로그램을 활성화 하고픈 소박한(?)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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