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⑲>

□ 통 큰 만만디 왕서방의 나라, 중국

10~11월 사이에 중국과 일본을 다녀왔다. 중국은 3번째, 일본은 5번째 방문이지만 여행은 늘 우리에게 짜릿한 체험을 선사한다.

중국에선 상해와 항주 일대를 둘러 봤다. 기억에 남는 건 상해의 야경과 서커스 공연 뿐이다. 중국은 가는 곳마다 발에 채이는 게 사람이다.(현재 추정인구 16억)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고 정현종 시인은 노래했지만 다즉천(多卽賤)이라고 너무 많으니까 사람이 귀히 보이지 않고 무슨 버러지처럼 징그럽다.

매연과 미세먼지로 중국의 하늘은 항상 잿빛이다. 베이징마라톤대회에서 방독면 쓰고 뛰는 장면을 보고 “아! 내 고향 제주, 파라다이스!”하고 외쳤다.

중국에서 제주도를 생각한다. 외국인 5억 이상 투자하면 영주권을 주는 ‘투자이민제’와 중국인의 부동산 투기에 대해서다. 상해의 중산층 아파트 값이 5~10억이다. 아파트 한 채 값도 안되는 가격으로 영주권을 파는 제주의 행정은 ‘한 치 앞도 못 보고, 한 치 옆에 못 보는’ 청맹과니 행정이다. 아편전쟁 이후 홍콩을 영국에게 내주고 서구 열강의 자본에 문호를 개방할 당시 중국인의 생각은 이랬다. “건물은 얼마든 사 가져. 너희 나라에 건물을 지고 갈 순 없잖아? 그러나 땅은 다르다. 한 번 팔면 영원히 너희 것이 되므로 단 한 평의 땅도 팔지 않겠다.”

「중국철학사」를 쓴 펑유란은 “중국에서는 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지만 현대의 중국인은 천부적인 장사꾼 기질을 타고난 상술의 고수로서 한국인은 적수가 되지 못한다.(유대인도 두 손을 든다)

제주도 땅을 헐값에 팔아넘겨서 후세에 ‘만고의 역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 전에 당국은 지금 당장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음험하고 통 큰 왕서방이 ‘제주도 땅을 다 먹기 전에’ 토지매입을 규제하고 장기임대(20~50년)로 전환해야 한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이웃 사람의 지혜라도 빌려와야 하지 않겠는가?

□ 섬세하고 치밀한 이중성의 나라, 일본

일본에 갈 때마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의 칼」을 상기한다. 국화로 포장된 칼 말이다. 이는 ‘현명한 매는 날카로운 발톱을 숨긴다’는 일본 격언과도 통한다. 한 때 이어령이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이는 일본의 한 면만을 본 것이다. 축소지향과 거대지향이 공존하는 나라, 이것이 일본의 이중성이다. 혼네(本心)와 다떼마에(外心)는 이러한 이중성의 표현이다.

북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민속촌에서 원주민이 공연하는 춤과 노래를 통해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의 곰 토템은 단군신화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민족적 동질감과 인류학적 연대를 느끼게 했다. 에도시대의 문물을 재현한 민속촌에서도 단막극 공연이 있었다. 관객 참여형의 이 연극에 등장하는 배우로 우리 일행 중 홍창국 시인이 뽑혔다. 연극의 해설자는 그에게 ‘홍사마’란 존칭을 바쳤고 그는 일약 ‘아시아의 배우’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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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 편의 전통문화예술공연을 보면서 제주도를 생각한다. 왜 외국의 유명 관광지마다 빠짐없이 있는 상설 민속공연이 제주에는 없는 걸까? 제주도민이 무지하고 무능해서일까? 그리스신화에 버금가는 신화와 굴곡 많은 역사와 천혜의 자연 자원을 가진 제주도가 아닌가? 이 넘쳐나는 콘텐츠를 가지고 스토리를 엮어내면 그야말로 세계적인 문화상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선물은 ‘세계를 보는 눈’(패러다임)의 심화와 확장이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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