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의 숨, 쉼] 한 해를 돌아보는 열쇳말 我 身 心 時 行

꽃피는 춘삼월인가 싶더니 벌써 눈 내리는 겨울이다.
눈발 날리는 풍경을 보며 아, 아름답다고 감탄했던 기억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만큼 저 멀리 아득하다. 대신 눈길 운전, 가스비 아끼는 보일러 사용법 등등의 사안들이 겨울 낭만의 자리를 채우고 있다.
어쩌겠는가. 겨울 낭만에 흠뻑 빠져들거나, 고단한 겨울나기를 고민하거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은 다 한 가지, 나의 삶인 것을.
이것은 좋고 나쁘거나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삶이다.
그리고 그 삶을 살아온 나를 이제 본다.

나는 그냥 '나'이기도 하고 관계속의 '나'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젊은 날의 나는 주로 관계속의 나, 내 앞에 붙는 호칭, 남이 보는 나가 중요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주는 지혜를 얻게 되어 다시 나를 보면서 그냥 '나'의 본질을 더 깊이 쳐다보게 되었다. 남이 보는 내가 아니라 내가 보는 나를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놀랍도록 다른 두 사람을 본다. 20~30대에 나는 전형적인 강한 여성의 여러 가지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가만히 보니 나는 지금 오히려 내면의 삶을 더 중요시한다.

'나'는 누구인가.


한 때 몸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마음의 부속품 정도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다. 몸은 마음과 상하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선에서 상호작용하는 유기체이다. 지난해 가을쯤엔가 나의 운동 잔혹사를 고백했던 적이 있다. 수영 검도 달리기. 뭐 열심히는 하지만 늘 못하는, 신체운동지수 최하위의 내 몸에 대해서.
요가도 마찬가지다. 하고 안하고를 반복하면서 오랜 세월 수련해왔지만 내 동작은 초보자를 겨우 벗어난 정도다. 하지만 난 요가를 통해 호흡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내 몸의 에너지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동작의 숙련도보다 한 동작  한 동작 하면서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호흡에 집중하며 내 삶의 하드웨어인 내 몸을 바라본다.
내 몸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바라보고, 어쩌다 다가오는 무심한 순간을 즐기고, 또 가끔은 기분 좋은 에너지의 흐름을 느낀다.


몸이 내 삶의 하드웨어라면 마음은 소프트웨어가 되겠다.
이제까지 단계적으로 거창하게 마음공부 같은 것을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늘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놓아본 적은 없다. 그 고민의 과정은 내겐 나선형이었다. 이제 다 알았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나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또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다시 시작 된다. 답을 찾아 나간다는 것은 같지만 출발점은 다르다. 전보다는 한 발 더 나아간 지점에서 새로 출발 하는 것이다. 최소한 제자리 맴돌기는 아닌 것이다.
그래도 그 과정이 어리석어 보일 수 있겠다. 해서 뭐 하냐고?
거기에 대한 나의 답은 '떨어져서 나'를 보기가 된다는 것이다.
떨어져서 '나'를 보면 상황과 감정에 훨씬 덜 휘둘리고 유용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돌아보니 늦은 때는 없지만 적절한 때는 있는 듯하다.
지금으로부터 30 여 년전 학력고사를 앞 둔 내 책상머리에는 이런 멋진 말이 붙여져 있었다.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
내가 야구를 잘 아느냐? 그건 아니다. (지난 여름 류현진이 누구냐고 했다가 매국노 취급 받은 게 나다) 다만 그 상황에 대한 비장한 설정이 좋아서, 또 자꾸 포기하려는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붙여놓은 말이다. 그 말은 효력이 있었다. 뒤늦게 발동 걸려 나는 비교적 좋은 결과를 냈다. 역시 늦은 때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삶을 돌아보며 아쉬운 것은 '적절한 때'에 대한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최소 1,2년은 온전히 그 아이들을 품었어야 했다. 그런데 당시 사회분위기는 전업주부보다 일하는 여성을 조금 더 대우해주는 분위기라 이에 부응해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에게는 '빨리 빨리'란 말만 반복했다.
또 좀 더 과감하게 여행에 내 젊음을 던져볼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물론 늦은 때는 없는 거라 이제라도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다며 미룰게 아니라 지금 당장 시작하겠다.
(나와 동거하는 청소년들이 적절한 때 책 좀 읽었으면 좋겠다. 스마트폰 탐구는 그만하고)


我의 마무리는 당연히 행이다.
나는 나의 몸과 나의 마음이고 내가 어떠한 때 움직인다가 마무리가 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날마다 반복되는 우리 집 아침 풍경.
"일어나, 스쿨버스 놓친다."
"알안." (움직이지 않는 고교생)
"움직이지 않으면 알지 못한 거. 일어나. 일어나야, 안거."
이어서 반수면 상태로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던지는 나의 주옥같은 한마디.
"해야 할 때 안했다가 나중에 에이, 나도  할 수 이서신디 하는 건 아무 소용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는 게 중요한 거. 그것이 아는 거다."

이쯤이면 처음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의 윤곽이 보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의 몸과 마음이다.
모르는 것을 알고 또 모르는 것을 아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을 적절한 때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 내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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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가고 있다.
각종 기념행사가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송년회에서 즐거운 시간도 가지면서 한편으론 나를 돌아보며 정리하는 나만의 송년회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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