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이후 한번도 100달러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는 국제유가가 현재 60달러까지 떨어져 거래되고 있다. 금년 6월의 115달러와 비교하면 반년 사이에 반토막이 된 것이니 예사 일이 아니다.

석유 수출에 의존해오던 여러나라들의 국가재정이 뿌리째 흔들리고 석유개발에 큰 돈을 투자했던 기업들이 파산을 걱정할 지경이 되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세계 시장에서 이는 그저 남의 일로 그치지 않는다.

이에 따른 불안감은 이달 초 미국과 유럽의 주식시장을 엄습해 열흘 사이에 5.4% 폭락, 시가총액으로는 1조달러를 물거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러시아다. 재무장관을 지냈던 알렉세이 쿠드린은 친 푸틴 인사로 분류된다. 그마저 최근 러시아의 상황을 "이미 총체적 위기에 진입했거나 진입 중"으로 진단했다.

루블화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이 크게 소진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은행들의 파산을 막기 위한 자본금으로 1800억달러 규모를 따로 할당해야 한다고 한다.

환율 방어를 위해 중앙은행 금리를 10.5%에서 17%로 작심하고 인상한 바로 그날도 루블화의 가치는 거꾸로 폭락했다. 다른 나라 같으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할 지경인데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없다.

쿠드린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도 이번 위기의 원인을 40% 정도 제공하고 있다"고 하면서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해법으로 서방과의 조속한 관계개선을 푸틴에게 주문했다.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되돌려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지역에서의 깨끗한 철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푸틴이 이 말에 귀를 기울일까? 그렇다면 작금의 러시아 위기는 다분히 국제유가의 진로와 궤를 같이 할 것으로 보인다.

총체적 위기국면의 러시아

새해 국제유가는 어떻게 될까? 골드만 삭스를 비롯한 석유 전문가들은 오래 전부터 국제유가의 하락을 점쳐왔다.

이런 전망은 세계적인 불경기의 지속, 자동차 및 산업전반에 걸친 온실가스 절약 노력, 거기에다 미국을 중심을 한 이른바 셰일 혁명 등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전망치는 불과 지난 10월까지만 해도 대략 "2015년 상반기 중 70달러 내지 80달러 선으로 하락한다"였다.

유가하락의 속도와 폭이 이러한 전망을 뛰어넘은 배경을 누가 먼저 감량에 나서는가 하는 'OPEC와 셰일의 기 싸움'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지난 일요일 아부다비의 원유 컨퍼런스에 모인 OPEC 주요국 석유장관들의 목소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OPEC 국가들은 이제까지 원유 가격의 안정을 위해 협조해왔고 이번 유가하락 파동은 전적으로 OPEC 이외 국가들의 무책임한 증산에 기인한 것인데 왜 우리들이 감산해 가격을 떠받쳐야 하는가? 우리는 1일 3000만배럴이라는 이제까지의 수준을 줄이지 않을 것이다. 낮은 가격에서는 효율적인 생산자만 살아남을 것이다."

여기엔 생산 원가가 높은 셰일 원유가 이처럼 낮은 가격에서 살아 남을 것인가, 이들이 물러서고 나면 수급조절이 되어 가격이 회복될테니 그때까지 버티자는 속내가 깔려 있다.

한편 미국 등 비OPEC 산유국들은 OPEC 국가들이 먼저 물량조절에 나서줄 것으로 기대했었던가 보다. OPEC의 성격이 본래 가격유지를 위한 카르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이번 태도변화는 충격적일 수 있다.

OPEC과 셰일의 기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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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전문가들의 전망은 몇 가지 이유로 가격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첫째, 최소한 6개월까지는 지켜 보겠다는 OPEC 종주국 사우디 아라비아의 공언이 워낙 강경하다. 둘째, 스코시아 뱅크(Scotia Bank)의 18일자 분석처럼 미국 셰일 유전의 손익분기 가격은 40달러에서 80달러 사이, 그리고 캐나다의 오일샌드의 경우도 80달러에서 90달러로서 가격 경쟁력이 꽤 있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거기에다 미국의 셰일석유는 수출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의 원유수입 의존도를 경감시키는 것이라는 점도 국제 원유가격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저유가는 우리나라를 비롯 여러 나라들에게 호재임에 틀림없다. 나아가 그것이 러시아로 하여금 서방과의 관계개선의 필요성을 보다 절감토록 하는 계기가 되어 줄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이 해를 보내며 은근히 품어본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이 글은 <내일신문> 12월 24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게재됐습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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