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26)

으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해 4월 고사리를 꺽으러 나갔을 때였습니다. 고사리를 꺽는데 어디선가 진하디 진한 꽃향기가 풍겨오는데 아카시아향기보다 훨씬 진해서 마치 입에 초콜릿이 씹히는 듯한 진한 향기였습니다.

그 진한 향기를 좇아갔더니 으름덩굴꽃이 활짝 피었었던 것입니다. 한 줄기에서 꽃 모양도 달라서 궁금했는데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암꽃(큰 것)과 숫꽃이 함께 있으며 가을에 열매가 익는데 일명 '한국산 바나나'라고 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골에서 자란 대부분의 분들은 으름에 대한 어린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있었고 서울촌놈인 나에게만 처음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가을엔 꼭 먹어보고 말꺼야'하는 말에 아내는 불혹의 나이를 넘긴 사람이 꼭 어린애같다고 타박을 합니다.

제주의 꽃에 취해서 그렇게 봄을 보내고,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어 꽃을 보았던 그 곳에 가보았지만 태풍 '매미(2003년)'로 열매가 다 떨어졌는지 아니면 열매가 맺힐 때가 안된 것인지 으름열매의 흔적을 볼 수가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누군가 으름열매가 열렸더라고 하는데 바쁜 일상들로 인해서 으름을 찾아 나서질 못하다 어느 날 시내를 나가면서 중산간도로에서 곁길로 걸어들어갔습니다.

'어?'
드디어 으름열매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높은 곳에 있었고, 할머니들이 으름을 따러 다니시는 것으로 보아 손에 달만한 것은 이미 다 없어졌을 것 같았습니다. 가까스로 새가 먹다 남은 것으로 보이는 으름을 하나 얻었습니다. 까만 씨들이 무척이나 많았지만 그 달짝지근한 맛은 정말 영락없는 바나나맛이었는데 훨씬 달았습니다.

나는 그렇다치고 아이들에게도 이것을 맛보이고 싶은데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제 다 지나갔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가을 꽃을 찍으러 산에 들어갔다가 길가 가까운 곳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으름열매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을 때는 볼 수가 없더니 이렇게 하나 보이기 시작하니까 여기저기에서 잘 익은 으름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씨가 많아서 먹기가 불편한지 애지중지 가져온 것을 하나 먹더니만 눈길도 안 줍니다. '잘 됐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별로 먹지 않는 통에 신나게 먹었습니다. 씨앗만 없다면 정말 인기가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씨없는 수박도 개발을 했는데 씨없는 으름도 개발했으면 좋겠습니다.

으름열매는 숲의 새들에게 아주 좋은 먹을거리가 됩니다.
새들의 것을 빼앗아 먹은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합니다. 지난 해 보았던 꽃이 올해도 어김없이 피었습니다. 올 가을에는 아내와 내것 너덧개만 따서 먹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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