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국민들이 기꺼이 세금내고 싶은 국가부터 되라

만만한 게 직장인

드디어 매년 봉급쟁이들이 낸 세금을 정산하는 시기가 돌아왔다. 이전엔 연말정산은 언제나 봉급쟁이들에게 ‘13번째 봉급’ 혹은 ‘13월의 보너스’라 불리며 고달픈 생활에 드문 즐거움을 안겨줬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올해 연말정산은 오히려 ‘13월의 악몽’이 돼버렸다. 정부가 세금공제 방식을 새로 바꿨기 때문이다.

작년 초 정부와 국회가 예산타령하며 서로 맞장구치는 것부터가 수상했다. 그렇잖아도 엄청난 고물가 시대에도 직장인들의 월급에는 여전히 “쥐꼬리만 한”이라는 형용사를 떼지 못하는 터였다. 그런 빈약한 월급에 상류층 정치인들과 고위급 공무원들이 달라붙어 뭔가 만지작거리는 것 같더니 새로운 개정안을 내놓은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이라면 ‘닭털 뜯듯’ 싸우던 여야 정치인들이 이 때 만큼은 ‘직장인들의 얄팍한 지갑을 뜯어먹는’ 개정안을 사이좋게 통과시켰다. 차기 총선도 몇 년 후의 일이니 역시 만만한 것은 서민들이었다.

무관심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이 내놓은 연말정산 규정의 주요 골자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것이다. 회사원들은 이게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전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더욱 과중해진 업무 부담에 월급이 올랐던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못할 정도지만 고실업 시대에 직장이 있는 것만 해도 그나마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미처 신경을 쓰지 못 한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한 주무 장관과 여당 대표는 정규직을 ‘중규직’으로 만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중규직은 정규직과 계약직의 중간이란다. 쉽게 말하면 직원들의 봉급과 해고를 거의 계약직 수준에 맞추겠다는 것이다. 고용대책으로 기껏 생각해낸 게 이른바 ‘완생’들도 몽땅 ‘미생’으로 만드는 것이란다. 그러니 근무 중 세금에까지 신경을 쓸 만큼 간덩이가 부은 직장인이 어디 있었을까.

어쨌든 직장인들이 한 눈을 판 사이에 정치인들이 그 좋은 머리를 굴려 만든 연말정산 개정의 한 예를 보자. 언론 보도에 의하면 연봉 6500만원의 한 맞벌이 직장인은 매년 60만~70만원을 환급받다가 올해는 오히려 68만원의 세금을 추가로 내야한단다. 연말정산시기를 맞아 시뮬레이션 계산을 해본 결과 희망이 절망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고물가 시대에 봉급을 올려줘도 모자랄 판국인데, 이쯤 되면 직장인들을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일화에 나오는 원숭이들보다도 더 우습게 아는 처사가 아닐까. 가뭄으로 농사를 망친 백성들에게 오히려 세금을 더 올려 걷는 격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

그렇다고 그것이 국가재정에 큰 도움이 될까. 이번 이 새로운 연말정산 개정으로 정부가 월급생활자들에게 더 걷어 들일 세수는 약 9000억이다. 반면에 현재 정부의 총부채는 공식 발표규모 외에 국가가 실질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공기업 채무를 포함하면 1000조를 훨씬 상회한다. 이자율이 연 3%로 잡으면 하루 이자로만 1000억 원을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담뱃값 인상으로 2조 5천억의 세수가 더 걷힌다고 하니 이번 세수 증가분과 합쳐도 겨우 한 달 남짓 이자만을 확보한 것이다. 올해 예상되는 재정적자만 33조에 달한다. 막대한 재정적자 규모와 비교하면 서민들에게 짜낸 세수로는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다.

현 정부가 앞으로도 주민세와 자동차세 등 각종 세금들을 연달아 인상하는 것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반면에 MB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으로 기업들이 법인세 감면 혜택을 받은 것만 해도 5년간 40조가 넘는다. 이중 단지 0.3%에 불과한 재벌기업들이 55%가 넘는 22조원을 감면 받았다. 또 부자들에게 깎아준 세금만 해도 5년간 82조에 이른다.

그렇잖아도 돈이 넘쳐 주체하지 못하는 재벌 등 최상류층을 위해 깎아준 것은 고스란히 재정적자로 이어졌다. 거기에다 이른바 ‘사자방’ 비리로 약 100조원의 국민혈세를 허공에 날려버렸다. 그것들을 이제 와서는 서민들의 부담으로 전가시키고 있는 셈이다.

공멸의 경제정책

덕분에 상류층이 애용하는 외국 명품브랜드 상점들은 호황을 누리는 반면,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장바구니’ 상점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직장인들은 봉급은 오르지 않는데다가 급등한 주거비용을 지출하느라 소비주체로서의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쯤 되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정부는 지금도 부동산 거품이 꺼지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다. 올 초 이사철에는 사상최대의 전, 월세 대란이 전망되는 데도 정부의 대책은 아무 것도 없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후진국시절과 다름없이 아직도 수출 중심이고 내수시장은 여전히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홀대를 받고 있다. 수출증대를 위해 환율을 높이느라 낮은 이자율을 유지해야 하고 그것이 부동산 거품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해 오랜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장바구니’ 물가는 내려 갈 줄을 모른다.

지금처럼 정부가 계속 헛발질만 하다간 모두가 공멸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세금 내고 싶은 국가부터 되라

현 정권의 창조경제라는 게 경제는 엉망으로 만들고 그로 인해 부족한 세수를 채우기 위해 직장인들의 지갑을 터는 기발한 꽁수를 창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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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물론 납세는 국민으로서 당연한 의무다. 힘들어도 꼭 필요하다면 더 내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의무를 요구하기에 앞서서 먼저 국가에 세금을 내야 할 이유와 필요성을 증명해야 한다. 막무가내식 각종 정책들은 물론이요, 세월호 참사 대책이나 사자방 비리 수사, 그리고 비선실세 논란들을 보면서 이런 정부에 한 푼의 세금이라도 기꺼이 내고 싶은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국가는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자들과 측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입증해보라. 국민들에게 손을 벌리기 전에 먼저 국민들이 기꺼이 세금내고 싶은 국가부터 되라.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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