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㉓> 시중에 떠도는 원희룡 도정의 다섯가지 이야기

지금 제주도에는 정치가 없다. 정확히는 실종됐다. 원 도정과 제주도의회의 대치정국 때문이다. 그 원인은 예산문제다. 원 지사는 예산을 개혁하겠다고 한다. 예산은 하나의 조직이 실현해야 할 목표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조직 내부와 외부의 이해집단들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투쟁하고 타협한다. 그러므로 예산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타협의 대상이다. 더욱이 정치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기술’이다. 그게 없으므로 정치가 없다고 한 것이다.

이처럼 지방정국이 파행과 경색으로 치닫게 된 데에는 원 지사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제주도의회도 책임의 일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만일 양자가 계속 팽팽히 맞서서 이러한 미증유의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고 올바른 의미에서의 정치행위를 거부한다면 그건 스스로 정치인이기를 포기한 것이며, 도민들은 다음 선거에서 직무를 유기한 무자격 정치인들을 준엄하게 심판할 것이다. 이제 공멸이냐, 공생이냐는 저들의 선택에 달렸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이 땅의 정치인들은 지금 이 순간 백척간두에 서 있다는 위기의식을 체감하고 명징한 이성을 회복하는 숙고와 원려가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원희룡 지사가 취임한 지 7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도민들이 원 지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했다.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를 대충 간추려 본다.

[이야기, 하나] 원 지사는 제주도 실정과 도민 정서를 잘 모른다 ; 이는 고교 졸업 때 까지만 제주인, 그 이후는 본토인으로 살았다는 데 기인한다. 그는 뛰어난 학습능력의 소유자여서 노력하면 금방 보완할 수 있다.

[이야기, 둘] 서울대 수석, 사법고시 수석 등 과거의 영광이 “내가 최고다”는 엘리트의식, 우월감에 사로잡히게 했고, 이게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쟁이로 만들었다 ; 흔히 명석하고 자기확신이 강한 사람이 빠지는 함정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집무실에는 선친 이병철 회장이 써준 휘호 ‘경청(傾聽)’이 걸려 있다고 한다. 오늘날 삼성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경청 덕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불가에서는 “세 사람이 모이면 그 중에 하나는 문수보살이 나온다”고 한다. 공자의 ‘3인행(三人行)’도 이와 같다. 혼자 똑똑한 체 하면 사람들은 그를 헛똑똑이라고 부른다.

[이야기, 셋] 서울에서 국회의원 3선, 집권당 사무총장을 지낸 화려한 경력이 “촌놈들이 무슨 정치를 알아? 나를 능가할 자는 없어”라는 교만에 빠지게 했고, 이게 지방

정치인들과 갈등을 빚는 요인이 됐다 ; 권불십년이 있고 교불삼년(驕不三年)이란 말도 있다. “신은 한 인간을 망하게 할 때 먼저 교만을 그의 마음에 심어 준다”고 한다. 교만은 곧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교만은 현자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이야기, 넷] 그는 지사직을 더 큰 꿈(대권이나 중앙정계 진출)을 위한 발판이나 징검다리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대권에 유리한 행보에만 관심이 있고 불리한 일은 피하려고 한다 ; 제주 속담에 “욕은(약은) 고냉이(고양이) 밤눈 어둡다”는 게 있다. 탯줄 사룬 땅(고향)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 없이 제주도민의 마음을 사겠다는 건 어불성설이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다. 아칸소는 인구 50만 명으로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州)다. 빌 클린턴은 아칸소 주지사를 훌륭히 수행해 미국 대통령이 됐다. 서울의 일개 구청보다 작은 제주도를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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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이야기, 다섯] 지사 후보 시절이나 취임 초에 제주도정의 키워드와 핵심 콘셉트는 ‘협치’였다. 그런데 지금 그게 어디 있는가? 협치가 증발한 이유는 원 지사 자신에게 있다. 협치의 대상은 제주도민이 아니고 화성인인가 ; 제주도의회는 도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이고, 민주정치가 대의정치라는 것은 초보적 상식에 속한다. 제주도의회와 상생·협력하는 게 협치의 근본이거늘 도대체 어디가서 누구와 협치하겠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상의 모든 비판적 언술과 담론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원희룡이 사심 없고 진실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결국에 그는 옳고 바른 길을 걸어가리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원 도정의 실패는 제주도의 실패이고, 원 지사의 성공은 제주도민의 성공이기 때문이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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