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이겸, 제주 중산간을 걷다] (2) 납읍리에서 만난 사람

1.이장 김경호
올레처럼 부드럽고 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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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 만나면 알 것이다. 얼굴에 풍요가 있다는 것을. 납읍리 이장 김경호.

납읍리의 46대 이장이다. 2014년 2월 4일 취임했다. 납읍리의 1대 이장을 1949년에 선출하였으니 전통을 이어 받은 이다. 납읍리에는 약 550호, 인구 1400명 정도가 산다. 연령으로는 65세 이상이 360명으로 가장 많다. 이장은 납읍리의 ‘장’이다. 집안에 어른을 보면 가풍을 알 수 있다. 그와 꼭 같을 수는 없더라도 마을사람들이 인정하여 선출한 사람이니 마을이미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겠다.
납읍리에는 옛 모습이 남아 있는 올레가 있다. ‘섯잣길, 괘터, 문지기’등 지명도 남아있는데 이 이의 모습은 올레처럼 부드럽다. 웃음을 지으면 그 어떤 사람의 화도 누그러질 것이다. 부드럽게 흐르는 뺨과 눈가의 주름, 동그란 콧날, 가지런한 치아가 김경호 이장의 얼굴에 있다. 밭담 같고, 올레 같은 정겨움이 얼굴에 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소박함속에 자리한 점잖음을 느꼈다. 납읍리의 1400여명을 대표하는 이의 풍모가 보기 좋고 편안했다. 현재 주거인구의 20%는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10명중 2명, 100명 20명이다. 중산간 마을이 좋고 납읍이 좋아서 터를 잡은 주민들이다. 마을어른으로서 부드러움으로 살피길 바라는 마음이다.

2.떡 만드는 김상수, 이한규
시골에 더 귀한 떡집

▲ 이 집의 오메기떡은 달지 않아 계속 손이 가니, 주머니를 살펴가며 먹어야 한다.

떡집이 있는 동네가 드문 요즘, ‘해담은 떡빵’이 납읍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신엄, 납읍, 상가, 하가, 봉성, 어도, 어음, 귀덕, 그러니까 중산간 도로를 기준으로 신엄에서 한림 전까지 중산간 마을에는 떡집이 이곳 하나뿐이다. 그 외엔 애월읍에 하나가 더 있다. 제주도의 떡집도 이제 대형화 브랜드화 되어가는 추세다. 인구가 밀집한 시내의 떡집은 성업 중이고 중산간의 촌까지 배달이 되는 요즘이다. 이런 와중에 시골에 떡집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귀한 것이다. 시골의 떡집은 동네의 정서를 기반으로 유지된다. 그러자면 도시처럼 이문만을 앞세울 수 없다. 아는 얼굴들이 반복적으로 드나들 수 있을 만큼 편해야 한다. 주민들과 정을 나누는 마음이 중요하다. 시골 떡집에선 제사가 큰 역할을 한다. 도시에 비해 시골사람들은 챙겨야 할 제사가 더 많아 떡을 찾는 수요가 유지되는 것이다.

▲ 주인을 닮아 떡도 순박한 맛을 낸다. 그래서 자주 찾게 한다. 왼족부터 이한규, 김상수,박진영(이한규씨의 아내)

제주의 떡을 지키는 타지 사람들
지인으로부터 ‘미선떡방아’를 인수 받은 김상수씨가 ‘해담은 떡빵’을 오픈했고, 제주시의 떡집에서 일했던 이한규씨가 합류했다. 그럼 김상수, 이한규씨는 어떤 마음으로 떡을 만들까? 두 사람은 ‘건강한 떡을 만드는 것’이 공동 목표라고 했다. 이렇게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가 시골 떡집을 유지하는 덕목이었다. 육지에서 살다온 이들은 돈을 쫓는 생활보단 의미 있고 여유 있는 행위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이들이 만들어 내는 몇 가지의 떡을 보았다. 고달떡, 세미떡, 솔벤, 절벤, 은절미, 오메기떡 이름과 모양이 낯설다.

▲ 이렇게 솔직하고 예쁜 떡을 본적이 있나 싶다. 어린아이가 만든 것 같다.

고달떡(찹쌀로 만들고 닭 벼슬처럼 외곽을 장식을 한다. 기름에 지져먹는다 하여 기름떡이라고도 한다), 세미떡(메밀가루나 쌀가루로 반달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팥소를 넣어 도톰한 반달모양으로 만든다), 솔벤(반달모양의 떡본으로 눌러 만들고 멥쌀을 사용한다), 절벤(둥근 꽃 판으로 눌러 만든 흰떡으로 곤떡, 절변으로도 부른다), 은절미(쌀이나 메밀로 만들고 네모난 모양이다. 인절미), 오메기떡(차좁쌀 가루를 사용하고 가운데 큰 구멍을 만들어 삶아낸다. 팥을 소로 넣거나 무쳐서 만들기도 한다) 투박하게 느껴지는 맛, 빛깔과 장식이 매우 단순해서 제사에 올리는 용도에 알맞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종류별로 떡을 늘어놓으니 떡들이 참 착하게 보였다. 마치 아이의 손을 보고 있는 것처럼 순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초등학교아이들이 만든 것 같다. 해담은 떡빵의 오메기 떡은 손으로만 반죽한다. 기계에 비해 손 반죽은 오래 할수록 쫄깃하고 이빨과 손에 묻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단맛이 덜하다. 오메기 떡의 수량도 적고, 유통과정이 짧아 당도를 높여 부패를 막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떡집은 노동이 많이 필요하므로 몸이 힘들다. 그래서 다른 직군에 비해 이직률도 높은 편이라 한다.
두 사람이 운영하는 ‘해담은 떡빵’이 문을 닫는 다면 신엄리, 납읍리, 상가리, 하가리, 봉성리, 어음리, 귀덕리에서 유일한 떡집은 사라지는 것이다.
먹거리는 물건이 아니라 문화의 원천이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이 귀하다 생각한다.

3.인문학자 주강현
얼굴과 얼굴, 눈과 눈의 경계를 오가며

▲ 인문학자 주강현의 글에는 현장성이 있다. 하여 그것은 얼굴에도 스며든다.

테이블에 ‘산귤차’가 놓인다. 나는 한때 미륵에 관한 사진작업을 하여 ‘돌에 새긴 희망, 미륵’이라는 책을 낸 일이 있다. 당시 학자 주강현(1955년 생)이 쓴 ‘마을로 간 미륵’은 중요한 텍스트였다. 이런 이유로 그의 저서들 중 여러 권을 읽게 되었다. 책속의 사람을 만나는 일엔 설렘이 있다.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눈을 교환하고, 웃음을 나누며 그에게만 집중했다. 그러는 동안 ‘경계인’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그는 학문적으로 경계인이다. 영문학을 전공했고, 민속학 박사를 거쳐 미술사, 고고학, 해양학까지 영역을 넓혀왔다. 그리고 역사민속학회를 만들었다. 인문학을 바탕으로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학문을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해양학자이니 우리나라에서 태평양과 가장 가까운 제주도에 APOCC(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가 들어선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제주의 괸당문화와 오랫동안 교류해온 학자이다. 외지인으로는 매우 드물게 학문을 목적으로 제주에 법인을 설립한 사람이다.
그럼 경계인의 삶은 어떤 것인가? 지속적인 오고감이 있어야한다. 학문으로나 거주형태로나 말이다. 심정적으로도 그렇다. 그러니 경계인은 강해야 한다. 중심을 확고히 해야 경계를 자유로이 다룰 수 있다. 경계는 이것저것 뒤 섞는 짬뽕이 아니다. 경계로써의 고유성을 찾아 확립하고 실천하는 것이 생명이다.

▲ 주인보다 오래산 산귤나무, 그 보다 더 오래된 돌들과 어울려있다. 150년된 산귤나무.

머무는 곳을 보다.
나는 이 이의 폭넓은 활동과 경력에 놀라고 많은 면에서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인간적인 면에 관심이 간다. 먼저 머무는 곳을 직접 살펴보자.
납읍의 여는 곳처럼 정갈한 올레를 따라가니 APOCC(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와 산귤재를 만난다. 하나의 부지에 두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고, 안거리 밖거리를 용도에 맞게 나누어 쓰고 있다. 입구에는 APOCC(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의 로고가 있다. 울산 대곡리 반구대암각화의 고래잡이배의 모습, 제주전통문화연구소 박경훈 소장의 작품이다. 어느 집의 문패를 보고 사람을 만났듯 할 수는 없으니, 산귤재 안으로 들어선다. 이 장소를 정하고 쓰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올레 마지막에 들어선 집터, 150년 정도가 되었다는 산귤 나무, 돌담 밑 낮게 심은 대나무,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뒷마당의 돌계단과 빌레(너럭바위)를 돌아보는 동안 마음이 흡족하여 부러움이 인다. 오랫동안 비워둔 건물에 건축가 김석윤 선생의 안목이 발휘되어 현재의 산귤재 모습이 되었다. 건축물은 주인을 닮는다고 생각한다. 건축가에게 100% 맡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 집을 내내 쓸 주인공은 언제나 집주인이니 집주인이 공간을 받아 들여야 한다.

정보로써의 만남
인문학자 주강현의 사회적인 호칭은 너무도 다양하다. 교수, 연구원장, 인문학자, 해양학자, 민속학자, 연구소장, 저술가 어느 것을 이름에 붙여도 틀린 것은 없다. 그동안 다뤄왔던 학문분야가 많고 행보가 넓다 보니 여러 호칭을 얻은 것이라 여기고 있다. 내 생각엔 ‘선생’이라는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듯하다. 사전적 의미로도 적절하니 말이다. 이 이의 1년은 크게 세 조각으로 나뉘는데 해외체류기간, 육지체류기간, 제주도체류기간이다. 그러니 산귤재와 APOCC에 머무는 기간은 4개월 안팎이다. 학자로서의 활동 반경이 넓다. 2014년에 ‘해양문화’ 2015년에는 ‘The OCEAN’이라는 정기 간행물을 발행하기 시작했으며,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산귤재에서는 해양인문학 강좌인 ‘인문의 바다’를 진행하고 있다. / 이겸(여행과 치유, 제주도여행학교 대표)

이겸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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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진치료학회 수퍼바이저. 아동후원 비영리단체 '밝은 벗' 대표. 사진가이며 작가. '가고 싶은 만큼 가고, 쉬고 싶을 때 쉬어라', '메구스타 쿠바', '돌에 새긴 희망, 미륵을 찾아서' 등 책을 썼다. 월간‘샘이 깊은 물’ , 월간'한국화보','SEOUL'의 기자였다.

KODAK PHOTO SALON, SAMSUNG PHOTO GALLERY, DURU GALLERY, '더딘 대화, 경주' 사진갤러리 류가헌 등에서 열 번의 개인초대전을, '아시아의 젊은 사진가 20인전'(나라 국립미술관, 일본), '남가주 사진가협회전'(LA 한국문화원,미국) 등 단체전에도 참가했다.

※ 여행과치유 카페(http://cafe.naver.com/megusta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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