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열 도시락산책컷(샘플).jpg
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島詩樂 산책](1) 들판의 동백꽃 / 나기철 



 오름 오르기 위해 가는, 바람 차고 추운, 사람들 별 다니지 않는 들판 꽃들 붉게 피우며 거기 동백나무 하나 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나무 아래 머물다 거기서 얼마 되지 않은 한 오름을 올랐습니다. 친구와 나는 일행과 떨어져, 오르다 오르다 힘겨워, 내려가 동백나무를 표지로 그 옆에 누워 있기로 했습니다. 한참 후 오름 다 오른 일행들 내려와 우리 곁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 달리 동백나무 일정한 주위에는 희한하게 바람 하나 없는데 가만히 보니 동백꽃 붉은 빛깔들, 그 힘으로 바람을 멀리 멀리 보내 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기 있는 마른 억새랑 들풀이랑 우리들 모두 따스하게 녹여 주며.
 얼마 후 우리는 거길 떠났지만 그 동백나무 오래 오래 그곳에서 그 부근 고요하게 해 줄 것 같았습니다. 따스하게 해 줄 것 같았습니다. / 들판의 동백꽃 - 나기철 

나기철 =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섬들의 오랜 꿈』, 『올레 끝』, 『젤라의 꽃』 등이 있음. 

오늘은 당신을 오름으로 초대합니다. 바람이 차고 추우니 옷깃 여미시기 바랍니다. 오름으로 가는 길목 붉은 동백 한 그루 시골 간이역처럼 가만히 조용히 서 있습니다. 그 나무 아래 시인이 있습니다. 오름 오른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나 봅니다. 붉은 동백처럼 당신은 시인 곁으로 다가서서 동백에 기대어 앉습니다. 나무 밖은 차고 추운데 그 아래는 고요하고 따스합니다. 시인은 당신에게 조용히 일러줍니다. 저 붉은 것들이 차고 추운 것들을 멀리 멀리 보내는 거라고. 동백 하나가 동백 아래 모든 것들을 따스하게 감싸주고 있다고.

시인은 떠나고 당신만 거기 남았습니다. 여전히 따스합니다. 그리고 고요합니다.
꼭 오늘이 아니어도 좋겠지요. 동백이 지기 전에 당신을 오름으로 초대합니다.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나기철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