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44) 네가 오던 밤 / 좋아서 하는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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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계절이라면 / 좋아서 하는 밴드 (2013).

소라로 만든 향초에 불을 켠다. 향기가 음악처럼 퍼진다. 누가 내게 그런데 선물한 것인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꽤 신경 써서 준 것 같은데 추정되는 몇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그것을 잊어버렸다고 하면 얼마나 서운할 것인가. 밤이니까 그래도 소라 향초가 생각난다. 소라의 후생은 불꽃으로 타오른다. 밤에 기대는 정도가 점점 심해질수록 늙고 있다는 증거일까. 밤이 되어야만 그나마 생각이 정리되고 음악에 취할 수 있다. 소란스러운 걱정들로 하루를 보내는 날이 많다. 어느덧 소라 향초는 등대가 되고 나는 밤바다를 떠다닌다. 밤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모두 아편쟁이가 됐을 것이다. ‘파니핑크’는 그래서 ‘밤은 좋고 그래서 나쁘다’라고 노래하는 것일까. ‘좋아서 하는 밴드’의 노래 ‘네가 오는 밤’의 밤은 ‘네 이름만 부르던 밤’으로 네가 그리운 밤이다. 그러한 밤은 ‘어둠 속의 빛으로 넌 내게 머무’는(‘짙은’의 노래 ‘백야’ 중에서)는 것이다. 그 밤은 그러니까 ‘눈을 뜨면 더 어두운 밤/눈을 감으면 환하게 빛나는 밤/눈을 감아야 너를 볼 수 있는 밤’(‘안녕하신가영’의 노래 ‘설명이 필요한 밤’ 중에서)인 것. 우리는 줄곧 밤에 대해서 설명하고 옹호하고 설득해왔다. 밤의 뒷받침 문장이나 밤의 후렴구를 찾았다고 자위하며 궁색하게 끼적거리거나 뇌까리곤 했던 것이다.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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