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사는 이야기 ㉔>

젊은 시절 한때, 혁명의 열정을 품었던 건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난 후였다. 그 책을 읽고 나서야 왜 세계의 젊은이들이 그에게 열광하는가를 알았다. 그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와 베레모를 걸치고 파이프를 물고 다니는 청년들을 미친 놈들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체’를 알고 나서 불현듯 그는 나의 우상이 되었다. 그처럼 나도 불꽃처럼 살다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이 넝마처럼 너절하고 지겹도록 반복되는 누추한 일상에서 탈출하여 저 높고 빛나는 혁명의 제단에 피 끓는 심장을 바치고 싶었다.(우리 모두 시시포스와 탄탈로스 운명을 감내하며 살고 있지 않나요?)

1956년 11월 25일, 82명의 원정대원(게릴라)을 태운 ‘그란마 號(부르짖을 호)’가 멕시코만을 떠나 독재자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쿠바섬에 상륙했다. 총사령관은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중위는 의무 대장이었다. 쿠바 혁명이 성공한 후, 체는 국립은행 총재, 장관 그리고 대사직까지 수행했지만 모든 직책을 훌훌 버리고 볼리비아 해방군의 게릴라전에 참전했다가 1967년 볼리비아군에 생포해 사살된다. 체의 나이 서른 아홉. 39년의 짧은 생이었지만 타인의 93년보다 더 치열하게 살았다.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모든 혁명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요 수단이었다. 혁명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그 나무는 권력의 꽃을 피운다. 혁명에 성공한 자들은 예외없이 권력에 취하고 탐욕스런 돼지로 전락했다. 카스트로도 마찬가지다. 체 게바라-오직 그만이 순수하게 혁명, 그 자체를 사랑했다. 어쩌면 즐겼는지도 모른다. 차가운 ‘피의 혁명’과 따뜻한 ‘눈물의 낭만’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독서광이었고 시인이었던 체에게서 낭만주의자의 면모를 발견한다. 그는 이데올로그가 아니라 행동주의자다. 낭만적 혁명가!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만일 체가 권력에 연연했다면 한낱 소영웅이거나 출세주의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체는 안락하고 위풍당당한 권좌를 버리고 고난에 찬 혁명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죽음으로써 영원히 살았다. 비참하게 죽었지만 ‘지구라는 별에서’ 또 하나의 별이 되었다.

지난해 12월, 53년 만에 쿠바와 미국의 국교 정상화가 전격 발표됐는데, 최근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1959년에 단교한 쿠바와 올해 안에 수교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장일홍 극작가.
나의 버킷 리스트에는 생전에 가야 할 여행지들이 있다. 바이칼 湖, 그랜드 캐니언, 히말라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이제 여기에 쿠바를 추가한다. 언젠가 그곳에 가서 체 게바라가 누비고 다녔던 격전지-북부 해안에서 수도 아나바까지. 쿠바섬을 횡단하면서 위대한 전사(戰士)가 되고팠던 내 꿈의 잔해를 보고 싶다.

내 마음의 심연에서 불타오르던 혁명의 열정은 아주 오래 전에 재가 되어 사그라져 버렸지만 ‘아라비아의 로렌스’처럼 낭만적 투쟁의 봉화를 올렸던 체 게바라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 하나씩은 품고 살자.”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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