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45)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 오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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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EAM & LOVE / 오석준 (1988)
우리에게 ‘내일이 찾아오면’으로 잘 알려진 오석준은 목소리가 친근하면서도 멀리 있는 듯하다. 그의 목소리는 중학교 때 까까머리 친구 목소리 같다. 별명은 깐돌이. 공부도 잘 하는데 기타도 잘 쳐서 얄미웠지만 좋았던 친구. ‘작은 돛배에 새하얀 나만의 새하얀 돛을 달고서’(‘꿈을 찾아서’) 우리는 꿈을 향해 항해를 하는 줄 알았는데 바다는 세월의 바다였다. 지금은 없어진 동양극장. 그곳에서 우리는 동시상영 영화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중학생이었고, 휴거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첫 번째 영화는 ‘첩혈가두’. 1980년대를 풍미했던 홍콩 액션 느와르. 우리는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지는 말자는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았던가. ‘정신 없이 걷다가 발을 멈춰 돌아보면 우린 어느새 더욱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사는 것’(‘내일 일기’)만 같은데……. 다음 상영작인 ‘레인맨’을 상영하기 위해 쉬는 시간일 때, 너는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그때 만약에 우리가 ‘레인맨’까지 영화를 봤다면, 우리의 인생은 지금과 다를지도 모른다. 그후 나는 ‘동사서독’이나 ‘중경삼림’에 빠졌고, 그 무렵부터 우리는 멀어졌다. 나는 너의 소매를 붙잡기는 했을까. 중학교 입학하고서 두 번째 겨울방학 때, 겨울밤에 다음날 ‘아침까지 눈이 쌓여 있었’(‘겨울 난로’)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졌을까. 너는 이미 글렌 메데이로스보다 모차르트를 듣고 있었고, 소피 마르소보다 지리 선생님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제대를 하고 도서관에서 우연히 너를 만났다. 너의 옆에는 지리 선생님을 닮은 한 숙녀가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다가 작은 은행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끝이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당시 동양극장은 운영의 어려움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동시상영을 했다는 것. 마지막 발악이었던 것. 영화를 보던 그날, 중간에 일어나서 너는 아버지가 일하는 신문사의 파업 현장에 간다고 했는데, 따라일어선 내가 어디로 갔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둠이 음악사이로 흐르듯 다가오는 밤’(‘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에 듣던 음악만이 선명하다. 너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데 목소리는 선명하게 남아있다. 오석준의 목소리처럼.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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