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569_180452_5327.jpg

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島詩樂 산책](4) 떨어진 동박새 / 김석교

눈 내린 아침 추위를 못 이겨
길바닥에 떨어진 동박새 한 마리
몸 위로 무심히 차바퀴 굴러간다

동백꽃 드나들던 부리
붉은 피로 물들었다
굳게 다문 눈, 조막손 같은 발

어느 날엔 나도 저렇게
날개를 접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내 이름을
밟고 지나기도 할 것이다

착하게 살아야겠다
눈 내려 비틀거리는 아침
그가 마지막으로 울었을
묵은 동백 우듬지를 올려다본다
/ 떨어진 동박새 - 김석교 詩

김석교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넋 달래려다 그대는 넋 놓고』, 『봄날 아침부터 가을 오후까지』, 『카르마의 비』 등이 있음.

몸길이가 세 치밖에 안 되는, 붉은 동백의 꿀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동박새를 아시는지요? 동백의 숲에 들어 어디선가 가늘고 여린 풀피리소리가 들리면 아마도 그 녀석일 겁니다. 가지 끝에 두 마리가 앉아 있으면 틀림없이 그들은 사랑하는 부부일 겁니다.

눈 내린 추운 어느 날 아침 길바닥에 차갑게 떨어져 있는 동박새가 시인의 눈에 밟힙니다. 그것도 잠깐. 육중한 차바퀴가 그 여린 것을 무심하게 밟고 지나갑니다. 가만히 다가섭니다. 무릎을 꿇어 몸을 낮춥니다. 피로 물든 부리, 잠긴 눈, 조막손 같은 발. 미동도 없습니다. 순간 시인과 동박새는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됩니다. 가슴이 서늘해져 옵니다. 동박새가 마지막으로 울었을 묵은 동백을 올려다보며 시인은 생각합니다. ‘착하게 살아야겠다. 어떻게 사는 게 착하게 사는 것인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 아침입니다.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석교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