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4) 제주 아빠 관찰기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제주 아빠들의 육아관
 
사람은 누구나 밟고 있는 땅의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섬인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은 섬사람 근성이 있게 마련입니다. 아무래도 고립돼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영향을 덜 받지만, 구성원들 간의 관계는 끈끈하죠. 이런 특성이 육아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됩니다. 저는 비교적 개방적인 부모님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고 10여년 동안 외지생활을 했기 때문에 제주라는 풍토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입니다. 육지의 아빠와 제주의 아빠가 특히 다를 것은 없지만 미묘한 변화는 분명히 있습니다.

육지의 아빠들은 조금씩 가족에게 다가가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 나왔던 신조어 '프렌디'(friend + dady의 합성어로 '친구 같은 아빠'의 뜻)는 이런 현상을 반영합니다. 당대 사용되는 언어만큼 적절한 대변자도 드무니까요. 물론 백화점 같은 대기업에서 돈을 벌 목적으로 띄운 용어이지만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국의 아빠들을 접해본 인상을 말씀드린다면 한마디로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하기 때문에 한계는 있지만, 제가 만나 본 아빠들은 두 가지 특징을 보였습니다. 첫 번째, 대부분의 아빠들은 육아에 소극적이고 가족의 테두리로부터 겉도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로부터 깜짝 놀랄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거 아냐? 아빠는 물만 주면 자라지 않아?"
 
친구가 얘기한 물은 아마도 '돈'을 말하는 것이겠죠. 아빠는 가족에게 돈을 공급하고, 엄마는 대부분의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오래된 생활 패턴이 지금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10여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보니 길이나 집, 마을의 모습이 무서울 정도로 변한 데 비하면 너무나 고요합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돼 아이에게 내면화되면 '아빠는 돈 벌어오는 기계'라는 이미지가 생기겠죠. 일전에 봤던 기사 중에서 한 아이가 "아빠는 그냥 돈만 부쳐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아빠에 대한 충격적인 이미지이지만 지금 보이는 아빠의 모습과 연관해서 생각해 보면 별로 놀라운 결과도 아니고 논리적인 귀결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두 번째 아빠의 모습은 자신의 방법으로 육아에 적극 개입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향은 육지의 아빠들에게도 흔히 볼 수 있는데, 대개 완고한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아이는 숨이 막히죠. 이런 아빠를 둔 아이를 여럿 본 적이 있습니다.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는 엄마 의존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친분이나 관계가 생기는 사람에게 달라붙고 칭얼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일에도 쉽게 토라지고 조금만 지적을 해도 화석처럼 굳어버리죠.

공부방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에서도 유난히 사랑을 달라고 재촉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살 수가 없습니다. 아빠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내 역시 아이들의 교육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사랑은 식물에게 흙과 비와 햇빛처럼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제가 제주에서 만나 본 모든 가족의 문제는 결국 사랑의 부족함에서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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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아빠의 다른 점
 
사랑은 촛불과 같습니다. 촛불을 다른 초에 옮겼다고 하더라도 촛불이 약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촛불의 불을 다른 초에 옮기지 않으면 초는 시간이 지나면 꺼져 버립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면 나 역시 사랑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뉴스에서 보이는 끔찍한 테러와 살인사건들을 '사랑'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이 0에 가까운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은, 아니 사랑하지 못하는 아빠를 위해 변명을 해보겠습니다.

그 아빠가 아이였을 때 누가 그 아이를 사랑해주었을까요? 사랑의 그릇에 담긴 것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커버렸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줄 것도 없기 마련입니다. 그 아버지의 아버지, 다시 그의 아버지 역시 비슷한 처지였을 것입니다. 사랑의 충전이 필요하죠. 사랑을 받지 못한 아버지는 항상 사랑을 주지 못할까요? 바로 여기에 과학이 범접할 수 없는 인간의 신비로움이 있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도 사랑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위대한 것 아닐까요? 귀만 열어놓는다면, 눈만 뜬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사랑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메시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해석하고, 재송신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시장 좌판에서 야채를 파는 꼬부랑 할머니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도 이해할 수 있고, 아기가 하는 옹알이도 알아들을 수 있죠. 이런 의미에서 남자와 아빠는 다릅니다. 아빠는 어른이고 부모입니다. 돌봐야 할 아이가 있는 사람은 때로는 엄마도 되고, 아이도 되고, 고양이도 될 수 있습니다.

<논어>를 100번 정도 읽고 나서 저는 이 책이 사실은 '사랑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자는 제자들 앞에서 선생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엄마도 되고 아빠도 되고 친구도 되고 동생도 되고 동네 아저씨도 됩니다. 그 결과 나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가정에서 고립되고 권위적인 아버지들은 가족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갖습니다. 사랑의 화신인 공자는 이런 분들이 꼭 알아야 할 사실을 알려주죠.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기보다는, 내가 혹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몰라주는 건 아닐까 고민해보라.
- <논어>, 학이 편

 
아버지들은 남성이 타고난 이성적 능력을 발휘해 남들과 주로 머리를 사용하는 대화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가족들과의 대화는 감정을 주로 써야 합니다. 심리학자들이 분석한 결과 남성들은 대개 기분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대화인 '표출적 커뮤니케이션'이 서툽니다. 아빠들은 남성이 가지고 있는 심리학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특성들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빠가 육아에 참여했을 때 아이에게 주는 순기능은 과학적으로 너무 많이 증명되었고, 나아가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지 않거나 제멋대로 육아했을 때 아이에게 끼치는 역기능도 많습니다. 아버지와 접촉을 많이 한 5개월 남자 아이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거부감을 덜 느낀다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역시 다른 실험에서는 아빠와 같이 한 시간이 많은 두 살짜리 아기가 낯선 사람과 함께 있어도 덜 운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神殿) 현관 기둥에 새겨졌다는 유명한 말 "너 자신을 알라"야말로 제주 아빠들에게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글은 글쓴이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내용으로 실제 제주 아버지들의 모습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140자 Q & A 상담코너]

4. 권위적인 아빠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Q = 초등 6학년 남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아이 아빠는 육아에 적극적인 편인데 너무 엄격해서 아이들이 기를 못 폅니다. 살갑게 대하라고 아무리 설득해서 말을 듣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 권위적인 아빠는 아이를 살갑게 대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경험해보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가족, 특히 아내의 조언은 접수가 잘 안 되죠. 살가운 육아를 하는 아버지를 둔 가족을 만나거나 전문가와 접촉할 경험을 만들어주는 게 좋습니다.

 * 독서지도사 오승주 씨에게 자녀들의 학습방법과 독서 등에 관한 궁금한 점을 이메일로 상담할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 dajak9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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