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걷기 열풍 정착 위한 새로운 도시공간 창조 필요

얼마전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집에서 50km 떨어진 직장에 출퇴근하는 문제가 큰 고민거리였다. 자가용 승용차에 대한 미련이 없지 않았으나 나이가 들면서 친숙해진 대중교통 수단을 선택했다. 이제는 매일 수도권 전철이나 광역버스를 1시간 넘게 타고 3km를 걸어 출퇴근하는 일이 익숙해졌다. 집에서 직장까지 2시간, 전철과 버스에서 책을 읽고 두발로 서서 땅과 밀착하며 자연과 함께 걷고 나면 큰 성취감을 느끼게 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대중교통은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보다 시간과 경제적 비용을 줄여준다. 수도권 곳곳으로 퍼져있는 전철망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흠이 있지만 안전하고 편리하다. 고속도로 전용차로를 달리는 버스는 제한된 노선 때문에 이용하기가 어렵다. 도시의 도로는 자동차를 위한 공간으로 걷기에는 불편하다. 넓은 도로와 생색용으로 만든 좁은 인도, 주차 공간은 자동차 중심이 되는 도시환경을 만들어냈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든다는 미명하에 넓은 직선 도로를 사방으로 뚫어 자동차 위주의 도시 계획을 추진한 결과다.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구불구불한 옛 길은 재개발로 사라지고, 넓은 직선 도로 중심으로 확장된 도시는 수 많은 자동차로 채워졌다. 자동차가 대중화되고, 주기적으로 세련된 디자인과 성능으로 무장한 신차가 출시되면서 중독성이 강한 소비물품이 되었다. 자동차 소비자들은 교통체증이나 미세먼지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도로 건설보다 자동차 증가 속도가 빠르다. 싱가포르처럼 차량대수를 법적으로 제한하지 않는 한 교통문제 해결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도시에서 자동차는 ‘갑’이고 보행자가 ‘을’인 셈이다.

경부고속도로와 자동차 산업이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도로의 확장과 신설이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사회간접자본 예산중 도로 건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도 큰 편이다. 세금낭비나 자연파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지역 정치인들은 도로건설 재정확보를 큰 자랑으로 삼는다. 토건업자들의 지역발전 논리도 여기에 가세한다.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확장과 우회도로 건설이 대도시의 구심력을 강화시켜 중소도시와 농촌 마을을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빈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주장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영역은 사라지고 걷기는 불편해질 수 밖에 없다. 왜 땀흘리며 걷느냐, 편하게 차를 타라고 힐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성장이나 행복에 대한 관점이 바뀌면서 걷기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이 높아지고 있다. 노년층은 교외생활을 원하지만 젊은 세대는 도시생활을 선호한다.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자는 논의가 활발해진 이유다. ‘막힘없는 교통과 충분한 주차공간 확보’에 집중하는 도시 공간 설계의 목표가 ‘걷기 위한 길’을 만드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자동차와 조잡한 인도만 있는 도로보다는 도서관, 미술관, 공연장 등 문화시설과 작은 공원, 다양한 상점, 음식점, 카페가 있는 거리에 젊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낮선 풍경의 건물과 가게, 좁은 골목, 느린 자동차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인사동, 대학로, 홍대, 북촌, 서촌, 가로수길과 전주 한옥마을이 대표적이다. 이곳들은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걷기 열풍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행친화적인 공간으로 도로가 재구조화 되어야 한다. 일상적으로 가까운 거리부터 먼거리까지 선으로 연결된 걷기 편한 도로가 만들어진다면 걷기의 생활화는 빨라질 것이다. 젊은이들의 욕구와 취향을 적극 수용하고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부응하는 도시공간의 창조가 필요하다. 도로 다이어트나 구도심의 리모델링이 시도되고, 도로를 곡선으로 만들거나 인도를 확장하고, 고가도로를 걷기 전용으로 개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도시마다 지역 특성을 살려 차별적인 공간 계획을 놓고 경쟁하는 흐름이 지속된다면 우리 도시는 걷기에 매력적인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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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걷기 좋은 길은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고 즐거움과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보행자가 출퇴근하거나 산책할 때 자동차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되고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습관적이고 중독적인 걷기는 비만, 스트레스 등 현대인의 질병을 예방하고, 자동차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걸어 다니는 도시는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 증가, 부동산 가치 상승, 대기오염과 교통사고 감소 등의 이익을 창출한다. 이제부터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의 힘을 믿고 사람 냄새나는 거리에서 ‘굿바이 자동차’를 외쳐보자.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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