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島詩樂 산책](6) 山心이 딸 / 강덕환

산 같은 마음으로 살라고
山心이란 이름을 가진 여인은 아라리에 살았다
민주 마을이었던 탓일까, 남편을
대전형무소에 보내고 불러오는 배를
움켜쥐고 살았다, 무심한 남편은
‘웃샤쓰 두 벌만 보내달라’는
5전 짜리 엽서를 끝으로
아리 아리 아라리요
죽었는 지 살았는 지 소식도 없고
몸을 푼 지 스무날 만에 죽었다, 죽어도
시부모 앞에서 알몸인 채로
가앙가안당하면서…, 옹송거리던
그녀의 딸도 따라 죽었다.
이름 석 자 얻어갖지 못한 채
발에 채일 봉분 하나 마련하지 못한 채
얼어붙은 어미의 젖무덤 감싸 안고 죽어간
山心이의 딸
영정 대신 지방紙榜 삼아
5전 짜리 그 엽서 제상에 올려
분향재배 드리고 음복잔에 취기가 오르면
잊힐 듯도 하건만 반세기를 또렷이 살아
기억 속을 파고드는 高山心이의 딸 / 山心이 딸 - 강덕환 詩

강덕환 =『풀잎소리』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생말타기』, 『그해 겨울은 춥기도 하였네』등이 있음.

시를 읽다가 숨이 막혀 옵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망각을 강요당한 한 집안의 짧은 생이 강요당한 망각의 늪에서 훠이훠이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그녀의 어린 딸도 어미 젖가슴에 묻혀 옹알거리며 세상 속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웃 사쓰 두 벌만 보내달라’는 엽서를 끝으로 생사조차 모르는 남편의 젯상엔 영정 대신 5전짜리 엽서가 놓여 있습니다.
산 같은 마음으로 살라고 이름 지은 山心이, 그녀가 죽자 뒤따라 먼 길 떠난 물애기, 이름 석 자 얻지 못하고 세상 떠난 山心이의 딸.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닙니다. 70여 년 전 이 섬에 불어 닥친 우리의 역사입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우리들의 삶입니다.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강덕환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