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신개발은행(NDB) 설립을 마무리한 중국이 이제는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자는 중국 외에 브라질, 러시아, 인도, 남아공 등 브릭스(BRICS) 5개국을 회원국으로 한 것이지만 이번 것은 아시아 및 비 아시아 50개국이 창립회원으로 참여했거나 신청 중이다.

초기에 미국 국가안보위원회는 중국이 과연 투명성과 지배구조 면에서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운영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를 비췄다. 이어 국무장관이 직접 나서서 매우 노골적으로 우방들에게 불참을 권유했다. 그러나 미국의 입김은 잘 먹혀 들지 않고 있다.

스페인 외무장관을 거쳐 유럽연합 각료이사회의 사무총장을 지냈던 원로 정치인, 하비엘 솔라나(Javier Solana)도 미국이 굳이 이것을 지정학적 무대에서 밀려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유감이며 개방된 자세로 여러 선진국들의 동참을 독려하는 것이 이 은행의 투명성과 지배구조를 개선시키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이 금융 패권(覇權)의 향방을 우려하는 것인가? 미국이 세계은행과 IMF를 통해 행사한 금융패권의 한 예는 세계은행이 첫 대출국인 프랑스에 대한 조건으로 공산당과의 연정을 파기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당시 프랑스의회에서 공산당 의석은 25%를 넘었다. 연정에 참여한 장관들이 모두 사임하기 전까지 프랑스는 한 푼의 지원금도 구경하지 못했다.

워싱턴 컨센서스도 금융 패권의 다른 한 예다. 워싱턴 컨센서스란 IMF와 세계은행이 금융지원을 할 때 제시하는 조건의 근간을 이루어 왔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정적자 감축이다. 교육, 의료 등 공공지출의 삭감과 세금인상, 무역 및 외환자유화, 규제완화와 민영화도 단골메뉴다.

IMF와 세계은행에 대한 불만의 산물

워싱턴 컨센서스가 지나치게 반(反) 성장지향적이라는 점은 그 동안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한 불만이 컸던 이유 중의 하나다. 여러 모로 요즘의 중국의 행보는 미국이 지난 70년 동안 쥐었던 금융패권에 대드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의 전 회장 짐 오닐 같은 사람은, 신흥국가들 특히 중국의 IMF 지분을 늘려주기로 한 2010년의 약속을 미국 등 선진국들이 불이행하고 있는 동안 중국의 경제는 다시 두 배로 성장했다면서 중국을 위한 공간을 넓게 키워야 한다고 중국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미국은 심기가 불편하더라도 조만간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국가안보위원회까지 나서는 것을 보면 미국의 우려는 좀 더 심각한 데 있는 것 같다. IMF와 세계은행을 낳은 1944년 브레튼 우즈 협정의 핵심은 금환본위제의 채택이었다. 그 이전의 국제 결제는 금 또는 금으로의 교환이 아무 때나 가능한 화폐로 이루어졌지만 브레튼 우즈 체제가 미 달러를 국제결제통화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 제도의 대 전제는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준다는 국제적 약속에 있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이 약속을 파기(1971년 '닉슨 쇼크')했고 그 후로도 달러화는 국제 결제통화의 지위를 향유하고 있다.

한 나라에 은행은 여러 개 있어도 되지만 중앙은행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지구 상에 고루 통용되는 화폐를 찍어낼 수 있는 중앙은행이 두 개가 될 수는 없다.

언젠가 중국이 이 빨간 선을 넘을 것으로 미국은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위안화의 달러 대체는 미국으로서는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전면전을 의미한다.

국제결제통화는 절대 양보할 수 없어

패전국 독일이 경제부흥과 동서 재통합의 꿈을 키우며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어떠한 자세를 취했던가? 독일의 부활이 결코 유럽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키기 위해서 아데나워, 에르하르트, 그리고 콜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역대 수상들이 취했던 저자세를 중국은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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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서방의 중국에 대한 불신도 문제지만 중국도 아시아, 나아가 아프리카에서의 금융 주도권, 그리고 위안화의 국제화라는 구상을 넘어 '달러화의 대안으로서의 위안화'가 중국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해야 한다. 미국도 태평양 연안국이라는 점을 떠나서라도 이런 규모의 큰 국제 기구에 미국이 불참하는 것은 볼썽사납다.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캐나다와 일본도 미국과 함께 6월 이전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중국이냐 미국이냐의 양자택일이 강요되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이 글은 <내일신문> 4월 8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게재됐습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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