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 칼럼] 재선충병 해법찾기 ① ‘방제체제에 대한 제도개선부터’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는 옛시조를 익히 읊던 학창시절의 기억이 아직 선연하다. 몇세대의 변화에도 의연해야할 내고향 산천은 인간 한 세대가 다하기도 전에 황폐화 되고 있다. 무위자연은 인간의 탐욕과 무지로 그 한계를 다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목도되는 자연훼손 중 가장 심각한 것 가운데 재선충방제라는 명분으로 행하여지는 무대책한  전시(展示)관치 행정이 있으니 자연은 인간의 수명과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우리 삶의 주체라는 성찰이 필요하겠다.

제주도 재선충병 방제본부가 제시한 고사목 제거 시한이 이미 지났고 치열한 노력에도 방제본부는 완전제거에 실패했다. 비단 소나무림의 소실을 넘어선 환경파괴와 지역주민들과의 마찰 등재선충 피해의 여파가 매해 제주사회에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음에도 제주도 재선충 방제본부는 그간의 방제방법 상의 문제점을 치유하고 대안을 마련하는데 적극적 이기보다 책임감 없이 기존의 구태에 안주하는 모습이다. 이런 위기상황에서도 관성에 매달려 지금의 퇴행적 진단과 처방으로 맞대응하는 것은 자연파괴의 방관자임을 자임하는 행위이다.

더구나 제주는 도서 특유의 관료주의에 심취된 관성의 폐단으로 심히 우려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제 재선충병 매개충이 우화하여 활동을 시작함에 따라 방제본부는 고사목 제거를 위주로 하는 방제법에서, 환경파괴를 묵과하는 손 쉬운 살충제 항공살포 및 효과가 의심스러운 예방주사 주입을 위주로 하는 방제법으로 방제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것이다.참으로 제주도 재선충병 방제방법에 관해 진지한 해법 모색이 필요한 시기이다.

최근 수개월 동안 필자는 제주도 재선충병 방제본부와 소통하며 현 방제법의 문제점과 대안에 관해 여러 번 의견을 개진하였으나 공염불에 그치고 오히려 왜곡되어 방제본부의 행위들을 정당화하는 방편이 됨을 목도하였다. 재선충병 해법은 새로운 과학적 해결방법의 제시보다 현 방제 체제에 대한 제도적 개선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그간의 제주도 재선충병 방제의 제도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재선충병 해법찾기에 일조하고자 한다.

제주의 재선충 방제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제주의 고질적 재난이 되고 있는 재선충 방제의 반복적 실패의 근본적 원인은 첫째로, 관치에 의해 관료가 독점하고 있는 재선충 방제본부의 부실한 진단에 있다. 날이 갈수록 사회현상이 복잡다단해지는 요즘 시대에 정확한 진단의 중요성은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제대로 된 진단 없이는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정책이나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최근 주요 병원들은 정확한 진단을 위해 경쟁적으로 협진을 활성화하고 있다. 이는 진단의 다양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재선충 방제에 매해 수백억원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는 제주 도정의 재선충 관련 공직자들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니, 왜곡된 진단은 개인에게는 물론이거니와 탁상공론식 부실한 정책을 낳아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국가적 손실까지도 초래하는 독소(毒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선충병은 재선충, 매개충, 숙주인 소나무 그리고 여러 소나무 해충과의 상호작용 등 병의 메카니즘 자체가 대단히 복잡하고 여기에 기후, 지형적 요건과 국가간의 빈번한 물자 이동 같은 사회적 요건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 쉽게 다루기 힘든 감염성 질병임에 틀림이 없다. 여기에 재선충병 방제에는 담당관료, 산주, 방제기업, 약품제조사 그리고 지역주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관련되어 있으니  진단의 왜곡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재선충병으로 촉발된 이 국가적 재난에도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진단의 단계에서부터 참여하여 진단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관료주의와 퇴행적 매뉴얼이 반복성 대형 재난 초래

둘째로, 복합․구조적인 퇴행적 관료주의가 제주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 사회는 오랜 기간 도서지역특유의 배타적 자주 문화를 발전시켜 왔고 따라서 종종 모든 현안을 배타적이고 근시안적 자기안위라는 가치관 속에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를 통해 제주도민은 제주의 환경적 가치와 고유 문화를 지켜왔으니 더욱 발전 계승해야할 긍정적인 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 중심에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퇴행적인 제주도 관료집단이 있는 것이니 여기에 심화된 동종교배 인사와 진영논리에 함몰된 도민의식은 관료주의적 집단사고의 오류를 더욱 확산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인식해야 한다.

관료주의는 원칙과 절차를 강조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이것에 집착하면,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는 역기능이 발생하면서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의 최적 합리성만을 추구하게 된다. 그 결과 제주도 관료집단은 도민 전체를 위한 종합적인 판단과 포괄적 문제해결에는 매우 취약하게 되며 특히 위기 시에 그 역기능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있는 고사목 완전제거는 고사목 수의 정확한 예측 실패에 기인한다. 즉, 발생 고사목의 예측치에 근거하여 예산과 인력을 배정하고 있으나 실제 발생수는 항상 예측치를 상회하고 따라서 예산과 인력의 부족으로 고사목을 완전제거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원칙과 절차라는 관료제의 합리성을 강조하느라 수단이 목적으로 전이된 대표적 경우다.

어차피 전수조사가 아닌 다음에야 현재 사용하는 예측모델로 고사목 수의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한 것이다. 전수조사가 어렵다면 과감하게 새로운 예측모델을 도입하든지 아니면 예산 및 인력배정의 원칙 자체를 재고해 보아야 한다. 책정된 예산으로 더 많은 고사목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연구용역을 주는 방법도 있다. 큰 그림을 보고 포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불확실성 회피도’라는 용어가 있다. 모호한 상황과 같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일본은 7위, 한국은 17위로 주로 아시아권 국가들의 불확실성 회피도가 높은 반면, 스웨덴 영국 미국 싱가포르 등은 불확실성 회피도가 낮은 나라로 분류된다. 불확실성 회피도가 높은 나라의 의사결정자는 규정과 규칙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고, 불확실성 회피도가 낮은 나라일수록 상대적으로 새로움과 경험과 훈련을 중시한다. 제주의 반복성 재선충병 재난도 불확실성을 회피하려하는 관료주의의 폐해에 기인하는 면이 있다.

현 방제방법이 제주의 실정에 맞지 않음을 방제본부가 인정하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는, 올해 또다시 슬그머니 등장한 훈증법을 예로 보면, 훈증법은 재선충 및 매개충 자체를 확실하게 고사목에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임과 동시에 제거한 나무를 야적지로 옮기는 노력 및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노동생산성 측면에서도 아주 우수한 방제법이다. 그러나 워낙 독성이 강한 약제를 사용하므로 사용 시에 특별히 주의를 요하는 방제법이기도 하다.

훈증에 사용하는 약제는 빗물에 의해 노출될 경우 주변 토양의 황폐화 뿐만 아니라 인체에도 무척 유해하기에 미국 같은 국가에서는 적절한 사용법을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여기에는 훈증포 관리와 훈증제의 사용 시기 및 장소, 안전거리 등의 규제를 포함하고 있다.  방제본부는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얻을 수 있는 이미 습득한 방법이기에 이러한 제반 규정들을 무시하고 훈증법에 집착하고 있다. 방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차후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자신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는 괜찮을 것이라고 눈감아 버리는 관료적 프로토콜의 전형이다.

또한, 시행자와 시행날짜에 대한 레이블링은 전혀 없고 찢겨나간 훈증포가 바람에 나부끼며 훈증더미는 손가락으로 셈하기가 넘칠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바로 옆에 행정기관인 읍사무소가 붙어있어도 어느 누구 책임감을 갖고 관리를 하지도 않고 있다.
 
셋째는 퇴행적 재선충 방제 매뉴얼이 반복성 재난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 재선충 방제본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산림청 매뉴얼은 20여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최신 연구결과는 물론 제주의 특수한 기후, 지형적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제주도 방제본부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매뉴얼에 대한 맹신과 집착으로 매뉴얼 함정에 빠지고 발목이 잡혀서 책임회피로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대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파쇄목이 관리되는 것을 보면 관료집단이 매뉴얼을 넘어선 창조적 대응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산림청 매뉴얼에 고사목을 파쇄하는 기준이나 관리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긴 하지만 파쇄 칩의 크기에 대한 제한이나 처리방법에 관한 기준은 도 재선충 방제를 책임지고 있는 방제본부면 상식 수준에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파쇄칩의 크기는 일본과 같은 경우 토쿄대의 나오토 캄타 교수의 논문을 기준으로 파쇄 칩의 최대크기를 80X60X16mm로 한정짓고 있으나 고사목속에 있는 매개충의 크기와 발생과정을 끝내고 우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기준으로 그 보다 작게 파쇄하면 된다는 상식수준에서라도 관리를 하여야할 것이다. 지금처럼 10-20cm는 족히 되어보이는 파쇄칩이 도처에 널려있는 상황이 되어서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리고 파쇄 칩을 쌓아두면 부패가 진행되면서 발생하는 열로 겨울철에도 재선충 증식에 이상적인 상황을 조성하게 되어 거대한 재선충 더미로 변모할 수 있다. 파쇄 칩은 재선충 및 매개충을 전파하는 주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파쇄 즉시 소각이나 매립 등 사후처리를 해야 한다. 1984년 핀란드로 선적된 미국 소나무 파쇄더미에서 재선충이 발견된 이후 유럽국가는 미국에서 선적되는 소나무 파쇄 칩의 수입을 원천적으로 금지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제대로 관리도 되지않는 파쇄 칩을 산처럼 쌓아놓고 심지어 육지부로 선적까지 하여 재선충병을 전국으로 퍼뜨리는 위험을 초래하느니 어쩌면 고사목 제거를 포기하는 것이 헛수고∙ 헛비용 줄이는 것일수도 있다. 매뉴얼에 없더라도 상식 수준에서 창조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고심하는 관료가 아쉽다.

예방주사약도 마찬가지다. 부작용이 속출하는데도 기존의 에바멕틴 계열의 예방주사만을 고집하는 이유도 산림청 매뉴얼에 기재되어 있는 예방약제가 그것들 뿐이기 때문이다. 비싸더라도 꼭 보존해야할 보호수에는 모란델타트레이드 같은 더 안전하다고 입증된 약제를 주입하면 안되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인가?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잘못된 매뉴얼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어떻게 불행을 키울 수 있는지 보여준 참고 할만한 사례다. 매뉴얼을 철저히 지키도록 훈련받은 일본인들은 매뉴얼 기준을 넘어선 규모 9.0의 초강진과 수십m로 밀려든 쓰나미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곳곳에 뿌리 내린 관료주의는 전문성을 가진 프로 관료들을 매뉴얼 뒤로 숨어버리게 하여 자기 일처럼 덤비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 일본의 관료주의가 매뉴얼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매뉴얼 함정’에 빠져 사고의 경직성을 낳고 창의적인 대응에 한계를 보여줬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관료주의 사회인 일본을 21세기에는 문제해결 능력을 보이기 어려운 국가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157111_177196_1457.jpg
이종우 박사는 제주 토박이다. 제주사대부고를 졸업(5회)하고 서강대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했다. 미국 노틀데임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신경생물학(Neuroscience)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의과대학에서 연구원으로도 활동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서강대에서 연구교수를 지내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제주대에서 연구교수로 지냈다. 2013년에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일반연구자지원사업 수행으로 망막색소변성증 등 퇴행성 시신경 질환 발병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역할을 밝혀내 전국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논문은 유전학 분야의 국제학술지 플로스 제네틱스(PLoS Genetics) 2013년 6월6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되기도 했다. 최근 2년간 세계재선충학회 등을 찾아다니면서 관련 논문과 특허 개발에 열중하고 이다. 2013년 8월에는 재선충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주)유소를 설립해 운영중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