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아이들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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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의 어·부·가](7) 교과서·참고서가 문학작품 따라갈 수 없는 이유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그림책의 재발견

공부방 아이들에게 그림책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반응이 나쁘지 않았지만 4학년 이상 아이들은 의아해 했습니다. 그 아이들의 반응을 짧게 정리하면 ‘이제는 그림책을 읽을 나이가 아니다’는 의미였습니다.

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는 “그림책 안 읽은 지 몇 년 됐는데”라고 하며 의아해했습니다. 아이들이 그림책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할 정도라면 어른들은 어떨까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림책을 무시한다는 것은 그림책의 진가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림책을 재밌게 읽어본 적도 없고, 누가 그림책을 맛깔나게 읽어준 경험도 없는데 애정이 생길 리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껏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어왔지만 제게 강한 충격을 준 것은 세 종류의 책이었습니다.

그것은 만화책, 동화책, 그리고 그림책입니다. 그 중에서 그림책이 준 충격이 가장 컸습니다. 사람은 새로운 경험이나 지식조차도 고정관념으로 받아들이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시간을 내서 아이와 함께 도서관을 방문해 보세요. 어린이자료실에 가서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잡고 유심히 읽어보세요. 그 중 하나를 선택해 아이에게 읽어주세요. 어쩌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읽었던 어떤 철학책, 고전, 문학작품도 그림책만큼 제 영혼 깊이 다가온 적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림책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책으로 놀이를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부모님들에게 제가 알게 된 지식을 나눠주면서부터입니다. 제 아이들은 어렸기 때문에 헌책방에 가서 아이들 읽어줄 그림책을 틈틈이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있는 책장에 그림책을 꽂아두고 아이들이 재밌어 할 만 한 책을 꺼내줬더니 아이들이 그림책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줄 때는 황홀한 기분이 듭니다. 그림책이 사랑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느낌이었습니다. 일곱 살배기 첫째 아이는 앤서니 브라운, 존 버닝햄을 좋아합니다. 어떤 책에는 앤터니 브라운이라고 적혀 있기도 하고, 다른 책에는 앤서니 브라운이라고 하는데 둘이 같은 사람이냐 묻습니다.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하면 제목과 글쓴이, 번역자, 출판사 이름까지 다 읽어달라고 합니다. 책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은 역시 경험의 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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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pixabay ⓒ 제주의소리

문학교육의 필요성

OECD 사무국이 1994년부터 실시해 온 성인인구의 문서해독능력 지표를 우리나라 국민에게 적용한 결과 실질문맹률은 최하위권이라는 기사를 접할 때만 해도 저와 상관없는 일이라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부방에서 아이들과 공부를 하면서 ‘新문맹’이라는 말이 생각나더군요. 두 줄을 넘어가는 문제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아이들이 너무 적고, 서술형 문제 같은 경우는 아예 손을 놔버리더군요.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도 몇 마디 말을 섞어 보면 대화가 잘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을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전반적으로 문학교육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독서 경험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애써 공부한 양을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공자는 당시의 문학이자 ‘정치언어’였던 시(詩)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시를 배우면 공부에 흥미를 느낄 수 있고, 관찰력이 생기며, 집단지성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사회적인 불만을 공유할 수 있다. 가깝게는 부모를, 멀게는 상사를 섬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자연의 동물, 식물에 대한 조예까지 깊어진다.
- 『논어』, 「양화」 편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 당시는 외교무대나 정치무대에서 국가의 입장을 짤막한 시로 정리했습니다. 만약 상대가 읊은 시를 알아듣지 못하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공자의 시절로부터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교육의 대강은 거의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을 시키려면 세계에서 가장 힘세고, 돈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관찰하면 됩니다.

그들은 잃을 게 많이 있기 때문에 교육에 사활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죠. 유럽의 명문가와 중국의 대부호들은 아이가 대략 중학생 나이가 될 때까지 문학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킵니다. 문학은 ‘그럴듯한 거짓말’을 뜻하는 개연성이라는 과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논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논리력과 상상력, 정서의 함양을 기르게 할 때 문학작품을 따라갈 것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나 참고서는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논리적 사고의 바탕과 심미감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자극시켜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관찰한 아이들은 이 부분이 마치 안 쓰는 근육처럼 자극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자극되지 않으면 우리 미래에도 별다른 자극이 생길 희망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140자 Q & A 상담코너]

7. 아이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네요.

Q =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입니다. 며칠 공부를 좀 봐주는데 공부방법이 전혀 안 된 것 같아 속상했어요. 되고 싶은 꿈도 없는 것 같고, 왜 공부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뭔가 얘기하면 반항부터 하니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습니다.

A = 쌀통에 쌀을 채워 넣지 않았으면서 왜 쌀이 없느냐고 한다면 어떨까요? 자식은 부모의 삶이 반영되며 성장합니다. 자기중심주의를 내려놓고 철저히 아이 입장에서 관찰해야 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잘 하는 것은 적고 못하는 것은 많습니다.

 * 독서지도사 오승주 씨에게 자녀들의 학습방법과 독서 등에 관한 궁금한 점을 이메일로 상담할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 dajak9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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