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의 IMF와 세계은행의 합동 연차총회를 며칠 앞두고 미국 재무성은 한국정부의 외환시장 개입과 독일의 무역흑자 확대를 비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 행정부가 연례적으로 미 의회에 제출하는 세계 외환시장동향보고서였는데 미국 혼자서 세계경제의 견인차 노릇을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마당에 이 두 나라의 이기적인 행태는 유감이며 따라서 해당 정부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내용을 실어 더욱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독일 정부는 즉각 독일의 무역수지 흑자는 독일 상품의 우월한 경쟁력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거기에 최근 유로화의 약세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로화를 단일 통화로 사용하는 독일의 입장에서는 달리 도리가 없다고 미국의 비난을 일축했다.

우리나라 정부도 외환시장개입은 시장 변동성이 지나칠 때에 한하여 "스무딩 오퍼레이션" 차원에서 실시하여 왔는데 앞으로도 이런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고 대응했다.

위 보고서의 지적대로 작년 6월 이후 금년 3월까지 원화가 달러에 비해 약 8% 인상(원화의 평가절하)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달러는 같은 기간 무려 20% 이상 평가 절상되었다. 달러 강세의 폭이 너무 커서 우리나라의 원화가 미쳐 따라가지 못한 것일 뿐이다.

최근 국제외환시장의 관심은 미 달러화의 강세가 앞으로도 더 진전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환율을 예측하는 것은 어려울 뿐 아니라 그 예측에 근거하여 투자를 하는 것은 무모함을 넘어 어리석은 짓이지만 이 칼럼이 이것을 다루는 이유는 달러화 가치의 향방이 환율의 차원을 넘어 세계경제 전체의 장래를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세는 달러 강세가 지속된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첫째,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보유하는 외환보유액 중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달러화의 비중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

나 홀로 강세, 달러화

둘째, 미국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을 이어오는 동안 다른 나라의 정부 및 대기업들이 달러화 차입을 대폭 늘려 잔액이 9조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것의 상환이 시기적으로 몰리게 되면 외환시장에서 달러값이 더 오를 것이다.

셋째, 미국은 양적완화의 출구전략에 들어서서 금리인상의 시기를 재고 있는데 유럽, 일본, 영국 등은 양적완화가 한참 진행 중에 있어 금리 차이에 대한 기대심리로 달러 강세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금년 내에 유로화와 달러의 환율이 역전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1유로의 값이 1달러 밑으로 하락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몇 년, 미국이 돈을 열심히 찍어낼 때 많은 전문가들은 달러화 가치하락이 곧 뒤따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실제는 그 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똑같이 양적완화를 했는데 왜 달러는 강해졌고 유로는 약해졌는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환율은 상대적인 것이다. 달러화가 강해진 이유는 다른 나라들도 별 볼일이 없었기 때문이며 유로화가 약해진 이유는 유럽의 사정이 미국보다 더 나빴기 때문이다. 절대적 가치기준이 존재한다고 가상하고 말한다면 '달러의 가치가 하락했는데 다른 통화들의 가치는 더 하락했다'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가치 보전의 수단으로 채권이나 은행예금 같은 화폐자산이 아닌 실물자산을 찾게 된다. 주식은 금융자산인 동시에 실물자산의 성격도 지닌다. 회사 즉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주체의 소유권이기 때문이다. 땅이나 집 등 부동산, 나아가 금 은 등의 귀금속도 그런 실물이다.

화폐가치의 동반 하락

자산 버블(asset bubble)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어느 나라 정부도 이 거품이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금리 인상을 미국이 주저하고 있는 가운데 거품의 영구(永久)화를 해법으로 제시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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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앞에서 언급된, 달러화의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 세 가지 모두가 미국의 경제 상황과는 무관한 것이다. 달러 강세를 미국 경제 순항의 표시로 보는 것은 착시현상이다. 실제로는 달러화도 다른 통화들과 마찬가지로 자산가격 거품을 낳고 있는 남발된 통화의 하나일 뿐이다.

반토막 난 국제유가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이 미국 및 유럽의 국채들과 세계 여러 곳의 부동산을 되팔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더 심각한 변화의 전조가 아니기를 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이 글은 <내일신문> 4월 22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게재됐습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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