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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島詩樂 산책](9) 비설 飛雪 / 김윤숙

가슴에 품은 아기 잠시 내려놓아요

휘날리는 눈처럼 찬란한 햇살 아래 아 아 눈이 부시나요 고개를 못 드나요 제발 가슴을 여세요 구부린 몸 이제 펴세요 뼈 속에 파고드는 공포와 추위도 잊고 맨발의 젖은 옷자락 두 팔에 안은 아기와 가뿐 숨 몰아쉬며 무작정 뛰었지요 아이만 내 아이만, 쫓기는 이유 모를, 그 순간이었나요 폭설에 갇혀버린, 거친오름 푸른빛에 반짝이는 등심붓꽃 젖 먹던 그 힘으로 바닥 차오른 아기별들 봐요

내쉰 숨 칭얼대던 울음
까르르 웃는 오월 / 비설飛雪 - 김윤숙

김윤숙 = 『열린시조』로 등단. 시집으로 『가시낭꽃 바다』, 『장미 연못』등이 있음.

저기 오월이 오고 있는 오늘, 당신을 제주4․3평화공원으로 초대합니다. 연못 너머 보일 듯 말 듯 돌담 안에 자리한 ‘비설飛雪’이라는 작품 때문입니다.

4․3 당시 초토화작전이 벌어지던 1949년 1월 6일, 변병생(당시 25세)과 그의 두 살배기 딸은 거친오름 동북쪽 지역에서 피신 도중 폭설에 갇혀 헤매다 토벌대가 쏜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고, 후일 눈더미 속에서 이 모녀의 시신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눈보라를 뚫고 어린 목숨만은 살리고자 했던 젊은 어미의 꿈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시인은 어린 생명을 품에 안은 어미의 처절한 모습을,  ‘까르르’ 웃고 있어야할 품 안에 여린 생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나 봅니다. 사월이 가기 전에 ‘비설飛雪’과 맞대면하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비설飛雪’이라는 조각상은 강문석, 이원우, 고길천, 정용성 화백의 공동작품입니다.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윤숙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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