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㉖>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102세의 나이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람들은 호상이라고 했다. 장례를 마치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놀랍게도 당신 연세 86세 때(1998년) 쓴 편지를 발견했다.

일곱 살에 제주시 본가에서 서귀포(옛 중문면) 張氏 가문에 양자(養子)로 간 나의 형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지금 나는 47년 전으로 돌아가서, 일곱 살 난 우리 아가에게 이 편지를 쓴다. 어느덧 내 나이 86세, 이승을 하직하기 전에 너에게 꼭 이 말을 전하지 않으면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구나. 몇 군데 점집에 가서 물어보니 널 양자로 보내지 않으면 단명할 팔자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랬다. 애미를 원망하지 말거라. 하지만 어린 자식이 어미가 보고파서 뒷간에 가서 자주 입을 막고 울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을 때 에미 눈에서는 피눈물이 쏟아지더구나. 죽을 때 죽더라도 함께 살 걸… 애미는 천 번 만 번 후회하고 또 후회했느니. 아가야, 그 후로도 애미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네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애미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단다. 미안하다, 아가야. 무정한 이 에밀 용서해다오.>

타임머신을 탄 어머니가 과거로 내려가 아가를 불러낸 것은 아마도 중년의 자식(당시 형의 나이 53세)에게 새삼스레 옛일을 털어놓는 게 쑥스럽고 민망했기 때문이리라. 양아버지가 사망하자 열 살 이후에 형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한때나마 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이 어머니 마음 속에 오래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내 형에게는 어머니의 한(恨)보다 더 큰 트라우마가 골수에 사무쳤는지 모른다. 뼈와 살과 피를 나눈 육친의 정(情)이란 게 이다지도 깊고 아린 걸 그 누가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40여년 전에 읽은 소설 속 이야기다. 서양의 어느 농촌 마을에 홀어머니와 외아들이 살고 있었다. 효자로 근동에 소문이 자자한 아들이 사랑하는 동네 처녀와 혼인식을 올리던 날, 느닷없이 산적들이 마을로 쳐들어와 약탈하고 아리따운 신부를 납치해 산 채로 데리고 갔다. 아들은 산적의 두목에게 찾아가 무릎 꿇고 울면서 애원했다.

“신부를 저에게 돌려만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너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의 심장을 가져와.”
두목은 효자로 이름난 그의 효심을 시험이나 하려는 듯 이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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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한 없이 괴로워하던 아들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방문을 열고 늙은 어머니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피로 범벅이 된 뜨거운 심장을 손아귀에 움켜쥔 아들은 보름달이 환한 하늘을 향해 통곡하고, 운명을 저주하면서 눈물과 땀이 비오듯 흘러내려도 미친 듯 산채를 향해 질주했다. 한 순간 아들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손에 든 심장을 놓치고 말았다.

그때! 어디선가 어머니의 인자한 음성이 들려왔다.
“얘야, 어디 다치진 않았니…”
그것은 어머니의 심장에서 들려오는 나직하고 조용한 소리였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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