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13) 나의 무절제가 아이들에게 전염됐다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아이들의 무절제, 어른의 무절제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지나간 자리를 보면서 한숨을 내쉰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연필과 지우개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고 공부하던 책은 책상 위에 그대로 올라와 있습니다. 책이 없다며 책을 찾아달라는 친구의 요청을 받고 책을 찾느라 한참 시간을 보내고 나면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 친구는 책을 아무데나 두었다가 결국 잃어버렸습니다. 새 책을 구하는 데 한참 애를 먹었는데, 결국 그 친구에게 물건을 소중히 하겠다는 글을 쓰게 했습니다. 물건에 대한 무절제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시간’에 대한 무절제입니다. 공부를 하는 한 시간을 허비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할 시간이 없거든요. 한 시간 의자에 앉으면 친구들과 잡담을 하느라,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느라,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시간이 새는 줄도 모릅니다. 늘어나는 건 잔소리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뒤치다꺼리와 청소에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아이들에게 가는 시선을 저 스스로에게 돌려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걸레질을 하다가 아무데나 놓은 모습, 책상 위에 올려둔 연필과 각종 공과금 고지서들, 함부로 놓은 책들. 아이들의 눈에 비친 저의 모습들이 무절제해도 된다는 허락을 해준 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강자가 들끓는 도둑 사건 때문에 공자에게 대책을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당신이 진심으로 바란다면, 설사 상을 주고 도둑질을 하라고 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 『논어』, 「안연」 편

계강자는 노나라의 권력가 계씨 집안의 대를 이은 사람으로 당시는 정치 신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자를 정치 고문으로 삼아 자문을 했던 흔적이 『논어』에 등장합니다. 공자에게 사형을 통해서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지를 물은 적도 있습니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려는 사람이 하필이면 사형을 언급하는지 반문했죠. 사람의 눈은 밖으로 향해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제외한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를 보려면 반드시 거울을 통해야만 합니다.

저는 아이들의 무절제한 모습을 보았을 뿐, 저 스스로의 무절제를 보지 못하고 있었죠. 아이들의 행동을 거울로 삼아서 저의 무절제를 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논어』를 읽다가 뒤늦게 발견했습니다. 아이들과 관계된 많은 문제들은 대개 이런 식입니다. 아이들은 결코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내는 법이 없기 때문에 어른들은 아이들의 문제를 거울로 삼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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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모습을 딴 동상.

거울로 본 나의 모습

아이들을 거울로 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상에 그냥 이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죠. 아이들의 무절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 장면을 바로 거울의 시각으로 재구성하면 이렇습니다. 바쁘게 오전 일정을 마치고 공부방으로 가면 부랴부랴 청소를 합니다. 전날 저녁까지 수업을 하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러 오면 그대로 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계획하고 시간을 절제하는 부분에서 서투를 수밖에 없습니다.

성인(成人)이 되기 전까지는 아이들의 눈과 귀가 되고 손과 발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말하는 시계’도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시간을 절제하지 못한 이면에는 어른의 무성의 또는 무계획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시계가 되어 책을 펴고 한자를 쓰면 아이들은 곧잘 따릅니다. 마음속에는 편안함마저 느낄 것입니다. 저는 그 순간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시간을 절제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불안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심리학자들은 모든 것을 허용하는 허용형 육아(permissive parenting)를 가장 위험한 육아 방식으로 꼽습니다.

『마음으로 훈육하라』(길벗)의 저자인 샤우나 샤피로(산타클라라 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와 크리스 화이트(소아과 전문의)는 “많은 연구 결과 건강한 경계와 나이에 맞는 행동에 대한 기대 없이 자란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이며 자기조절, 충동억제, 성취동기, 인지적 능력과 사회적 능력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습니다. 공부방에 들어오면 자동적으로 한자를 쓰게 했더니 한자 쓰기가 습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끝내고 돌아갈 때 저는 책과 물건들을 제자리에 정돈해놓고 가라는 말을 빠뜨릴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의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저 스스로가 균형감을 갖지 못하면 빠뜨리는 게 늘어납니다. 저는 단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뿐 아니라 스스로 수련을 하고 있음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되는데 요즘은 자꾸 잊는 것 같습니다.

결국 나의 무절제가 아이들에게 전염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고, 변명의 여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바로 이것이 육아와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을 하면 아이들의 행동에 즉각적으로 반영됩니다. 현장에서 이런 경험을 한두 번 한 게 아닙니다. 결국 부모와 교육자가 집중해야 할 것은 아이들의 절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절제입니다.

[140자 Q & A 상담코너]

13. 아이가 수학을 포기했어요

Q = 중학교 2학년 남자 아이들을 둔 부모입니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지만 수학 과목만큼은 일찌감치 포기했어요. 어릴 적 수학에 대해서 안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게 원인인 것 같은데 도무지 회복되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A = 수학 포기를 아이의 문제로 바라보면 개선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나 교육자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면 아이가 마음을 열기 시작하더군요. 아이 스스로의 문제 때문에 수학 포기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생각하지 않았던 계기로 인해 포기를 했기 때문이죠.

 * dajak97@hanmail.net 앞으로 육아고민을 보내주세요. 자녀와 본인의 나이와 성별을 써주시면 가명으로 처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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